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의 틈새
1. 이 글은 커넥터스가 만드는 큐레이션 뉴스레터 '커넥트레터'의 6월 23일 목요일 발송분입니다.
안녕하세요, 요즘 한창 서울 도심 곳곳의 창고를 탐방하고 있는 엄지용입니다. 어제는 서울 강동구 암사시장에 방문했습니다. 네이버의 동네시장 장보기 성공 사례로 많은 미디어에 소개됐던 그 장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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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닿아 네이버가 우리동네커머스(프레시멘토)와 고박스를 통해 운영 대행하고 있는 암사시장 MFC(Micro Fulfillment Center)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상인들은 과일, 반찬 등 먹거리가 담긴 봉지를 들고 이 공간까지 주문이 들어온 상품을 집품합니다. 초기에는 상인들의 직접 픽업을 이끌어내기까지 다소 어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구조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혔다고 합니다. 오프라인 기반 전통시장 상인들에겐 생소하고 전에 하지 않았기에 귀찮을 수도 있는 온라인 집품 프로세스지만, 시간이 흐르고 매출이 늘어남에 따라 합을 맞춰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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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펜데믹은 엔데믹으로 전환됐고, 다시 거리에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손님도 전보다 늘어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 매출 감소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상인들은 사람들이 ‘외식’을 많이 하다 보니, 먹거리나 식자재 구매 수요 자체가 줄어들었다고 매출 감소의 이유를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상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온라인 사업 지원이 ‘먹거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쉽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요즘 전통시장 지원한다고 열심히 보도자료를 날리고 있는 쿠팡이츠나 배달의민족은 태생이 음식배달 앱이고, 네이버 동네시장 장보기 또한 대부분의 카테고리를 먹거리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암사시장만 하더라도 먹거리를 판매하는 상인들은 전체의 40~5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먹거리가 아닌 생필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디지털 지원 정책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셈입니다.
역시 현장에 나오면 문헌조사만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됩니다. 전통시장 커머스 이야기는 조만간 자세한 콘텐츠로 다시 한 번 소개하도록 하고요. 오늘의 뉴스픽은 연결점을 마련하여 ‘마이크로 커머스’라 불리는 작은 상인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긴 말할 필요 없이 국내 이커머스 업계는 쿠팡과 네이버의 양강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물론 SSG닷컴이 이베이코리아(지마켓글로벌)를 인수하며 3강 구도 형성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었지만, 최근의 추이를 보자면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입니다. 사실상 성장세를 만드는 대형 종합몰은 쿠팡과 네이버가 유이하며, 나머지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성장 정체와 악화된 수익성의 혹한기를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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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에서는 대형 플랫폼들과 다른 형태의 고민을 하고 있는 자그마한 커머스 사업자들이 있습니다. 쿠팡이나 네이버, 배달의민족 같은 거대화된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하거나 자사몰을 운영하고 있는 동네 상점과 전통시장 상인, 셀러들이 여기 포함되겠죠.
이들에게는 당장의 하루하루 매출이 고민입니다. 어딘가 더 저렴한 가격에 치고 들어오는 경쟁사들이 고민입니다. 아마존의 성장을 만들었다는 SPC(Selection, Price, Convenience)는 작은 커머스 업체들에게까지 통용되지 않습니다. 이미 수조원 단위의 돈을 투하한 쿠팡의 물류(Convenience)를, 국내 1위 포탈을 기반으로 만든 네이버의 압도적 상품 선택권(Selection)을 영세한 작은 커머스 업체들이 만들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가격(Price)’ 경쟁력 또한 결국 규모를 기반한 구매력이 만들기에, 작은 업체가 쉽사리 가져갈 수 없는 역량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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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서는 ‘전장’을 바꿔야 합니다. 마이크로에는 마이크로만의 경쟁력이 있습니다. 쿠팡과 네이버는 쉽게 하지 못하는 ‘디테일’을 살려서 승부한다면 규모는 작을지언정 의미 있는 수익과 성장을 만드는 새로운 판을 짜낼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브랜드’와 ‘스토리’입니다.
