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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Oct 31. 2017

폐기율 0.01%의 비밀, 디지털 혁신한 충무로 인쇄판

단권 인쇄 한계 넘어선 퍼블로그

동네 골목마다 있었던 사진관이 언제부턴가 사라진 세상, 앨범을 뒤척인 것도 어린 시절 추억처럼 남아있다. 구글 클라우드 앨범에 사진을 저장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스크롤하는 세상, 가끔은 아날로그가 그립다. 모든 아날로그가 사형 선고 당한 것 같은 디지털 세상, ‘아날로그’를 판매하는 업체가 나타났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든 ‘추억’을 판매한다고 이야기하는 이 업체의 이름은 아비즈. 원가 경쟁력과 품질역량으로 업계 1위로 우뚝 선 이 업체의 무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이다. 

아비즈는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격변의 시대’인 2003년, ‘사진’이라는 아이템에서 기회를 보고 탄생한 업체다. 수많은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로 바뀌고, 어느 순간 동네에 하나씩은 있던 사진관들이 사라지던 그 시기다. 그러나 아비즈는 사진을 다루는 방법은 바뀌어도 추억을 담는 매개체인 ‘사진’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영어 단어에는 없는 아비즈(Abyz)라는 사명은 사람이 태어나고(A, B부터), 세상을 떠날 때(Y, Z까지)까지 추억을 담겠다는 포부를 나타낸다. 


송창훈 아비즈 대표는 본격적인 사업화에 앞서 약 6개월 동안 ‘충무로’ 인쇄골목서 일하며 필름 출력, 인쇄, 재단, 제본 등 10~15개의 관련 공정을 직접 배웠다. 아비즈가 단순히 디지털 사진 인화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구성된, 추억을 담은 책자인 ‘포토북’ 사업까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인쇄골목의 풍취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충무로 시스템의 한계는 그 때 송 대표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충무로 시스템의 문제점


송 대표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충무로의 인쇄 공정은 ‘소품종 대량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여러 업체가 협업을 통해 하나의 고객 주문을 처리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 망실(loss)이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 고객주문 수량에 맞춘 생산을 하기 위해 충무로 인쇄 공정에서는 애초에 고객 주문량보다 많은 숫자의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가령 충무로 생산 시스템에 1만개의 책자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 망실을 예상하고 처음 1만 5천부를 출력하고, 5000부의 망실이 생기고 남은 1만 부를 고객에게 전달했다. 물론 시중에 판매할 목적의 서적처럼 대량 생산하는 상품은 이런 시스템이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더욱이 분당 수백, 수천권이 생산될 수 있는 생산설비에서 ‘단 1권’의 책을 생산하는 것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큰 비효율이다. 


송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1권’의 책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고민했다. 물론 충무로 인쇄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당시 송 대표는 충무로 인쇄골목 관계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고 한다. “아니, 왜 그런 걸 하려고 해? 책은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아야 남는 거야. 한 권씩 팔아서 얼마나 남겠어?” 


그러나 송 대표가 바라본 아이템 ‘포토북’은 추억을 간직할 단 한 사람, 혹은 추억을 공유할 몇 사람을 위해 생산되는 상품이다. 앞서 예를 든 대량생산 프로세스처럼 1만 5000부를 생산하고 5000부의 망실이 나타난다면, 5000명의 고객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애초에 망실이 발생해선 안 된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동시에 합리적인 가격에 생산가를 떨어뜨리지 못한다면 사업은 무의미해진다. 


충무로를 품다 


때는 2009년. 아비즈는 ‘퍼블로그’라는 온라인 브랜드를 론칭하며 본격적인 포토북 생산·판매 사업에 나섰다. 포토북을 생산하기 위한 아비즈의 처음 선택은 충무로의 각 공정을 담당하는 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생산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회의적이었다. 각각의 공정을 아웃소싱하는 것이 생산원가는 저렴할 수 있었지만, 전체적인 품질을 담보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아비즈는 높은 설비 투자비용을 감당하고 충무로의 모든 공정을 사내에 내재화시켰다. 생산품질, 속도, 정확성을 유지하여 생산 전 과정을 ‘스마트팩토리’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시대는 바뀌었다. 어느 순간 개인이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소량의 책을 만들고 유통하는 ‘독립출판’이라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충무로에서도 이제는 소량 출판을 한다고 하는 업체들이 왕왕 보인다. 송 대표에 따르면 퍼블로그 서비스 준비 직전 “안 될 거 왜하느냐”라고 이야기했던 많은 충무로 사업자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업을 접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의 개막이다. 


