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는 왜 하필 '간'을 원했나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과 복지라는 이름의 환각

by 정명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 구미호.

이 요괴의 가장 무서운 능력은 날카로운 발톱이 아니라 '변신'이다. 징그러운 짐승의 본 모습을 감추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혹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둔갑한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홀려 제 발로 숲속 깊은 곳까지 따라간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배가 갈라진다. 구미호는 남자의 '간(Liver)'을 빼먹는다. 심장도 아니고 뇌도 아닌, 하필이면 해독과 생명력을 담당하는 장기인 '간'을 탐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를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실재(Reality)는 사라지고, 정교하게 조작된 '이미지(Simulacra)'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타벅스 커피'라는 액체를 마시는 게 아니라, '세련된 도시인'이라는 이미지를 마신다. 우리는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사는 게 아니라, '상류층의 삶'이라는 환상을 산다.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현대인은 화려하게 치장된 '가짜(이미지)'에 중독되어, 자신의 진짜 삶이 파괴되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숭배한다. 이것이 현대판 구미호의 홀림이다.


​​채용 공고 사이트를 본다. 기업들이 내건 이미지는 구미호의 변신처럼 화려하다.


"가족 같은 분위기", "수평적 문화", "무제한 간식 제공", "꿈을 실현하는 곳".


​사무실 인테리어는 카페처럼 힙하고, 웰컴 키트에는 예쁜 다이어리와 텀블러가 들어있다. 이것들은 모두 완벽한 '시뮬라크르(가짜 이미지)'다. 이 화려한 껍데기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바로 당신의 '간'을 빼먹기 위해서다.

​입사하는 순간, 환상은 깨진다.

'수평적 문화'는 '책임의 수평적 전가'였고, '가족 같은 분위기'는 '가족처럼 막 대하겠다'는 뜻이었으며, '무제한 간식'은 '밥 먹으러 나갈 시간도 아까우니 빵이나 씹으며 야근하라'는 사육의 도구였다.

​그들은 우리의 노동력만 가져가는 게 아니다.

스트레스로 딱딱하게 굳어가는 어깨, 술로 찌든 위장, 그리고 수면 부족으로 망가져가는 '간'을 실시간으로 갉아먹는다. 한의학에서 간은 '피로'와 '분노'를 관장한다고 했다. 회사는 우리의 건강한 간을 가져가고, 대신 그 자리에 만성 피로와 억눌린 분노를 채워 넣는다.


​​구미호 이야기의 비극은, 희생자가 여우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챘음에도 그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못해 죽는다는 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가 내 젊음과 건강을 갉아먹는 괴물이라는 걸 안다. 매년 건강검진표의 수치가 경고음을 울린다. 하지만 우리는 사표를 던지는 대신, 다시 구미호의 품으로 기어 들어간다.

"그래도 대기업이잖아", "그래도 명함은 남잖아."

​그 '명함'이라는 얇은 종이 한 장. 그것이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다.

우리는 내 진짜 '간(생명)'이 썩어가는 고통보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화려한 껍데기'를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오늘 밤에도 강남의 빌딩 숲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수만 마리의 구미호들이 야근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간을 포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퀭한 눈으로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키며, 내 간을 기꺼이 상납한다.

이 화려한 도시의 부속품으로 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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