얼마 전 ‘제 10회 유통산업주간’에 연사로 참여한 박지혁 닐슨코리아 전무의 발표에서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닐슨코리아는 최근 시장 점유율은 별로 높지 않더라도 ‘수익성’을 만든 브랜드 업체들을 조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의외의 ‘공통점’을 찾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소량의 SKU(Stock Keeping Units)입니다. 상품구색이 수천개씩 되는 브랜드보다 수십개밖에 안 되는, 심지어 1~2개의 핵심 상품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브랜드가 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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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무에게도 이는 의외의 결과였다고 합니다. 통상 이커머스의 성장을 만드는 데 ‘방대한 상품구색’은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고객의 상품 선택권을 늘린다면 매출은 자연히 증가할 수 있습니다. 마켓컬리가 식품에 더해 화장품을 팔고 오늘회가 축산물로, 정육각이 수산물로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 그런데 오히려 작은 SKU가 돈을 버는 브랜드의 공통점으로 보인다니요. 뭔가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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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냥 작은 SKU만 운영한다고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돈 버는 브랜드들은 상품 구색은 적지만, ‘독립적’인 상품 제안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독립적이라는 건 애플의 ‘아이폰’처럼 하나밖에 없는 상품을 제안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상품은 얼마 있지도 않을뿐더러, 작은 커머스 업체들이 판매하는 데도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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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인 상품 제안이란 독립적인 스토리텔링을 의미합니다. 이미 유사한 상품이 여러 개 있더라도, 고객의 신뢰를 만드는 콘텐츠 기반 스토리텔링이 브랜드 성공을 위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닐슨코리아의 예시에 따르면 제품의 원산지나 생산 환경, 원료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커뮤니케이션한다면 상품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소비자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특히 MZ세대라 분류되는 소비자들은 공정거래, 친환경 원료와 같은 제품 외적인 가치가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합니다.
닐슨코리아가 발견한 또 다른 트렌드는 고객들이 단순히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구매하기보다, 조금 가격이 비싸더라도 ‘믿을만한’ 브랜드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현상입니다. 실제 닐슨코리아의 조사 결과 ‘최저가’를 지향하는 브랜드의 수익성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통상 시장 판매 가격과의 격차가 좁으면 좁을수록 브랜드의 수익성은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통상 1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어떤 상품을 5000원에 판매하는 브랜드보다 9000원이나 1만1000원에 판매하는 브랜드의 수익성이 좋았다는 겁니다.
닐슨코리아가 발견한 돈 버는 브랜드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사몰 활용’입니다. 외부 판매채널 입점 판매 매출을 최소화하고, 자사몰 중심의 판매를 강화하는 업체들의 수익성이 통상 좋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비중은 카테고리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7:3, 8:2 정도라나요.
실제 쿠팡, 네이버, 지마켓과 같은 오픈마켓에 입점하는 것은 플랫폼 트래픽을 활용하여 매출 규모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개별 브랜드의 색깔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자사몰은 초기 트래픽 유입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독립적인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죠.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외부 판매채널을 이용하더라도, 판매채널의 특성에 맞춰서 전략적으로 상품을 전개하는 브랜드의 수익성이 높게 나타납니다. 예컨대 쿠팡, 네이버, 지마켓 등 판매채널의 브랜드 색상에 맞춰서 단독 상품을 구성하고, 프로모션 상품을 달리하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쿠팡에서는 대용량 제품만 판매하고, 네이버에서는 해외 수입 제품만 판매하는 등 SKU를 적절하게 판매채널별로 분배할 수도 있겠죠. 한국에서는 아직 판매채널별 SKU 최적화를 잘하는 브랜드는 보이지 않지만, 글로벌 브랜드로는 P&G와 닥터브로너스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박 전무의 설명입니다.
닐슨코리아의 이야기를 했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로 성공한 판매자들은 제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 제주도에서 만난 방역용품 커머스 업체 대표는 고객 CS 수단으로 ‘카카오톡(!)’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방문 판매원처럼 고객에게 개인화된 메시지를 보내고, 바이럴을 유도했습니다. 이 업체는 제주도에 위치한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했는데, 이 부분을 핵심 고객인 제주도에 거주하는 중장년 여성 고객에게 강조하며 소구했습니다.