송창훈 아비즈 대표는 “인쇄업계 분위기를 보더라도 대량주문은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고객 한 명, 한 명의 요청에 따라 인쇄 작업을 하는 POD(Print On-Demand)가 뜨고 있다”며 “더욱이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 ‘소품종 대량인쇄’에 비해 ‘다품종 소량인쇄’의 원가가 더욱 저렴해지는 시점 또한 왔다”고 말했다. 


조금 더 ‘스마트’하게

 

현시점 아비즈는 단순히 충무로의 인쇄 공정을 내재화한 것을 넘어서 ‘스마트팩토리’ 시스템 구축을 자랑하고 있다. 아비즈의 스마트팩토리란 기초적인 실적 집계부터 시작하여 주문 및 생산자동화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 분석, 합성, 보정 후 출력 직전 단계까지 전 과정 ‘자동화’를 의미한다. 아비즈의 스마트팩토리 공정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퍼블로그에서 판매되는 모든 상품에는 고객 주문 정보를 기반으로 한 바코드와 QR코드 정보가 내장돼 있다. 사진 출력, 앨범 및 포토북 제작, QC(Quality Control), 포장 및 배송으로 이어지는 공정에서 이 모든 정보는 각 라인의 작업자에게 순차 전달되며, 각각의 작업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업무에만 충실하면 된다. 송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곰이나 여우도 할 만큼 쉬운 시스템’이다.

▲ 포토북 표지에 부착돼 있는 바코드. 포토북뿐만 아니라 앨범, 인화사진 등 퍼블로그가 생산한 모든 상품은 ‘바코드화’ 돼있다.

가령 A고객이 100장의 사진을 인화하고, 포토북과 앨범을 각각 한 개씩 구매한다고 하자. A고객은 퍼블로그의 제작툴을 사용하여 사진을 업로드하고 구매상품을 꾸민다. 이후 A고객이 ‘해당 상품 구매’를 클릭하면 이 과정에서 1차 검수가 들어간다. 예를 들어 A고객이 올린 100장의 사진 중, 해상도가 낮은 파일은 시스템에서 사진을 인화하면 해상도가 깨질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자동 송고한다. 그것을 본 A고객은 사진을 교체하거나, 그대로 진행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퍼블로그는 고객이 원하는 ‘포토북’ 디자인을 직접 할 수 있는 편집툴을 자체 개발했다. 모바일로도 사용 가능하다.

두 번째. 구매를 마친 A고객의 구매정보는 최대 1시간의 대기시간을 거쳐 ‘출력부서’로 전달된다. 한 사람의 추억을 담은 사진이라는 재화의 특성상 출력 이후에는 해당 고객이 아니면 재판매가 어렵다는 것을 고려한 정책이다. 만약 1시간의 대기시간 동안 A고객의 마음이 바뀌어 ‘액자’ 하나를 더 구매하고 싶다고 하면 바로 추가하면 된다. 혹여 즉시 출력으로 발생할 수 있는 폐기손실을 최소화한 것이다. 


세 번째. 출력부서에 전달된 고객주문 정보를 출력부서의 담당자는 그저 확인하고 ‘클릭’하면 된다. 출력부서 담당자가 고객주문 정보를 클릭하면 자동으로 주문명세서(오더지)가 출력된다. 동시에 작업자가 주문명세서를 따로 확인하지 않았음에 불구하고 주문명세서에 맞는 사진이 자동으로 출력된다. 


여기서 A고객이 주문한 포토북과 앨범, 100장의 사진인화는 모두 각각 다른 설비를 통해 출력된다. 이후 제작부서는 각 제품에 맞는 제작 공정을 진행한다. 가령 사진인화와 같은 경우 고객 주문에 따라 자동 분류된 사진을 그저 비닐포장지에 동봉하면 된다. 포토북, 앨범 같은 경우 각각에 필요한 재단, 제본 등 필요한 공정을 거친다. 그렇게 완성된 모든 인화사진, 포토북, 앨범에는 고객주문 정보가 들어있는 ‘바코드’가 붙어있다.

▲ 퍼블로그 사진인화 공정. 고객이 주문한 사진의 개수만큼 자동 분류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퍼블로그 사진앨범 표지 제작 공정. 아비즈는 앨범표지 제작 등에 사용되는 속지와 같은 부자재를 수요예측을 통해 최저 재고량(3~4일 치 재고보유 목표)만 보유하도록 팀별 목표를 할당하고 있다. 


