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다른 이야기
얼마전 연이은 한파로 제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배수관이 동파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장 문제가 된게 '세탁'이었는데요. 윗층의 누군가가 세탁기를 돌리면 아랫층의 누군가는, 그러니까 동파가 된 배관의 바로 윗층 세대는 집안이 물바다가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2주 전 주말. 집에서 낮잠이나 자려고 했던 저는 시시각각 울리는 안내 방송에 시달렸습니다. "동파로 인해 피해보는 세대가 많으니, 세탁기 돌리지말아주세요"라는 내용이었지요.
이 방송은 거의 2주 가까이 이어졌으니, 누군가는 계속해서 세탁기를 돌렸고 누군가는 동파로 피해를 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집에 피해는 없었습니다. 제게 있어선 "방송 시끄러워서 집에서 뭘 못하겠네"라는 불만 뿐이었습니다.
세탁물이 쌓여, 다음날 입을 옷이 없어지는 상황은 또 다른 고역이었죠. 바로 다음날 홍콩으로 출국하는데, 싸갈 옷이 없었으니까요.
그 때 전 어머니에게 "다 돌리는 세탁기, 우리만 안돌릴 이유가 있느냐" 불평 하기도 했는데요.
어머니는 한결같이 "그러면 안된다"라고 말하며 세탁물을 모으고,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코인세탁소에 가서 또 수십분을 기다려 탈수까지 한 다음 그것을 찾아오시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피해는 우리에게까지 찾아왔습니다. 세탁기 주변 바닥은 물바다가 됐고, 그것을 빼려고 펌프까지 동원하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비롯된 소소한 편의는, 다른 누군가에게 굉장히 큰 불편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요. 그리고 그 불편을 직접 느끼기 전까지는, 절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요.
택배? 당연히 하루 뒤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 무료배송도 당연하죠.
택배기사? 힘들 건 알겠는데, 알바 아니겠죠. 당장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 가족이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문득 우리의 당연함을 위해 희생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조금은 반성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