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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Jul 24. 2017

시대를 따라 달린 시베리아 횡단철도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건설 논의가 시작된 19세기 중엽부터 제국주의 팽창의 도구로써의 가치는 인정받았지만 경제적 효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개통이 되자 유라시아 전체 교역의 연결통로가 되었고 인구 유입도 늘어나면서 시베리아 자체 경제 규모도 성장하였습니다. 결국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지역경제를 너머서 러시아 전체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개통한지 100여년을 지나오면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교역 통로 외에 역사가 요구한 시대적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역사 속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소개합니다.

전략적 중요성을 입증하다 - 러일전쟁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활용하여 군수품과 병력을 동아시아로 운송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패인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단선이었기 때문입니다. 1937년이 되어서야 전체 구간이 복선이 되었기에 러일전쟁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구간이 단선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초기에 일방적으로 군수품과 병력을 보낼 때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전쟁이 지연되면서 병력을 교체하고 부상병을 역 방향으로 운송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양방향으로 빠른 운송이 필요할 때이지만 단선이었기에 지연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체 대상 병력과 부상병을 태우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열차가 통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군수물자와 신규 병력을 태운 열차는 철로에서 빠져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해전에서의 패배, 러시아 황실의 재정파탄 등 여러 요인으로 러일전쟁에서 패배하였지만 이때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큰 패배 요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독일과 일본을 이어주다 - 2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초기에 소련은 은밀하게 독일과 협력을 취하였고, 이때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독일 전력의 에너지원을 공급하게 됩니다. 서구 연합에 의해서 독일 상선은 교역을 금지당하여 원자재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을 때에 소련은 시베리아 횡단철도 통하여 일본과 독일을 연결해준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원자재는 천연고무이었습니다. 군수물품을 만들기 위해서 천연고무는 필수적 원자재이었는데 일본은 당시 동남아시아를 점령하고 있었기에 해당 지역 천연고무를 쉽게 수급할 수 있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실어 나른 천연고무 양은 어마어마해서 1941년도 3월에는 하루에만 300톤을 매일 운송할 정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협력관계는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과 맺은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 국경을 넘어 침략함으로써 깨지게 됩니다.


또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2차 세계대전 때에 전혀 다른 역할로 독일과 일본을 이어주었는데요, 바로 독일 유태인과 반나치 인사들의 망명 통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당시에 리투아니아에 있던 스기하라 치우네라는 일본 영사가 적극적으로 유태인을 도와주고자 비자 발급을 도왔습니다. 그가 수천 명의 유태인에게 일본 비자를 발급해주면 유태인들은 그 비자를 지니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유라시아를 건너 일본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일본에서 태평양을 가르는 배를 타고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인 강제이주의 길

1937년에 소련 스탈린 정권이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에게 강제 이주 명령을 내렸을 때에 고려인 강제 이주에 사용된 교통수단도 시베리아 횡단철도이었습니다. 강제이주는 당시에 소련정부가 고려인의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주는데 강제이주 결정뿐만 아니라 강제이주 과정도 비인도적이었다고 합니다. 17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르는 고려인을 이송하면서 짐짝처럼 화물칸에 태움으로써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장시간동안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다수의 사람들이 열차에서 숨졌다고 합니다. 현재 이송 중 사망한 사람의 수를 2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가슴 아픈 역사이지요.

우리나라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관계는 고려인 강제 이주 외에도 이준 열사가 헤이그 특사로 유럽을 향할 때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는 등 독립투사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다시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유라시아대륙철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배를 이용하여 유럽에 물자를 보내는 것보다 통합된 철도를 활용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모두 이득이기 때문에 다양한 협력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최근 러시아 정부는 일본 홋카이도까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고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철도와의 연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철도와 이어지면 쉽게 연결되겠지만 정치적으로 풀어가기 쉽기 않기 때문에 다소 시일이 필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다가오는 시대에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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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https://en.wikipedia.org/wiki/Trans-Siberian_Railway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Trans-Siberian_railway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8057&cid=40942&categoryId=32191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7/14/0200000000AKR20170714150200371.HTML?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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