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餓鬼)와 쇼펜하우어의 '고통의 시계추
1. 바늘구멍 같은 목구멍
불교 설화에 등장하는 아귀(餓鬼)는 생전에 탐욕을 부린 자가 떨어지는 지옥의 형벌이다. 놈들의 모습은 기괴하다. 배는 산만하게 부풀어 올라 끊임없이 먹을 것을 요구하는데, 정작 목구멍은 바늘구멍처럼 좁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둬도 삼킬 수가 없다. 억지로 밀어 넣으려 하면 음식은 불길로 변해 목을 태워버린다. 그래서 아귀는 영원히 배고프고, 영원히 목마르다.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욕망의 크기(배)'에 비해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능력(목구멍)'이 퇴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2. 쇼펜하우어와 맹목적 의지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을 '맹목적인 의지(Will)'의 노예 상태로 보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하면 '고통(Pain)'스럽고, 막상 얻고 나면 금세 익숙해져 '권태(Boredom)'를 느낀다.
그리고 그 권태를 피하기 위해 또다시 새로운 욕망(고통)을 찾아 나선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욕망은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이다. 하나를 채우면 열 가지 새로운 욕망이 입을 벌린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저주받은 짐승, 즉 아귀와 다를 바 없다.
3. 연봉은 올랐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가
신입 사원 때 나는 꿈꿨다. "연봉 5천만 원만 넘으면 소원이 없겠다." "대리만 달면 세상이 다를 거야."
시간이 흘러 나는 대리가 되었고, 연봉은 그 이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배가 부른가? 행복해서 미칠 지경인가?
아니, 나는 여전히 굶주려 있다.
이제는 5천이 아니라 1억이 우스워 보인다. 쏘나타를 사면 그랜저가 보이고, 그랜저를 사면 벤츠가 눈에 밟힌다. 내 배(욕망)는 산만큼 커져버렸다.
반면, 행복을 느끼는 목구멍은 바늘구멍처럼 좁아졌다.
옛날에는 퇴근 후 치킨 한 마리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싼 오마카세를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주식 창을 들여다보며 불안해한다. 입으로는 최고급 참치를 씹고 있지만, 뇌는 맛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성취'라는 음식을 끊임없이 입에 쑤셔 넣는다. 승진, 보너스, 명품 가방... 하지만 그것들은 목구멍을 넘어가기도 전에 '카드 값'과 '비교 의식'이라는 불길로 변해 식도를 태운다.
많이 벌면 행복할 거라는 착각. 그것이 현대판 아귀도(餓鬼道)다.
4. 우리는 굶어 죽는 게 아니라, 터져 죽는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더 많이 원하라(Be Ambitious)"고 가르친다. 배를 더 키우라고, 더 걸신들린 듯이 먹어치우라고 채찍질한다. 하지만 아무도 "목구멍을 넓히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현재의 맛을 음미하는 능력은 '패배자의 정신 승리'라고 조롱받는다.
주변을 둘러보라.
가난해서 불행한 사람보다, 너무 많이 가지려다 탈이 나서 불행한 사람이 훨씬 많다.
그들은 쾌락을 쫓지만 즐거움은 모른다. 소유는 하되 향유하지 못한다.
오늘 점심, 당신은 무엇을 먹었는가?
그 맛이 기억나는가? 아니면 허기를 채우기 위해 사료처럼 삼켰는가?
만약 맛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목구멍도 이미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아귀 지옥의 탈출구는 음식을 더 쏟아붓는 게 아니다.
비대해진 배를 찢고, 좁아진 목구멍을 여는 것이다.
"이만하면 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만이, 타오르는 목구멍을 식혀줄 유일한 냉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