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라는 이름의 바위

시지프스와 카뮈의 '부조리'

by 정명

​1. 끝나지 않는 노동의 형벌

​신들을 기만한 죄로 시지프스는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다. 그의 임무는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것이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죽을힘을 다해 정상에 바위를 올려놓는 순간, 바위는 다시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시지프스는 다시 터덜터덜 산을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린다. 이 형벌이 끔찍한 이유는 '힘들어서'가 아니다. 이 노동에 '끝'도 없고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0'으로 돌아간다. 신들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고통이 '무익하고 희망 없는 노동'임을 알고 있었다.


​2. 카뮈와 부조리

​알베르 카뮈는 이 신화를 현대인의 삶에 빗대어 '부조리(Absurdity)'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세상은 침묵한다. 이 간극이 바로 부조리다.


​우리는 묻는다.

"이 일을 왜 해야 합니까?"

세상(혹은 회사)은 답한다.

"그냥 해. 월급 주잖아."

​카뮈가 주목한 것은 바위가 굴러떨어진 뒤, 시지프스가 다시 바위를 가지러 내려가는 그 '휴식의 순간'이다.

그때 시지프스는 깨닫는다.

"아, 이 짓은 영원히 끝나지 않겠구나."

그 절망적인 자각(Consciousness)의 순간이 바로 그의 비극이 완성되는 때다. 모르고 하면 노예지만, 알고 하면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3. 주간 업무 보고의 굴레

​직장인의 달력은 시지프스의 산과 같다.

월요일 아침, 우리는 '업무'라는 거대한 바위를 밀어 올리기 시작한다. 회의를 하고, 보고서를 쓰고, 거래처에 전화를 돌리며 낑낑대며 바위를 민다.

금요일 오후, 드디어 바위를 정상(퇴근)에 올려놓는다. "끝났다!"

​하지만 주말이라는 짧은 찰나가 지나면, 바위는 어김없이 월요일이라는 골짜기로 굴러떨어져 있다.

우리는 일요일 밤,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내일 또 저걸 밀어 올려야 하는구나."

​가장 허무한 것은 내가 밀어 올린 바위의 내용이다.

지난주에 쓴 주간 보고서, 누가 읽어보긴 했는가?

한 달 내내 매달린 프로젝트가 임원의 말 한마디에 엎어질 때, 우리는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내 땀과 노력은 어디로 갔는가. 흔적도 없다. 남은 건 닳아버린 내 손바닥뿐이다.


​4. 바위를 쳐다보는 눈

​카뮈는 에세이의 끝에서 충격적인 말을 남겼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미쳐서 행복한 게 아니다. 바위가 언젠가 정상에 고정될 거라는 헛된 '희망'을 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똑바로 응시하며, "이것이 나의 바위다"라고 받아들인다. 신들이 내린 형벌을 자신의 운명으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신들보다 우월해진다.


​사무실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지긋지긋한 업무가 세상을 바꿀 거라는 착각, 승진하면 바위가 사라질 거라는 헛된 희망. 그것들이 우리를 괴롭힌다.라리 인정하자. 이 바위는 영원히 굴러떨어질 것이다.

월급쟁이의 운명은 원래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울면서 바위를 밀 것인가, 아니면 차가운 눈으로 바위를 노려보며 밀 것인가.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나는 부서지지 않는다."

​그 오기(傲氣).

그것만이 무의미한 지옥에서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반란이다.

오늘도 나는 묵묵히, 그리고 아주 삐딱하게 나의 바위를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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