20세기 초 온통 소독된 물건으로 둘러싸인 아이는 예방의학의 이상이자 아기를 엄마의 자궁에 돌려보내는 것 다음으로 좋은 일이었습니다. 1850~1900년 사이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4분의 1 이상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항생제와 백신이 등장하기 전이었고, 소독된 물과 살균된 우유가 없었던 시절에 전염병은 어디서나 기승을 부렸습니다.
특히 소아병동과 고아원 같은 아동보호시설은 온갖 감염물질과 병원체를 모아 놓은 곳이었습니다. 1915년 뉴욕의 의사 헨리 채핀이 쓴 《유아보호시설에 대한 정확한 통계 탄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직접 조사한 보호시설 10곳 중 9곳에서 입소한 아이들이 두 돌이 되기 전에 모두 죽었습니다.
질병과 미생물의 관계를 밝혀낸 루이 파스퇴르, 종두법을 발견한 에드워드 제너,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같은 과학자들 덕분에 의사들은 환자들이 보이지 않는 미생물 병원체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물질이 끊임없이 퍼져 나간다는 사실만을 알았을 뿐,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의사들이 생각한 대안은 병원체가 감염된 환자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지 못하도록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컬럼비아의대에서 소아과학 분야를 개척한 루터 에멧 홀트 교수는 “부모 스스로가 질병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며 “엄마나 아빠라 할지라도 아이와 가깝게 지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아동양육의 전문가로 대다수 중산층 부모들이 그의 양육법을 따랐습니다. 홀트 이전에는 대부분의 미국 가정에서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심지어 부모와 한 침대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홀트는 자신의 저서 《아기 돌보기와 잘 먹이기》를 통해 아이들을 별도의 방에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선의 육아는 최상의 위생 상태, 깨끗한 손, 가벼운 접촉, 신선한 공기와 햇빛, 그리고 거리두기를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애정을 표현하는 육체적 접촉도 피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보호시설에서도 침대를 멀리 떨어뜨려 놓고, 아이들을 가능한 혼자 지내도록 했습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창문을 항상 열어 놓고, 음식을 전달하거나 옷을 갈아 입히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아이들에게 어른의 손길이 닿지 않았습니다.
홀트의 영향을 받은 당시의 의사들과 부모들은 병원에 입원한 아기에게 면회를 갈 필요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중환자실에 격리되어 있는 미숙아들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기들이 배고플 때 누구라도 젖병만 물리면 아기들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아기가 운다고 어루만지고 안아주고 응석을 받아주는 모성은 다분히 감성적인 것으로 인식됐습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의 병원과 고아원에는 영유아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1944년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무렵 소아과 의사 해리 백윈은 병원에 있는 아이들과 전쟁을 피해 부모와 떨어져 격리된 아이들이 놀랍게도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병실에 있는 아이들은 움직임이 없고 조용했습니다. 식사를 잘 먹지도 않았고 미소를 짓거나 웃는 일도 없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약을 처방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부모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자 열은 씻은 듯 내렸습니다. 또 아이가 엄마와 함께 있는 경우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확률이 35%에서 10% 이하로 줄었습니다.
그 뒤 백윈은 문 앞에 “병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두 번 씻을 것”이라고 써놓았던 문구를 “병실에 들어서는 간호사들은 반드시 아이를 한 번씩 안아줄 것”이라고 바꿔 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당국의 표준적인 병원 정책은 부모의 면회 시간을 일주일에 한 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1958년 백윈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미국 위스콘신대학 심리학과 해리 할로 교수에 의해 발표됐습니다. 평소 육아법과 지능(IQ) 발달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던 할로 교수는 원숭이를 통해 실험적으로 그 결과를 밝혀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는 가격도 비쌌고, 수입해서 들여온 원숭이는 운송 중 거칠게 다뤄져 난폭했습니다. 무엇보다 무서운 질병을 가지고 와서 다른 원숭이들을 감염시킬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로 교수는 원숭이를 자체적으로 번식해 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원숭이를 실내에서 기르는 방법을 잘 몰랐기 때문에 생화학과 동료 교수의 도움을 얻어 설탕과 연유, 물을 섞은 조제유를 만들었습니다. 젖병을 철저히 소독했으며, 앞서 영유아의 양육과 마찬가지로 부모로부터 일찍 격리시켜 전염병의 위험을 차단했습니다.
어느 날 연구자들은 원숭이들의 특정 행동에 눈길이 갔습니다. 우리 안쪽에 하얀 천 기저귀를 깔아주었는데, 원숭이 새끼들이 필사적으로 이 기저귀에 달라붙었던 것입니다. 누군가 그 천을 집어 올리면 꽉 붙들고 매달려 놓지 않았습니다. 마치 영유아 아기들이 인형이나 담요 등에 집착하는 것 같은 행동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때 한 대학원생이 할로 교수에게 철사나 나무조각처럼 단단한 물건과 두툼한 헝겊 뭉치를 비교하는 실험을 제안했습니다. 원숭이들이 단지 뭔가 붙들 것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드러운 감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에서 부모를 대표하는 것은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할로 교수는 2가지 형태의 대리모를 설계했습니다.
한쪽 대리모는 철사로 된 몸통에 우유통이 달려 있고, 다른 쪽 대리모는 부드러운 담요로 몸통을 덮었습니다. 과연 새끼 원숭이는 자기의 부모로 어느 쪽을 선택했을까요? 일단 새끼 원숭이는 우유를 먹기 위해 철사 어미에게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우유를 먹고 나자 재빨리 담요로 덮인 어미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부드러운 천으로 덮인 어미에게만 붙어있었습니다.
이처럼 새끼 원숭이는 먹을 것을 주는 것만으로는 철사 어미와 아무런 관계도 형성하지 않았습니다. 철사 어미에게서 우유가 뚝뚝 떨어지든, 철사 어미가 우유에 발을 담그든 새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새끼 원숭이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담요 대리모 위에서 잠을 자거나 꼭 껴안고 생활했습니다. 뭔가에 놀랐을 때 담요 대리모에 자신의 몸을 바짝 밀착시키며 심리적 안정을 얻었습니다.
해리 교수는 이것을 ‘접촉 위안(contact comfort)’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접촉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피부 간의 접촉을 말합니다. 위안은 안정감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아기가 엄마를 찾는 것은 단지 젖을 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부모를 통해 감정을 익히고 낯선 세상과의 만남에서 안정감을 얻으며,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들과 애정 어린 포옹을 해보며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문헌]
· 데버러 블룸 지음, 2005, 양지원 옮김, 사랑의 발견, 사이언스북스
· 김영화, 2018, 아이성장에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이것'?, 정신의학신문, 5월 5일자
· Harlow, H. F., 1958, The nature of love, American Psychologist, 13(12), pp.673–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