네 번째 공정은 QC부서가 담당하는 ‘전수검사’다. 퍼블로그의 공정 중 ‘사람’의 힘이 들어가는 유일한 부분이기도 하다. QC부서 담당자는 자동화 기계가 체크하지 못하는 포토북의 스크레치와 같은 미세한 부분과 ‘사진색감’ 등을 감별한다. QC부서 담당자 중에는 ‘포토 스튜디오’ 등 전문기업에서 요구하는 디테일한 색감을 전문적으로 체크하는 이들도 있다. 송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마치 ‘병아리 감별사’와 같이 일반인이 확인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확인할 수 있다. 퍼블로그의 스튜디오 고객(B2B고객)은 약 1000여개(17년 8월 기준)가 있다고 한다. 


다섯 번 째. QC부서가 모든 상품을 확인하면, A고객이 주문한 각각의 포토북, 앨범, 포장된 인화사진은 바코드로 스캔돼 한 공간에 모여, 포장부서에게 전달된다. 하루 수천 개의 상품 출고가 일어남에 불구하고 이 작업이 물 흐르듯 진행되는 이유는 결국 바코드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팩토리화 때문이다. 만약 퍼블로그에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이 없었다면 각각의 작업자는 생산이 완료된 제품에 수기로 ‘A고객’이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제작된 상품들을 모아 포스트잇 정보를 기반으로 눈으로 확인하며 합포장 했을 것이다.

▲ 퍼블로그가 보유한 다양한 포장재. 퍼블로그는 액자, 포토북, 인화사진 등 상품의 크기를 보유한 다양한 포장재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감성재인 ‘사진’을 다루는 만큼 상품이 다치지 않도록 특수 제작한 ‘단단한 포장재’를 자체 개발했다. 


그리고 마지막. 포장 작업자는 그렇게 포장이 끝난 상품을 출고선반에 놓아둔다. 퍼블로그의 출고선반은 각각 ‘사이즈’가 다른데, 이는 고객이 주문한 상품의 부피에 따라 데이터를 기반하여 자동 배정된다. A고객의 경우 사이즈가 큰 ‘앨범’을 함께 주문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출고선반이 자동 배정된다. 만약 인화사진만 주문한 B고객이 있다면 이 고객의 포장건에 대해서는 작은 선반이 배정되는 식이다. 해당 라인의 작업자는 그저 바코드를 스캔하고, 안내되는 선반에 해당 포장상품을 보관하면 끝이다.

출고선반에 보관중인 상품들. 해당 상품들은 3만 원 이상 주문한 서울지역 고객에게는 아비즈가 ‘번개배송(물류스타트업 원더스 아웃소싱)’으로 명명한 당일배송으로, 그 외 고객에게는 우체국 택배를 통해 익일 배송된다. 


송 대표는 “퍼블로그가 하루에도 서로 다른 품목의 수천개 상품을 생산하면서도 고작 수십명의 인력으로 폐기율 0.01% 이내의 생산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라며 “만들어지는 상품마다 필요로 하는 데이터 가공 방법이 다른데, 이것을 모두 자체 개발한 솔루션을 통해 진행한다. 제작부서는 그저 각 상품에 해당하는 ‘트리거’만 작동시키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작업자들이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복잡하게 인식하면 누군가는 분명히 실수를 하게 된다”며 “퍼블로그는 편의점 점원이 바코드로 물건을 찍고 결제만 하듯, 각 파트에서 본인이 해야 하는 업무를 명확하게 하고, 표준화 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오더라도 같은 제품을 같은 품질로 만들 수 있도록 공정을 단순화 한 것”이라 강조했다. 


AB를 넘어 YZ로 


아비즈가 2009년 ‘퍼블로그’를 론칭한 이후 이룩한 성과는 놀랍다. 퍼블로그는 랭키닷컴 기준 하루 평균 방문자수 4~5만 명으로 국내 디지털 사진인화 업계의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품질 측면에서도 2010년 이래로 HP 주관 아태지역 디지털프린트어워드 1위를 5년 연속 수상하며 독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런 성과를 기반으로 디캠프, 포스코, 기업은행 등으로부터 약 23억 원의 누적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향후 아비즈는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시장에 아비즈의 시스템을 수출할 계획이다. 이미 아비즈가 미국시장에서 론칭한 ‘증명사진 앱(easy print)’은 미국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다운로드 순위 TOP3에 들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아비즈는 기존 주력상품인 포토북, 앨범, 사진인화뿐만 아니라 전자액자 같은 디지털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며, 가까운 시일 내에 ‘영정 사진’ 서비스까지 오픈할 예정이다. 그야말로 그들의 사명이 의미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천하기 위해 분주하고 있는 것이다. 


송 대표는 “아직 국내 디지털 사진인화 제품시장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이 단계를 돌파하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앞으로 아비즈의 미래는 물류를 어떻게 혁신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아비즈는 ‘생산자동화’에 특화된 경험과 경쟁력을 해외 시장에서도 접목하기 위해 여러 기획과 개발을 병행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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