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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Jan 20. 2020

생활 속에서 물류 찾는 법

제 취미를 소개합니다

2018년 지스타 행사장 방문차 부산에 내려갔을 때의 일입니다.

바이라인네트워크 회식 단골집이라는 어떤 곱창집 앞에 화물차 한 대가 섰습니다.

행주를 수거하는 차량이었고, 저는 차량을 보자마자 열심히 셔터를 눌렀죠.

누가 말한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옆에 있었던 어떤 선배 기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여기까지 와서 회식 중에 너도 참 독하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 있으니,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 입니다.

동네 카페에 앉아 뉴스레터를 쓰고 있는 지금 제 앞에도 물류는 있습니다.

비어 있는 커피잔이 보이네요. 이 커피를 만든 사람은 카페 사장님입니다.

통상 제가 직접 커피를 날라야 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집과 달리 이 집은 사장님이 직접 커피를 제 자리까지 갖다 줍니다.

제가 나르든, 사장님이 나르든, 물류는 여기에도 있습니다.

이 커피잔은 어떻게 저한테 왔을까요? 노트북은, 마우스는, 테이블은요?

사실 그 전에도 있었어요.

사장님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가게가 커피의 원재료인 원두를 공급 받는 어떤 곳이 있을 겁니다.

소매업체에서 살 수도, 도매업체에서 살 수도 있겠죠? 사장님이 수완이 좋다면 제조공장과 직접 망을 뚫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과하게 생각하면 직접 커피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분일 수도 있겠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기계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만들었겠죠. 기계에는 여러 부품이 들어갔을 거에요. 그 부품도 누군가가 만들었고, 어딘가에서 이동했겠죠.

이 모든 곳에 물류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물류는 물건의 흐름만 포함하지 않습니다.

이 카페는 고객에게 쿠폰을 주고 있어요. 커피를 사먹을 때마다 종이 쿠폰에 스티커를 붙여주죠.

스티커를 10개 모으면 매장에 있는 모든 음료 중 하나를 골라 공짜로 받을 수 있어요.

쿠폰은 재구매율을 끌어올리는 대표적인 마케팅 수단이에요. 흔하디 흔하죠.

왜 이 카페는 종이 쿠폰을 쓰고 있을까요? 왜 스티커를 붙이고 있을까요? 스티커를 디자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이 카페 사장님은 굳이 '종이 쿠폰'을 쓰고 있을까요? 왜 '스티커'를 쓰고 있을까요?

종이 쿠폰은 고객 입장에선 공짜지만, 사장님은 공짜가 아니에요. 쿠폰을 디자인하고 만드는데 분명히 돈이 들어요.

스티커도 마찬가지에요. 스티커 하나하나가 얼마 하지 않겠지만 이것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도 분명히 돈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흐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카페 사장님이 '종이 쿠폰'을 쓰고 있는 이유도, '스티커'를 쓰고 있는 이유도 있겠죠. 이유가 없는 것도 이유겠죠.


커피 쿠폰 하니 다른 가게들이 생각나요. 제가 자주 방문하는 신촌 파스쿠치는 디지털 쿠폰을 쓰고 있어요. 적립금을 받으려면 멤버십이 필요하죠.

하지만 여기서는 한 번도 쿠폰을 받은 적이 있어요. 멤버십 가입이 귀찮았거든요.

별도의 앱을 설치하든, 카드를 만들든. 모두 저에겐 귀찮은 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죠.


서울 어딘가에서 만난 또 다른 카페도 디지털 쿠폰이 적립되는 곳이에요.

이 곳은 아마 한 번 방문하고 또 올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이 동네를 올 일이 그리 많지 않거든요.

그래도 쿠폰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앱설치가 필요 없었거든요. 전화번호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쿠폰이 발급됩니다. 편해요.


서울 도곡동 어디에 있는 또 다른 카페는 종이 쿠폰을 쓰는 곳이에요. 이곳은 스티커가 아닌 도장을 찍어주죠.

