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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Sep 05. 2017

'여객물류' 향한 새로운(?) 도전, 감춰진 실패들

안하는 덴 이유가 있지요

도심물류 운송수단으로 ‘여객’ 활용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택시, 버스, 지하철과 같은 여객운송수단이 화물운송에 활용되고, 우리의 이웃이 배달기사가 되어 자전거, 도보를 통해 화물을 전달해주는 그림이다. 혹자는 실효성이 없는 이야기라 주장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이는 불법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림 같던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니혼게이자이(日本経済)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국토교통성은 9월부터 택시, 버스와 같은 여객운송수단이 화물을 동시에 옮길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기존 물류업계의 배송인력 부족문제를 여객운송수단 활용으로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국내 역시 여객운송수단의 도심물류의 활용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우버의 음식 배달 서비스 ‘우버이츠’가 ‘자전거’, ‘도보’ 일반인 배달기사를 모집하여 한국 공식 서비스를 론칭했다. 물류스타트업 ‘퀵퀵’은 서울 지역 10여개 지하철 퀵서비스 업체를 인수하여 ‘지하철 공유망’을 구축했다. 친환경 대체운송수단으로 ‘전기 자전거’ 개발에 분주하고 있는 업체도 있다. 심지어 ‘관광버스’를 라스트마일 운송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업체까지 나타났다.


새로운 도전 이전, 누군가의 실패가


여객의 물류 활용방안에 대해 알아보기 전, 한 가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 자전거, 일반인(Crowd Sourcing), 지하철, 버스 등이 새로운 운송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업체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객운송수단을 ‘물류’에 활용하고자 하는 물류업체들의 고민은 없었을까. 그건 아닐 것 같다. 새로운 이들이 도전하는 이유가 분명한 만큼, 기존에 있던 이들이 다가가지 않는 이유도 분명할 것 같았다.


직접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정부가 ‘녹색물류’를 외친 것은 이제 1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인데, 우버이츠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자전거’ 배달에 대한 시도조차 없었을까. 왜 세계적으로 공유경제 물류 실험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엔 ‘일반인 배달’을 시도한 물류업체가 없었을까. 과거 지하철을 물류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없었을까. 그리고 왜 지하철은 ‘노인을 위한’ 일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모든 새로운 도전 이전에는 누군가의 검증과 실패가 있었다.


#1 친환경 자전거 배달은 환상으로


실상 국내에 ‘자전거 음식배달’이 도입되는 것은 올해 하반기 서비스 오픈 예정인 우버이츠가 최초다. 복수 배달대행업체에 따르면 그 이전 자전거 배달은 검토되지도 않았다. 친환경 운송수단, 유류비 제로화 등의 이점에 불구하고 자전거 음식배달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배달기사의 수익과 연결된다. 자전거는 오토바이보다 느리고, 많은 음식을 배달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이유로 자전거 배달기사를 업으로 삼는다면 한 달의 최소 생활비조차 충당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배달스타트업 허니비즈 한 관계자는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주문을 수행해야 돈을 버는 국내 배달기사의 특성상, 자전거는 시간대비 생산성에서 오토바이에 비해 뒤쳐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배달기사의 소득에 영향을 준다”며 “더욱이 서울만 해도 우천과 같은 열악한 날씨, 오르막길 등의 장애요인으로 인해 자전거 배달 자체가 어려운 지역이 많다”고 밝혔다.


#2 누가 택배를 1000원에 옮길 것인가


DHL의 마이웨이즈(My Ways), 아마존의 아마존플렉스(Amazon Flex) 등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적으로 공유경제 물류 실험이 연이어 전개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왜 공유경제 물류 모델이 등장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국내 물류시스템이 너무 잘 돼 있기 때문이라는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 DHL이 지난 2013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파일럿테스트를 진행한 ‘마이웨이즈’는 DHL 물류거점에 보관된 상품을 일반인 배달기사가 최종 소비자에게 배송을 하고 배송비를 받는다.


택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택배시스템은 기껏해야 건당 2,000원 선의 ‘저단가’에 전국 익일배송 구조를 만들어냈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를 떼고 나면 배송기사가 받는 돈은 1,000원 미만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일반인 배달기사로 1,000원에 화물 몇 개를 들고 가느냐는 설명이다. 물론 일반인이 자가용으로 여러 건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다지만, 이것은 유상운송으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위법이기에 택배업체가 그 위험을 감당할 리 없다는 의견이다.


