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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Aug 16. 2017

그 많던 물류스타트업은 어디에 있는걸까

숫자만 중헌 것은 아니라고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화물운송 스타트업'의 정의에 포함되는 기업들. 무려 '옐로모바일'과 같은 기업도 보인다.

지난 6월, 국내에서 꽤 이름 있는 스타트업 지원기관이 물류를 주제로 행사를 한다고 하여 담당자에게 그 배경을 물었다. 돌아온 답변. 


올해 초 물류스타트업이 크게 늘어났다는 기사를 보긴 했는데, 솔직히 물류스타트업이 많은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류산업은 아직까지 스타트업이 다루기에는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류가 요새 뜨고 있다고 하고, 시장 확장의 가능성도 있어 보여서 행사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본지가 ‘물류스타트업백서’라는 제목을 달고 연재를 한 지도 어언 2년이 넘었고, 국내외 40여 개 물류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을 정리해 <유니콘 꿈꾸는 물류 괴짜들>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했지만, 스타트업 업계에서 바라보는 물류스타트업의 이미지란 딱 이 정도다. 


그러니까, 뜨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 실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물류’는 스타트업이 다루기 어렵다는 이미지도 여전하다.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물류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지난 1월 국토교통부는 “2015년 40개였던 물류스타트업이 2016년 말 기준 80개로 늘었고, 투자규모는 1,086억 원으로 전체의 10.9%에 육박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이 국토부로부터 용역을 받아 조사한 해당 통계는, 지난 3월 발족한 ‘물류스타트업 포럼’과 지난 6월 디캠프와 국토교통부가 공동 주최한 ‘물류디파티’ 등에서 물류스타트업 지원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 국토부가 지난 1월 공개한 물류스타트업 기업의 수와 투자현황(자료: 국토교통부 제공)

한국교통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물류스타트업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분야는 ‘운송(화물운송)’이었다. 지난 6월 다시 업데이트된 한국교통연구원의 통계를 열람해 보니, 전체 98개 가운데 54개의 물류스타트업이 화물운송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위에는 화물운송 스타트업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많다는 화물운송 스타트업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이게 다 물류스타트업이라고? 


화물운송 스타트업이 54개나 집계된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물류스타트업이 98개나 집계된 이유 먼저 살펴보자. 그 이유는 물류스타트업에 대한 한국교통연구원의 정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정의한 물류스타트업은 다음과 같다. 


‘연관 산업분야와 관계없이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고 편의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재화의 공간적 효용(운송서비스), 시간적 효용(보관서비스)을 창출하는 물류산업의 특성을 갖고 있거나, 운송·보관·하역 등 직접적인 물류기능 혹은 포장·유통·가공 등 파생적인 물류기능을 수행하는 스타트업 기업.’ 


좀 길다. 한 줄로 요약해 보면 ‘산업군과 상관없이 물류 비스름한 것을 하는 모든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포인트는 ‘산업군과 상관없이’와 ‘물류 비스름한 것’이다. 국토교통부 보도자료에 ‘2016년 물류스타트업 80개사’라 적힌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화물운송 스타트업은 ‘산업 구분과 관계없이 재화의 공간적 효용을 만드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모든 업체라 할 수 있다.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화물운송의 개념, 즉 ‘중대형 화물차를 이용한 B2B 간선운송’을 부분집합으로 삼는 훨씬 넓은 개념의 정의다. 위 통계에 집계된 업체 중 ‘일반적인 화물운송의 개념’에 들어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고고밴코리아’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집합에 포함된 나머지 부분집합들은 무엇일까. 통계에 화물운송 분야 물류스타트업이라고 집계된 스타트업의 대부분은 음식배달, 퀵서비스, 이사·세탁 등 일부 O2O 업체 등이다. 실제로 한국교통연구원이 정리한 화물운송 스타트업에는 ‘요기요’, ‘캠퍼스달’과 같은 IT플랫폼 업체도 있고, ‘꾸까’, ‘마켓컬리’ 같은 커머스도 있으며, ‘원모먼트’, ‘워시온’, ‘짐카’와 같은 O2O 업체도 포함돼 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생각하기에 물류의 범주 바깥에 있는 업체들이 물류스타트업에 대거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 많은 물류스타트업이 눈에 잘 보이지 않던 이유, 현실과 통계의 괴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한국교통연구원의 보고서 내용 중.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 또한 물류스타트업에 포함된다.

