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관한 기억 2 - 사회민주주의 수업 종강 후>
사회민주주의 Social Democracy 수업이 종강했다. 다음 주 시험만 남았으므로 종강이라 칭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대학의 4년을 마무리지으면서 스스로의 이념을 설명할 수 없음이 못내 아쉬웠다. 복학 후 1년 간의 독서와 경험들 속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으나 입 밖으로 내뱉기는 쉽지 않았다. 때문에 교환학생 수강신청에서 이 강좌를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나 설렜고, 한 학기 동안 치열하게 공부하고 또 돌아다닌 끝에 스스로를 Social Democrat으로 호명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끝에 다다른 지금에 와서는 이전에 비해 더욱더 혼란스러워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처음 <Primacy of Politics(정치가 우선한다, 후마니타스에서 번역·출판한 버전도 있다)>라는 책을 접했을 때의 반가움과 신선한 충격은 Christian Democracy의 성과를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에 대한 실망으로 바뀌었고, 내가 그동안 개무시했던 제3의 길로 대변되는 움직임이 유럽 사민주의자들에게 사실상 수용되었음을 바라보면서 신자유주의와의 차이가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하겠다. 더군다나 항상 한국에서는 모범 사례로 인용되었던 유럽 친구들에게서 느껴지는, 경제 위기 속의 어떠한 패배감 및 자기 나라의 시스템에 대한 회의를 접할 때마다 내가 이념형으로 추구하려던 사회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되묻게 된다. 심지어 오늘 마지막 강의의 마지막 슬라이드 제목은 The End of Social Democracy? 였는데 어떤 명쾌한 답을 기대했던 나는 이게 정녕 끝인가 싶은 생각에 쉽사리 강의실을 뜰 수가 없었다. 여러 모로 내 기대가 컸음을 절실히 느끼지만 길을 찾으러 혹은 확인받으러 왔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길을 잃은 느낌 때문에 멍-하다.(2014.11.27.에 쓰다.)
(덧붙인 글)
적어놓고 보니 사실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기도 한데 - 그동안 내가 얼마나 친숙한 혹은 선호하는 담론에만 노출되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은 큰 소득이지 않을까 싶다.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반복되어 온 수정주의 논쟁 속에서 담화나 담론 속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나'를 추구하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교수님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긴축 정책(Austerity)과 일찍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가 지적했듯 선거에서 표를 더 얻기 위해 center로 향하는 것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념적 공백(Ideological vacuum)이 보여주듯, 결국 사회민주주의자들 자신 또한 스스로가 누구인지,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모를 거라고 코멘트를 하셨는데… 한국의 책, 언론 및 인터넷에서 항상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성과 및 가능성만을 접해왔던 나로서는 치부를 들킨 느낌이었다. 이 곳의 수업이나 토론에서 나는 그동안의 역사적 성과에 비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상당히 둔감하고 부족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는데 앞으로라도 열심히 follow up 해야겠다고 다짐했다.(2014.11.27.에 쓰다)
왜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은 끊임없이 추락할까?라는 주제로 읽어볼 만한 다음 글이 있다. http://santa_croce.blog.me/220674299946
이코노미스트의 기사(http://www.economist.com/news/briefing/21695887-centre-left-sharp-decline-across-europe-rose-thou-art-sick)를 토대로 여러 그래프를 활용했다. 크게 네 가지 이유로 사민주의 전통적 가치의 성공, 경제의 세계화 속 집산주의적 해법 유효성의 저하, 냉전체제 붕괴 이후 더욱 다원화된 가치의 대두, 전통적 제조업이 위축되는 현상에서 보이듯 지지기반이었던 사람들의 분화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