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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Nov 24. 2021

리튬이온전지, 어떻게 재활용할까?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015년의 파리 협정, 더 가깝게는 2021년의 유엔 기후 변화 회의(COP26) 등 국제기구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기후 변화를 늦추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요. 기후 재앙을 막아내기에 아직 국제사회의 노력이 충분치 않다는 비판도 많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COP26에서 미진하게나마 석탄화력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지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여기에 모든 것의 전기화(electrification of everything)라는 개념이 바로 따라옵니다. 석유를 태워서 굴러가는 자동차를 하이브리드나 전기 자동차로 바꾸고, 도시가스나 LPG를 사용하는 난방 설비를 역시 전열 장치로 바꾸는 식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수소 연료 전지와 같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동력을 전기로 공급한다는 구상이지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그리고 산업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전기 설비로 바꾸기 위해서는 배터리 기술이 꼭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전기자동차의 필수적인 부품인 것은 물론,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친환경 발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도 그렇지요. 맑은 날과 흐린 날에 태양광 발전의 효율이 다르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과 잠잠한 날에는 풍력 발전으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다릅니다. 마치 가을에 농작물을 수확해서 저장해 놓고 일 년 내내 먹는 것처럼, 여건이 좋은 날 전기를 많이 생산해서 어딘가에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써야 하는 거죠. 충전해서 여러 차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이차 전지가 아주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사용하는 이차 전지는 대부분 리튬이온전지(lithium ion battery)입니다. 양전하를 갖고 있는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며 충전과 방전이 일어나는 구조이지요. 1970년대에 스탠리 휘팅엄이 리튬이온전지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했고, 1980년대에 요시노 아키라와 존 굿이너프의 개량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러 상용화되었습니다. 세 사람은 2019년에 리튬이온전지의 개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리튬이온전지의 구조와 원리 from Carbon Energy 2, 6—43 (2020), https://doi.org/10.1002/cey2.29, CC BY 4.0


그런데 리튬이온전지에는 중대한 단점이 있습니다. 채굴도 어렵고 매장량도 제한된 희토류 금속을 너무 많이 소비하지요. 이 추세대로라면 10년 후에 리튬 가격이 세 배로 뛸 거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게다가 양극 재료로 널리 사용되는 코발트는 아프리카의 콩고에서 거의 전량을 생산하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가 일어나지요. 재활용이 어렵다는 점까지 겹쳐서,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전기화가 거꾸로 환경 파괴를 일으키는 문제가 생기는 거죠. 때문에 각광받는 기술이 바로 수명을 다한 리튬이온전지를 재활용하는 기법입니다. 배출되는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환경을 해치며 채굴해야만 얻을 수 있는 희토류를 재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 글에서는 리튬이온전지의 재활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또 재활용한 재료로 전지를 만들었을 때 성능 문제는 없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버려진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시킨 다음 해체됩니다. 분리하기 쉬운 케이스를 먼저 뜯어내어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구리 따위를 분리합니다. 그 다음 남은 모든 물질은 잘게 갈아서 ‘블랙 매스(black mass)’라고 부르는 검은 가루 형태로 만들지요. 블랙 매스에는 흑연으로 만들어진 음극, 코발트나 니켈로 된 양극, 그리고 전기를 수송하는 리튬이 모두 뒤섞여 있습니다.


by David Baillot/UC San Diego Jacobs School of Engineering, CC 3.0


블랙 매스 그 자체는 온갖 물질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는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금속이나 흑연을 따로 분리해서 정제해야만 재활용이 가능하지요. 블랙 매스는 광산에서 캐낸 철광석과 마찬가지라서, 블랙 매스를 정제하는 방법도 야금술의 용어를 많이 빌려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방식은 건식 제련(pyrometallurgy)입니다. 우리말로는 ‘건식’이라고 옮겼지만, 영어 원문은 “불로써(pyro-) 금속을 얻는다”는 의미이지요. 말 그대로, 철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녹여내는 것처럼 블랙 매스를 뜨겁게 가열해서 녹인 다음 코발트와 같은 금속을 분리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건식 제련에는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블랙 매스가 모두 녹아내릴 만큼 뜨겁게 가열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음극 재료로 쓰이는 흑연도 분리해서 재활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가열해 버리면 흑연은 불타서 이산화탄소가 되어 날아가 버립니다. 게다가 건식 제련으로는 리튬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코발트를 분리해낸 다음 남은 찌꺼기에서 리튬을 분리하는 공정을 한 번 더 거쳐야 하지요.


블랙 매스를 정제하는 두 번째 방법은 습식 제련(hydrometallurgy)입니다. 영단어의 의미는 “물로써(hydro-) 금속을 얻는다”는 뜻이고요, 여기서는 황산 등의 용매를 이용하여 블랙 매스의 구성 물질을 녹여내서 분리해냅니다. 흑연과 리튬도 분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건식 제련보다는 절차가 복잡합니다. 그래도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데다 더 많은 물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건식 제련에 비해 각광받는 기술이지요.


현재 리튬이온전지 재활용 사업에 뛰어든 기업의 면면을 보더라도 습식 제련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캐나다의 기업 라이사이클(Li-Cycle), 미국의 레드우드 머티리얼즈(Redwood Materials), 스웨덴의 노스볼트(Northvolt)가 대표적이고, 국내에서도 성일하이텍이 습식 제련 기법을 이용해 공장을 세우고 있지요. 전기자동차 산업이 최근 10여년간 이룬 급성장을 감안할 때 머지않아 수명이 다한 전기차 배터리가 쏟아져 나올 것이고 이 업체들의 역할 또한 중요해질 겁니다.


한편, 재활용한 재료로 배터리를 만들면 성능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21년 11월에 발표된 최신 연구 결과(Joule 5, 2955)에 따르면, 니켈·망간·코발트(NMC) 양극 재료를 재활용해서 제작한 배터리의 성능은 시판되는 배터리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명이 50% 이상 늘어나기까지 했다고 해요. 재활용한 양극 재료에는 몇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구멍이 잔뜩 뚫린 다공성 구조가 더 많이 관찰되었는데, 이 덕분에 리튬 이온의 이동과 전류의 흐름이 더 효율적으로 변했다는 겁니다.


연구진이 재활용한 배터리를 실제로 자동차에 넣고 운행해 본 것은 아니지만, 전기차 산업의 기준에 맞추어 진행한 실험이기에 더 의미 있는 결과입니다. 재활용 배터리의 성능이 실제 자동차에서도 떨어지지 않는다면, 자동차 배터리의 재활용 생태계는 다가오는 환경 오염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모든 것의 전기화” 흐름의 당당한 한 축을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Wikimedia Commons, CC BY 2.0


‘도시광산’이란 말이 있습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기판에는 금이나 은, 팔라듐 같은 귀금속이 조금씩 들어 있는데요, 재미있게도 컴퓨터의 무게당 들어 있는 금의 양을 따지면 금광에서 캐낸 금 광석보다도 무게 당 많은 양의 금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괜히 산에 구멍을 뚫어서 환경을 파괴하며 금광석을 캐내고 정제하는 것보다 버려지는 핸드폰과 컴퓨터를 수거해서 금을 추출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는 겁니다.


블랙매스가 바로 이런 재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희귀한 재료를 경제적으로 저렴하게 구하는 것은 물론 희토류 채굴 과정에서 생겨나는 환경파괴와 인권침해를 줄이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인류에 의한 환경 파괴를 정말로 줄이고 싶다면 특정 산업 영역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 나아가 지구 전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추적하고 줄여내야 할 텐데, 그런 의미에서 블랙매스 재활용 기술에 더 많이 투자하고 지원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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