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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Feb 10. 2018

세탁기와 택배차

조금은 다른 이야기


얼마전 연이은 한파로 제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배수관이 동파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장 문제가 된게 '세탁'이었는데요. 윗층의 누군가가 세탁기를 돌리면 아랫층의 누군가는, 그러니까 동파가 된 배관의 바로 윗층 세대는 집안이 물바다가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2주 전 주말. 집에서 낮잠이나 자려고 했던 저는 시시각각 울리는 안내 방송에 시달렸습니다. "동파로 인해 피해보는 세대가 많으니, 세탁기 돌리지말아주세요"라는 내용이었지요.


이 방송은 거의 2주 가까이 이어졌으니, 누군가는 계속해서 세탁기를 돌렸고 누군가는 동파로 피해를 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집에 피해는 없었습니다. 제게 있어선 "방송 시끄러워서 집에서 뭘 못하겠네"라는 불만 뿐이었습니다.


세탁물이 쌓여, 다음날 입을 옷이 없어지는 상황은 또 다른 고역이었죠. 바로 다음날 홍콩으로 출국하는데, 싸갈 옷이 없었으니까요.


그 때 전 어머니에게 "다 돌리는 세탁기, 우리만 안돌릴 이유가 있느냐" 불평 하기도 했는데요.


어머니는 한결같이 "그러면 안된다"라고 말하며 세탁물을 모으고,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코인세탁소에 가서 또 수십분을 기다려 탈수까지 한 다음 그것을 찾아오시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피해는 우리에게까지 찾아왔습니다. 세탁기 주변 바닥은 물바다가 됐고, 그것을 빼려고 펌프까지 동원하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비롯된 소소한 편의는, 다른 누군가에게 굉장히 큰 불편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요. 그리고 그 불편을 직접 느끼기 전까지는, 절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요.


택배? 당연히 하루 뒤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 무료배송도 당연하죠.


택배기사? 힘들 건 알겠는데, 알바 아니겠죠. 당장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 가족이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문득 우리의 당연함을 위해 희생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조금은 반성해봅니다.


"택배차는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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