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똑같은 사람을 만나면 죽는다

도플갱어와 하이데거의 '세인(Das Man)'

by 정명

​서양의 괴담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도플갱어다.

나와 똑같이 생긴 분신을 마주치면 얼마 안 가 심장마비로 죽거나 큰 재앙을 입는다는 미신이다.

괴테나 엘리자베스 1세 여왕도 죽기 직전에 자신의 도플갱어를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인 타자로 마주하는 순간, 영혼이 감당하지 못하고 파괴된다는 섬뜩한 이야기다.

​그런데 21세기의 사무실에서는 이 도플갱어 괴담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다만, 죽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다.


​​오전 8시 지하철 2호선. 스크린도어에 비친 승강장 풍경을 본다. 검은색 롱패딩, 혹은 짙은 네이비색 정장. 무선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응시하는 퀭한 눈동자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데, 마치 '한 사람'을 'Ctrl+C, Ctrl+V'로 복사해 놓은 것 같다.

​사무실에 도착해도 마찬가지다. 옆자리의 김 대리, 앞자리의 이 과장, 그리고 나. 우리는 입은 옷도 비슷하고, 점심 메뉴를 고르는 패턴도 비슷하며, 상사에게 깨질 때 짓는 비굴한 표정마저 똑같다.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명찰을 바꿔 달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다. ​우리는 개성을 거세당했다. 조직이 원하는 '무난하고 성실한 직장인'이라는 표준 규격에 맞춰 스스로를 깎아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상태를 '세인(Das Man)'이라 불렀다. '세인'이란 고유한 '나'를 잃어버리고, "남들 하는 대로" 살아가는 익명의 존재들을 말한다.

​세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 않는다.

"남들이 다 하니까" 주식 투자를 하고, "남들만큼은 살아야 하니까" 영혼을 팔아 아파트를 산다. "남들 보기에 번듯해야 하니까" 싫은 직장을 꾸역꾸역 다닌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사는 삶을 '비본래적 삶'이라 칭하며, 사실상 "살아있으나 죽은 상태"로 보았다. 나의 고유성이 사라진 자리는 '세상 사람들의 평균치'가 채우고 있다.


​​직장인이 겪는 진짜 도플갱어의 공포는 '상사'를 볼 때 찾아온다. ​회식 자리, 술에 취해 넥타이를 머리에 두르고 꼰대 같은 훈계를 늘어놓는 부장을 본다.

배는 나오고, 머리는 벗겨지고, 눈빛은 탐욕과 피로에 절어 있다. 나는 그를 보며 경멸을 느낀다. "나는 절대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하지만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 부장도 10년 전에는 나처럼 "나는 저런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열정 넘치는 신입사원이었을 것이다. 시스템은 그를 10년에 걸쳐 서서히 저 모양으로 깎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스템이 나를 깎아내고 있다.


​저 혐오스러운 부장의 모습은 남이 아니다.

시스템이 나를 복제해 만들어낼 '10년 뒤의 나의 도플갱어'다.

​도플갱어를 보면 죽는다는 말은 사실이다.

미래의 나(부장)를 마주한 순간, "나도 결국 저렇게 되겠구나"라는 체념이 든다면,

그 순간 나의 '젊은 영혼'은 즉사(卽死)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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