한진 택배담당 고위관계자는 “이미 택배업계는 명절 등 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에 외부 용차를 활용하고 있고, 건당 단가는 약 2,000원 정도”라며 “이들 각각이 약 50개의 화물을 가져간다고 하면 한 번 순회배송 당 10만 원의 이익을 남길 수 있지만, 개인이 와서 화물 몇 개를 가지고 간다 해도 줄 수 있는 돈은 많아 봐야 2,000원 미만인데 누가 하려고 할까하는 생각”이라 밝혔다.


#3 지하철택배, 그 찬란한 역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인 2005년 어느 날. 지하철을 활용한 택배 간선운송이 논의된 적이 있는 것을 아는가. 5678서울도시철도 시절, 여객수단으로 이용되는 지하철에 화물칸 한 칸을 할당하는 방식이었다. 2000년대 두 차례 논의된 해당 프로젝트는 담당자의 뇌물 수수로 인해 고꾸라졌다고 하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 문제는 있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택배업계 한 관계자는 “지하철을 통한 간선물류는 상하차와 규모의 경제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30초에서 1분 사이인 정차 시간 동안 화물칸의 화물을 하차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어찌 하차를 한다고 하더라도 지하철 플랫폼에서 지상까지 화물을 옮기는 과정이 번거로웠다”고 증언했다.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돼 있던 수많은 택배업체들이 모두 포기한 이유다.


#4 노인을 위한 나라만 있다


지하철 퀵서비스. 노인복지법에 따라 지하철 무료 이용이 가능한 65세 이상 노인들을 활용한 운송사업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적은 없는가. 왜 지하철 퀵서비스는 ‘노인 배송기사’만 이용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단가 분배구조에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하철퀵서비스의 평균 수행 단가가 약 8,500원이다. 여기서 업체가 수취하는 평균 수수료 30%를 공제하면 지하철 퀵기사는 한 건당 약 6,000원의 돈을 버는 셈이다.


만약 여기에 ‘물류비(지하철 이용요금)’가 추가되면 지하철 기사의 수익은 50% 이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지하철 퀵서비스 기사의 평균 월수익은 지하철 무임승차에 불구하고 50~120만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연다고 천명한 지금, 현행 최저임금 6,470원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노인만을 위한 지하철 퀵서비스가 만들어진 이유다.

지하철 퀵서비스 기사의 월수익의 폭이 50~120만 원으로 넓게 분포하는 이유는 배송기사의 능력에 따라 하루 수행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하철퀵업계에 따르면 초보 기사는 하루에 2~3건에 주문을 수행한다고 한다.


과거 문서수발실 인수를 통해 지하철 퀵서비스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한 퀵서비스업체 대표는 “한 기사가 같은 방향의 여러 화물을 픽업해가는 오토바이 퀵서비스와 달리 지하철 퀵서비스는 1인 1화물 운송이 주를 이루기에 수익률이 낮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65세 이상의 노인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노인들이 소일거리를 찾아, 혹은 생계를 위해서 지하철로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시한폭탄을 안고


사실 여객물류에 대한 새로운 시도, 과거의 검증 이전 더 두렵게 다가오는 것은 여객운송수단의 역할론이 제도가 닿지 않는 회색영역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에서 ‘자가용’ 배송기사를 활용하고 있는 우버이츠가 한국에서는 위법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륜차 영역에 한정해서 배달기사를 모집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인복지법 26조에 따라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한 65세 이상 노인들을 통해 영리행위를 하고 있는 지하철 퀵서비스업체 또한 회색영역을 공략한 또 다른 사례다.


이런 업체들은 어찌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권해석에 따라 어느 순간 불법논란에 휘말려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가 들이닥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과거 우버(택시)와 쿠팡, 그리고 헤이딜러와 콜버스와 같은 서비스들이 한국에서 겪었던 논란을 기억한다. 여객운송수단이 도심물류 수단으로 전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제도’라는 장벽을 필연적으로 넘어야 한다.


현행 국내법은 화물자동차운송사업과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의 역할을 명확하게 나누고 있다. 명확한 역할 분배에도 불구하고 여객수단을 물류에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어찌됐든 또 다른 누군가는 과거 누군가의 도전을 딛고 다시 한 번 새로운 시작의 종을 울린다. [계속]


[연재] 여객물류 특집

(1) 여객물류 향한 새로운(?) 도전, 감춰진 실패들
(2) 자전거 물류의 효용, 한국형은 언제
(3) 지하철에도 '공유망'이 탄생한다면
(4) 전세버스가 물류를 한다고?
(5) 네거티브의 시대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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