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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Apr 09. 2019

세월호와 안전 불감증, 그리고 정치

생명의 무게를 이용하는 이들을 혐오하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자는 취지의 페이스북 릴레이를 받았습니다. 자세한 참여 방식은 잘 모르겠지만, 저에게 릴레이를 전해준 분의 글을 보고 예측해 봤을 때 세월호 참사 당시 자신의 기억을 적고, 릴레이를 받을 3명을 지명하는 방식이라 생각됩니다.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기억 릴레이라는 슬로건을 보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이후 이 사건이 얼마나 많이 정치적으로 이용돼 왔는지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본질을 호도하는 슬픈 일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세월호,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던 수많은 안전사고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과적화물에 침몰했다고 하는 세월호 참사는 ‘설마’가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이 정도는 더 올려도 괜찮겠지. 평소에도 그렇게 했는데. 다들 그렇게 하는데. 제대로 관리를 하면 남는 돈이 없는데. 이런 안전에 대한 불감증은 때때로 우리를 잡아먹습니다. 분노하게 합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불과 6개월 이후 발생한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를 기억합니다. 환풍구 덮개 위에서 공연을 관람하다가 관람객 20여명이 추락한 사고입니다. 10여명이 사망자를 낳았던 큰 사고였습니다. 그때도 다들 올라가는데 설마 무너진 환풍구가 원인이었습니다. 부실시공과 관련한 책임자가 색출됐고, 하청과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건설현장 구조가 파악됐으며, 안전 불감증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때도 분노했습니다.


기억하나요. 2017년 12월 21일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가 있던 날입니다. 29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그보다 많은 30여명의 부상자가 나온 참사입니다. 사고 발생 이후 조사 결과 스포츠센터 건물의 소방점검은 미비했고, 비상탈출로는 적치물로 막혀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 또한 설마가 불러온 인재입니다. 우리는 또 책임자를 색출했고, 안전 불감증에 대한 보도는 이어졌고,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한 대형 물류업체 물류현장에서 불과 3달 사이 3명의 근로자가 안전사고로 연이어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도 물류업체의 전국 물량을 처리하는 대전 허브터미널의 가동중단과 함께 대단위 안전점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 책임자를 색출했고, 안전 불감증에 대한 보도는 이어졌고, 또 분노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분명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슬픈 일은 대중이 느끼는 무게감이 다를 뿐이지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요. 그때도 우리는 넘쳐나는 뉴스를 보고 슬퍼할 것입니다. 분노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잊어갈 것입니다.


때때로 매우 화가 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생명에 경중을 매길 수 없지만, 정치의 경중은 매길 수는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매번 이러한 생명의 무게를, 국민의 분노를 자신을 위해, 집단을 위해 이용합니다. 모두 우리가 마주해야할 슬픈 현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이 글을 페이스북에 남기고, 3명의 릴레이를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곡해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누구든지 이 글을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가져가도 무방하다는 코멘트를 하나 달았습니다. 이 릴레이가 내걸고 있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자는 목적에는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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