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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Mar 22. 2018

우주유영의 마지막 미션 “생존하십시오”

1965년 3월 18일, 인류 최초의 우주 유영

우주선 밖으로 나가자 암흑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곳곳에서 별들이 빛났고 태양은 너무 눈부셔서 견딜 수 없었다.


1965년 3월 18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공간을 유영한 우주인 알렉세이 레오노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우주선 보스호트 2호가 지구 주위 우주궤도를 2번째 돌 때, 우주선 문을 열고 선체 밖으로 헤엄쳐 나갔습니다. 


인류 첫 우주유영 시간 ‘12분 9초’

우주 비행사 Deke Slayton(왼쪽)과 Alexey A. Leonov(오른쪽)가 Soyuz Orbital Module에서 촬영 / 이미지 출처 : 미항공우주국(NASA) 

그가 처음 우주공간을 직접 접한 시간은 12분 9초였습니다. 레오노프는 우주복 배꼽에 연결된 생명선의 최대 길이인 5.35m까지 선체 밖으로 우주유영을 체험했습니다. 

임무는 간단했습니다. 

“에어록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가슴에 위치한 스틸카메라로 우주유영을 촬영하고 생존하십시오.”

에어록에 첫 번째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은 간단했지만 스틸카메라로 촬영하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압력차로 인해 우주복이 부풀어 올랐고, 그의 허벅지에 있는 스위치에 팔이 도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곧이어 그는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을 경험합니다. 우주유영을 하는 동안 그의 우주복은 부풀어 오르며 진공상태에서 굳어져 갔습니다. 그가 우주유영을 마치고 우주선으로 복귀하려던 그때, 우주복이 에어록에 들어가기에 너무 커져버린 것입니다. 


에어록이란, 우주선과 우주공간 사이의 위치한 중간격리실로, 우주인이 우주선에 진입하기 전 체내 질소를 빼내는 감압시설입니다. (마치 잠수사들이 잠수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수중에서 감압을 하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원리와 유사합니다.) 그는 에어록에서 20분 간 사투를 벌인 끝에 우주복의 밸브를 열고 우주복을 거의 진공에 가깝게 만들어 우주선에 진입했습니다. 


훗날 그는 “우주선의 감압장치에서 공기가 빠지면서 우주의 진공상태는 괴물의 발톱처럼 내 몸을 파고들었다”며 “지구에서 반복적으로 연습을 받았지만 분명히 끔찍한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산소제트총 들고 1만460km 이동한 사나이


레오노프의 첫 우주유영이 단순한 외출이었다면, 같은 해 6월 3일 미국의 제미니 4호에서 실시한 우주유영은 훨씬 진보한 선외활동(Extravehicular Activity, EVA)이었습니다. 미국 최초 우주유영의 주인공은 에드워드 화이트였습니다.

제미니 4호에서 실시한 EVA를 하고 있는 에드워드 화이트 (Edward H. White II) / 이미지 출처 : 미항공우주국(NASA)

그는 약 23분 동안 로프로 연결된 상태로, 손에 쥔 산소제트총을 이용해 우주선에서 7.6m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하와이 상공에서 멕시코만 상공까지 약 1만 460km를 이동했습니다. 이는 ‘휴대용조정장치(HHMU)’ 덕분이었습니다.


흔히 우주총으로 불리는 HHMU는, 고압산소를 3개 노즐로 분사해 우주공간에서 원하는 자세와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줍니다. 2개 노즐은 직진을, 1개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데, 몸이 회전하지 않으면서 움직이려면 우주총을 몸의 중심에 놓고 분사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또 금세 연료가 떨어져 오래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당시 공군에서 개발하던 ‘우주비행사조정장비(AMU)’를 제미니 9호에서 실험하고자 했습니다. AMU는 가방처럼 우주인의 등에 메는 형태로 생명유지장치, 통신장비, 자동안정장치 등이 탑재된 소형우주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주공간에서 시도된 AMU의 성능시험은 황당한 이유로 실패했습니다. 우주선의 뒷부분에 장착된 이 장비까지 접근하는 유영과정에서 우주인이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제미니에 이어 아폴로 우주선에서 로켓신발을 장착한 장비가 계획됐지만 구상단계에서 그쳐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우주공간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장비의 실험은 1973년부터 1974년까지 스카이랩 우주정거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NASA는 발사 도중 입은 손상으로 폐기 처분까지 고려했던 스카이랩을 우주유영을 통해 완벽히 수리하면서 우주유영의 필요성을 실감했습니다. 또한 스카이랩의 넓은 실내는 우주유영 장비를 실험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우주공간에서 생명선이 끊어진다면?


기존의 AMU를 개선한 ‘M509’는 스카이랩 2-3호를 통해 14시간 동안 시험이 진행됐습니다. 


그 뒤 지속적인 개선 작업을 통해 1984년 2월 2일 발사된 챌린지호의 화물칸에는 2대의 ‘유인조정장비(MMU)’가 탑재되었는데, MMU는 밑면과 뒷면에 설치된 로켓팩을 이용해 우주인이 우주공간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으면서 의자같이 앉을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1984년 2월 7일, 미국의 브루스 매캔들리스는 MMU를 등에 메고 사상 처음으로 우주선과 연결된 선없이 혼자의 몸으로 우주를 유영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날 매캔들리스는 챌린지호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까지 갔다 돌아왔습니다.


뒤이어 1984년 11월 8일에 발사된 디스커버리호의 우주인들은 MMU를 메고 같은 해 2월 우주미아가 된 2대의 통신위성을 회수하는데 성공합니다. 지구로 회수된 통신위성은 완벽하게 수리돼 이중 한대가 1990년 중국 로켓에 실려 다시 우주로 보내졌습니다. 버려진 위성을 회수해 다시 보내겠다는 우주왕복선의 목표가 처음 달성된 순간이었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작업중인 모습 / 이미지 출처 : 미항공우주국(NASA)

다음해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로 MMU의 활동은 중단되었습니다. NASA가 우주인의 안전에 초점을 두기로 하면서, 우주선 밖의 모든 활동은 우주인과 연결된 생명줄을 반드시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SF 영화 ‘그래비티(Gravity)’처럼 불의의 사고로 우주인이 우주공간에서 생명줄이 끊어진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불행히도 그는 7시간 30분 동안 배낭형 제트팩의 산소가 다 떨어질 때까지 1리터의 물을 마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90분마다 한 번씩 지구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45분마다 해가 뜨고 집니다. 운이 좋다면 해가 뜨고 지는 것을 5번 보기 전에 누군가 구조하러 올 수도 있겠죠? 




[참고문헌]

정홍철, 2003년 3월호, 미아위성 구출한 우주유영장비, 과학동아

https://gizmodo.com/50-years-ago-the-first-spacewalk-nearly-ended-in-trage-1692303108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24835.html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3/18/0200000000AKR20150318081600009.HTML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31023/820054


[이미지]

표지 이미지- 1965년 소련 우표, 알렉세이 레오노프 

(1965 Soviet Union 10 kopeks stamp. Voskhod 2. First Space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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