여긴 고객이 원한다면 쿠폰을 벽면에 붙여서 보관해줍니다.

다시 올지 기약은 없지만, 그래도 이곳에선 쿠폰을 받아요.

지갑이 가득 찰 걱정이 없으니까요. 언젠가는 오겠지 싶기도 하고요.

이 곳에선 3번 정도는 쿠폰으로 음료를 받아 먹은 것 같네요.


세상 어디에든 흐름은 있어요.

그리고 모든 흐름에는 이유가 있어요.

그 흐름의 이유를 찾는 것, 때로는 결핍을 찾는 것.

제가 생각하는 물류란 그런 것입니다.

단순히 무엇인가 보관하고, 무엇인가 이동하는 것만을 봐선 큰 의미가 없어요.


전 부산 곱창집 앞에 주차된 화물차를 찍으면서 다양한 질문들을 생각했어요.

행주는 어떻게 수거할까. 몇 집이나 돌까. 음식점이 문이 닫혀 있으면 어떻게 할까.

수거된 행주는 어디서 세탁을 할까. 정말 새 것처럼 세탁할 수 있을까. 혹 더러운 행주가 들어온다면 클레임은 어떻게 처리하지.

만약 수거한 행주를 세탁해서 다시 식당으로 배송하는 구조라면, 돈은 어떻게 받을까. 행주 하나당 돈을 받을까. 아니면 월 단위로 구독요금을 받을까.


이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거에요. 그래서 사진을 찍었어요. 에버노트를 열고 기록했어요.

제 기억력이 썩 좋지 않거든요. 찍어두지 않으면, 기록하지 않으면 까먹어요.

기록한다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 때 생각난 질문들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때로는 보이지 않는 흐름을 관찰하기도 해요.

돈을 흐르게 하는 무언가, 정보를 흐르게 하는 무언가, 고객의 행동을 촉발하는 무언가를 찾아 봐요.

요즘 같은 디지털이 대세가 된 세상에선 보이지 않는 흐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왜 이 쿠팡차는 이렇게 생겼을까요? 토트박스에 붙은 번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난주에는 쿠팡 로켓배송 화물차 사진을 찍었어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이였어요.

번쩍번쩍 빛이 나는 탑 안에는 4단 선반이 비치돼 있었죠. 선반 위에는 여러 개의 토트박스가 올라가 있었어요.

토트박스 앞에는 영문과 숫자 조합의 코드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더라고요. 왜일까요? 여기에도 이유는 있을거예요.


물리 세계에선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요. 이건 아마 디지털 세계의 보이지 않는 흐름을 돕기 위한 도구겠죠.

디지털 세계에서도 물건의 정보는 흐르고 있으니까요. 그게 물리 세계의 행동을 촉발하고 있으니까요.

이 또한 제가 생각하는 물류의 일부에요. 그래서 쓴 글이 이거(이상하게 생긴 쿠팡 화물차의 정체, 바이라인네트워크) 구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물류가 정말 물류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물건의 흐름이 물류라면, 제가 생각하는 물류는 물류가 아닐 수 있거든요. 사전적으로는 분명히 아니죠.

하지만 이 흐름을 놓치고서는 물건의 흐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걸요.


아마 내일도 저는 열심히 무엇인가 찍고, 기록하겠죠.

2년 전 부산에서 만난 화물차를 보고 그랬던 것처럼.

지난주 여의도에서 만난 쿠팡 화물차를 보고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전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는 말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에게 헛소리처럼 다가가지 않길 바라지만, 뭐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죠.

아래는 제 취미이기도 한 물류 사진 모음집이에요.

매일매일 무엇인가 찍고, 기록하죠.


물류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는데 뭐 어떤가요.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서 저도 어쩔 수 없거든요.


이 안에서 생활 속의 물류를 함께 찾아보지 않겠어요?

은근히 재밌을 수도 있어요!

물류 사진 찍기는 제 취미에요. 물류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많은데, 뭐 어떤가 생각합니다. 모든 흐름에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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