어마어마한 투자규모의 비밀 


다시 국토부 자료로 돌아가 보자. 2016년 물류스타트업 투자액은 1,086억 원으로 같은 기간 전체 투자액 가운데 10.9%를 차지한다. 이중에서 투자규모 기준 상위 3개 업체는 화물운송 스타트업이며, 이들에게 투자된 액수는 770억 원으로 전체의 70%를 상회한다. 이 상위 3개 업체는 우아한형제들(570억 원), 허니비즈(120억 원), 메쉬코리아(80억 원)이다.

이들은 물류스타트업인가. 대중과 매체는 이들 기업을 대개 IT업체로 분류한다. 심지어 우아한형제들은 ‘플랫폼’만 운영한다. 물론 우아한형제들은 물류 부문에 ‘우아한청년들(배민라이더스 등)’과 ‘우아한신선들(배민프레시 등)’과 같은 자회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기업은 우아한형제들의 공시 자료에 포함돼 있지 않다. 즉 두 기업의 물류부문의 투자규모를 따로 계상하는 것은 어렵다. 


이번에는 국내에서 물류를 다루는 스타트업의 누적투자 유치액을 살펴보자.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쿠팡의 뒤를 우아한형제들(누적투자 1,113억 원), 메쉬코리아(755억 원), 허니비즈(120억 원), 비투링크(103억 원) 등이 잇고 있다. 이 수치만 보면 물류를 다루는 스타트업이 잘 나가는 것은 맞는 듯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중 스스로를 ‘물류스타트업’이라고 정의하는 기업은 메쉬코리아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저희도 물류스타트업인가요?


이처럼 물류스타트업도 아닌 이들이 물류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물류스타트업은 많은 듯 없다. 세상이 바뀌어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옛날의 ‘물류’로 지금의 물류 전체를 포괄할 수 없다는 것은 물류업계의 정론이 되었다. 한국교통연구원도 한 보고서(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ICT 융합형 물류스타트업 지원 및 활성화 전략 연구(2015.12. 노홍승 등))를 통해 물류스타트업을 정의하기에 앞서, “굳이 폐쇄적인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물류스타트업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규정한답시고 뚜렷한 선을 긋는다던지, 선 바깥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물류스타트업이 아니라고 부정한다든지 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물류를 넘어선 물류’를 바라보는 국토교통부의 정의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기업 입장에서도 물류의 외연 확장은 나쁠 게 없다. 어찌 됐든 국토부는 정권교체 및 신임장관 인선 이후에도 물류스타트업 지원 및 관련정책 아젠다 제시 기조를 유지한다고 한다. 즉 기업이 스스로를 물류기업이라 칭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굳이 내미는 손을 뿌리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물류산업도 외부의 색다른 아이디어와 기술을 수혈해 발전을 도모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산업 간 영역붕괴’ 흐름에서 만들어진 물류의 새로운 정의가 물류업계 내에서 혹은 국토부 내에서만 맴도는 데서 생긴다. 국토부가 물류의 개념을 보다 세련되고 한층 진일보한 것으로 정의하면 뭐하나. 여전히 업계 밖의 많은 이들은 ‘물류=택배’로 인식하고 있지 않나. 심지어 엄밀히 따지면 택배업과 다른 비즈니스 영역에 속하는 화물운송도 택배와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운송 스타트업이라 정의되는 스타트업 가운데는 스스로를 화물운송 스타트업이라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스타트업 업계가 사랑하는 기업 중 하나인 우아한형제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화물운송 스타트업이라 칭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 통계에 그들은 화물운송 스타트업의 범주에 떡하니 올라 있다. 


