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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Jul 07. 2021

인류가 암세포처럼 활동할 때 가이아는 자비롭지 않다!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내가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은 박테리아를 비롯한 초라한 모습의 생명체들, 스스로의 주장을 내세울 풍부한 표현방법을 가지지 않은 생명체들을 대표하는 조합 간사의 자격으로서입니다. 내가 대표하는 조합은 인류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들을 회원으로 하는 것입니다.”


병든 행성의 조합원이 의사를 찾아가 건넨 이야기입니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환자에게서 ‘핵겨울’의 감기, ‘온실효과’의 열병, ‘산성비’의 소화불량, ‘오존층’의 반점 등의 증세를 찾아냅니다. 이와 같이 ‘행성의학’이란 진료과목을 도입해 환자인 ‘지구’를 소개한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 1919~)이란 영국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1972년 ‘가이아 이론’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가이아(Gaia)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을 가리키는데, ‘생명체로서의 지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러브록은 ‘대기권의 화학적 조성’과 ‘지구의 기후’를 근거로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보는 가이아 이론을 주장합니다. 


2005년의 제임스 러브록 by Bruno Comby (CC BY-SA 1.0, Wikimedia Commons)





생물에게 안락한 기후환경을 제공해주는 지구


먼저 러브록에 따르면 대기권의 화학적 조성은 화학의 일반원리에 맞지 않지만 생물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조절되고 있습니다. 산소와 메탄가스는 대기권에서 언제나 일정한 농도를 유지합니다. 두 기체는 서로 반응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을 만듭니다. 그러나 메탄가스의 농도는 지구 표면 어느 곳이든 1.5ppm으로 일정합니다. 이러한 농도가 유지되려면 해마다 약 10억 톤의 메탄가스가 대기권으로 유입되어야 합니다. 또한 메탄가스의 산화로 소진되는 산소를 벌충하기 위해 해마다 약 20억 톤의 산소가 필요합니다. 러브록은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는 대기권의 조성이 오랫동안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범지구적 규모의 자기조절 체계, 즉 가이아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산소와 메탄가스는 생물에 의해 대기권에 재충전됩니다. 산소의 공급원은 바로 녹색 식물입니다. 물을 머금은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통해 산소를 배출합니다. 반면 메탄가스는 늪지나 해저처럼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혐기성 박테리아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대기권의 조성이 미생물에 의해 생물체의 생존에 적합하도록 조절된다는 것이 가이아 이론의 핵심 근거입니다. 


다음으로 제시된 근거는 지구의 기후입니다. 생물의 탄생 이후 약 35억 년 동안 태양이 지구로 방출한 에너지양은 30% 정도 증가했습니다. 다시 말해 35억 년 전 과거의 지구는 지금보다 태양 빛이 30% 정도 적었습니다. 원시지구의 기온이 빙점 아래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생물의 생존에 적합하지 않았던 시기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는 지구의 기후가 오로지 태양에 의해 좌우된 것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 러브록은 원시지구에서 이산화탄소와 암모니아와 같은 기체가 기온의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수증기 등은,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한 뒤 다시 지구 표면에서 복사되는 열을 흡수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대기권이 하나의 커다란 열저장소가 되는데, 이를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가스들의 대부분은 생물에 의해 합성됩니다. 따라서 러브록은 지구의 기온이 생물에 의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지구와 인류는 ‘공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러브록이 가이아 이론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사람들은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 전체를 ‘항상성’, 즉 자기조절능력을 갖춘 생명체로 설정합니다.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으로 인류를 따듯하게 품어주는 어머니일 수도 있지만, 인류가 지구를 병들게 하는 병원균이나 종양세포처럼 활동할 때에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연 생태계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어느 정도의 오염물은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이 있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치명적인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러브록은 농업과 산림 훼손으로 인한 토지이용의 변화를 ‘피부의 박리’로, 산성비로 인한 물질순환의 파괴를 ‘소화불량’으로, 성층권 오존층의 파괴를 ‘오존층 결핍증’으로, 지구온난화를 ‘고열증세’ 등으로 진단했습니다. 


인류의 생태계 파괴 및 환경오염 행위는 가이아의 입장에서 암세포의 활동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기후와 환경오염에 따른 인류의 피해는 생명체 지구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조절 활동을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지구에서 인류가 일종의 병원균이나 암세포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가이아는 인류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습니다. 


만약 인류의 활동이 가이아에게 질병을 일으켜 기능 장애가 발생한다면, 가이아는 다음의 4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것입니다. 


첫째, 침입한 병원균(인류)의 박멸입니다. 

둘째, 만성적인 감염으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셋째, 침입당한 숙주생명체(가이아)의 죽음입니다. 

넷째, 가이아에 침입한 인류와 서식처를 제공하는 지구가 ‘공생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병원체나 종양세포가 지각이 있는 존재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먹이와 서식처를 제공하는 숙주생명체를 죽여선 안 됩니다. 숙주생명체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와 피해를 주면 결국 병원체나 종양세포도 죽게 됩니다. 인류가 환경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것인가, ‘후퇴’를 할 것인가


러브록이 1979년에 펴낸 첫 저서 가이아–생명체로서의 지구』는 생명체로서의 가이아가 대기뿐만 아니라 바다의 염분 농도, 지표면의 온도를 포함한 대기권, 해양권, 지질권을 유기적으로 조절해 생명체가 살아가기 적당한 조건으로 바꿨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환경오염을 부추기고 있지만 가이아는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러브록은 2006년 가이아의 복수』라는 저서를 통해 지구의 병세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곧 숨이 넘어갈 정도로 위급하다고 진단합니다. 특히 안전해 보이지만 아직 실효성의 입증이 안 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풍력발전은 소용돌이 바람을 일으켜 태풍이나 허리케인의 빈도를 높일 수 있고, 에너지 생산효율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전기수요를 충족시키려면 27만 6000개의 풍력발전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국립공원, 도시, 교외 산업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의 2.6km당 약 3대씩 설치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또한 여러 나라가 사탕수수와 옥수수, 유채같은 농작물을 심어 화석연료인 휘발유를 대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이오디젤 붐은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을 높였고 그 수익은 고스란히 농민이 아닌 대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바이오디젤은 지구온난화를 막아내는 듯 보이지만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식물을 태워 다시 방출하는 것이므로 탄소중립의 개념은 성립할 지 몰라도 탄소저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러브록은 인류와 가이아가 공생의 길을 걸으려면 ‘지속가능한 발전’이 아닌 ‘지속가능한 후퇴’를 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신재생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이 아닌 원자력 발전을 대안으로 꼽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전력생산 효율도 아주 높습니다. 물론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사고 등으로 경제적인 가치보다 환경에 대한 위험 예방을 더 큰 가치로 두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러브록은 “원자력발전에 대한 위험과 사망자 등의 통계는 상당히 과장됐다”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그는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지구온난화를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은 ‘그린 로맨티시즘(Green romanticism)’이라며 관념적인 환경운동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러브록의 주장은 환경주의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친 논리적 비약에 비과학적이라는 과학자들의 비판 역시도 받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제 인류는 지구환경에 대해 ‘개발’이냐 혹은 ‘보존’이냐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행성 지구의 관점에서 환경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러브록의 주장은 오늘날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참고문헌>

제임스 러브록 지음, 홍욱희 옮김, 1990, 가이아 – 생명체로서의 지구, 범양사

제임스 러브록 지음, 김기협 옮김, 1995, 가이아 – 지구의 체온과 맥박을 체크하라, 김영사

제임스 러브록 지음, 이한음 옮김, 2008, 가이아의 복수,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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