실제로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국토부 통계에 물류스타트업으로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자료 조사와 관련해 국토부나 한국교통연구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며 “이와 별개로 고용노동부로부터는 라이더 안전문제로 인한 노동자 지위, 안전 운행 개선 연구 관련 협력 요청을 받아 적극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정부는 물류스타트업을 돕겠다며 적극적으로 손을 뻗고 있는데 정작 스타트업은 그 손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가 너희를 물류스타트업으로 보고 있고 적극 지원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즉 국토부가 ‘물류를 넘어선 물류’를 바라보고 있으며, 스타트업이 물류로 성장하진 않았더라도 물류 관련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면 국토부가 지원할 여지가 있다고 명확히 표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물류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포럼을 결성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나 실제 국토부의 지원 대상이 되는 스타트업은 그들이 ‘물류스타트업’에 해당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어찌 됐든 새 정부 들어서도 스타트업 지원은 계속할 생각인데, 물류스타트업에서 ‘물류’라는 말을 떼는 것이 맞는 지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화과정, 정부가 할 수 있는 것 


정부가 ‘산업 간 영역붕괴’의 흐름에서 탄생한 보다 넓은 범위의 물류스타트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스타트업을 위해 ‘신사업을 위한 정책 범위 설정’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많은 스타트업이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사업을 할 용의는 충분히 있으니 최소한 그 범위만이라도 명확하게 해달라는 니즈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 한 차례 불법 논란을 치른 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택시 플랫폼 시장마저 완전히 빼앗긴 ‘우버코리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논란이 됐던 우버코리아의 ‘우버블랙’은 현재 카카오에게 관련 시장을 완전히 빼앗겼고, 우버코리아의 일반인 공유택시 ‘우버엑스’ 또한 논란이 일어 철수했다. 현재 해당 시장에는 ‘풀러스’, ‘럭시’ 등의 카풀 스타트업이 ‘출퇴근 시간에 자가용을 함께 탈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이용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결국 우버코리아는 분명한 기준 없이 흐릿해진 물류의 경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논란은 논란대로 얻어맞고, 시장은 시장대로 후발주자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우버코리아 외에도 쿠팡, 헤이딜러, 콜버스 등이 모두 국토부의 정책 범위 안에서 논란을 겪은 업체들이다. 


만약 국토부가 이들에게 명확한 정책 범위를 제시해 주었다면? 우버는 비효율적인 시행착오 없이 미국에서처럼 국내에서도 택시를 넘어 화물운송 사업까지 하고 있을 것이며, 쿠팡도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물류기업’이라 칭하며 3PL사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버코리아 관계자는 “우버는 한국의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사업을 할 니즈가 충분히 있는데, 정부가 명확한 범위를 제시해주지 않아 많아 답답한 경우가 있다”며 “스타트업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제시해준다면, 그 틀 안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물류가 그렇게 중헌가 


물류를 일반적인 정의로만 한정하고 정부의 ‘물류스타트업 지원사업’을 바라보면 국토부가 지난 2년간 기울인 노력은 그야말로 대실패나 다름없다. 하지만 ‘물류를 넘어선 물류’의 시각으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찌 됐든 물류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물류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확실히 2년 전과 달라졌다. 그 근거로 첫째, 스스로를 물류스타트업이라 정의하는 업체에 대한 투자업계의 관심과 실제 투자유치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트레드링스, 마이창고에 이어 올해는 원더스가 25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리턴박스처럼 반품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소규모 시드투자를 유치했고, 가장 최근에는 메쉬코리아가 네이버로부터 240억 원의 추가투자를 유치했다. 20억 원 규모의 투자 라운드를 진행 중인 크로스보더 물류업체도 몇 군데 있다. 과거 배달 및 퀵서비스에 집중됐던 스타트업 투자가 물류의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협업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3대 택배업체인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각각 메쉬코리아, 원더스, 고고밴코리아라는 이륜차 물류스타트업과 손을 잡았다. 물론 협업 초기라 아직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켜볼 여지는 많다. 택배업체는 스타트업과 제휴를 통해 팬시(Fancy)한 이미지를 확보했고, 스타트업은 택배업체의 영업망을 활용해 편의점과 유통화주의 물량을 수주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택배업체와 이륜차 물류스타트업 간 협업이 낳은 마이너스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화물운송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화물차를 활용한 배송’이라는 전통적 관점에서 화물운송을 바라보면 국내에 관련 스타트업은 단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술 융합의 관점에서, 혹은 다른 산업과의 연계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 분야에도 기회는 꽤 많을 것이다. 


화물운송을 ‘업’으로 하지는 않지만, 화물운송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업체는 국내에 산적해 있다. 화물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업체와 협업하여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기회 또한 곳곳에 숨어 있다. 


누구는 물류고, 누구는 IT고, 누구는 유통이고 등등. 이렇게 경계를 나누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지금 이 시대, 물류스타트업에서 ‘물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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