“육지에서 건너오는 마스크 기다리는 데 한 세월이죠? 몰랐을텐데 제주도에 공장이 있어요. 제주에서 생산한 깨끗한 KF 인증 마스크를 빠르게 받아보세요!” 그러면 고객들은 또 다른 주변 지인들에게 상품을 알리는 전도사가 됐다고 합니다. “제주도에 마스크 공장이 있는 거 알아?”로 시작하는 스토리텔링은 다시 한 번 로컬 단위로 재현됩니다.
비슷한 사례는 다른 카테고리에서도 변주됩니다. 언젠가 소개받은 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유아용품 판매자는 고작 20여개의 상품구색으로 ‘파워셀러’가 됐습니다. 그는 한 아이의 어머니였죠. 판매하는 모든 제품의 실사용 후기를 아이 사진과 함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에게 공유했는데 그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또 다른 당근마켓 로컬 커머스 입점 판매자는 매장에 방문한 고객들의 닉네임을 기억하고 불러준다고 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나다고요.
그러고 보니 박지혁 전무도 이런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커머스 업계에 ‘유료 멤버십’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와중, 그가 경험한 최고의 멤버십은 그의 집 앞에 있는 과일가게가 운영하는 것이라고요. 그 가게는 한 달에 몇 천원을 내면 네이버 밴드에 초청하여 그날그날 들어오는 제철과일을 업데이트 하고, 고객에게 추천 상품을 배달해줍니다. 과일가게 사장님은 과일을 먹어본 고객의 후기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취향에 맞춰 새로운 과일을 제안해주는 데 그 만족도가 엄청나다고요.
여기 인공지능 기반 개인화 추천 같은 대단한 기술이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아날로그 공간에서 펼쳐진 관계와 감성이 남았을 뿐입니다. 과연 이런 감성적인 디테일을 거대화된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초기 쿠팡 로켓배송에는 ‘감성’이 있었습니다. 쿠팡의 배송기사는 아이가 있는 집을 기억하여 노크를 했고, 고객에게 손편지를 썼으며, 심지어 박스에 그림까지 그렸습니다. 생산성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도무지 이해 안가는 그 행동들이 맘카페를 중심으로 거대한 바이럴을 만들어냈습니다. 소셜커머스 3사라 묶여 불렸던 쿠팡을 독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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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이제는 거대화된 쿠팡 로켓배송에는 감성은 사라지고 속도만 남았습니다. 쿠팡 배송기사에게는 더 이상 손편지나 박스 그림을 그릴 여유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게 진짜 사람 손인지, 증강현실인지 알 수 없는 배송완료 손짓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 감성의 빈 공간이 우리 동네 작은 커머스가 공략할 틈새이자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펜데믹은 이커머스 기업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지만, 엔데믹은 생각보다 이커머스 기업들에게 가혹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사람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누군가의 예측이 무색해질 정도로 거리 가득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호황이 계속될 줄 알고 물류 인프라를 늘려놓은 이커머스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배경입니다. 괜히 아마존이 물류 긴축을 하고, 컬리가 3자 물류 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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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조차 휘청거리는 기저효과에 한국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쿠팡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호재(?)가 있다면 기저효과고 뭐고, 여전히 이커머스 시장 평균 3배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대로 버텨낸다면 정말 쿠팡이 한국의 독보적 점유율을 갖춘 이커머스 플랫폼이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이어질 정도로요.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 요금 인상, 택배 대리점 사업 퀵플렉스와 판매자 대상 풀필먼트 제트배송 확장 등 이익을 끌어올릴 사업의 경과를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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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카카오T대리의 숙적 ‘로지소프트(바나플)’를 티맵모빌리티가 인수했다는 소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로지소프트는 카카오모빌리티의 대리운전 서비스가 등장하기 이전 시장을 지배하던 절대강자고, 여전히 카카오T대리의 천하통일을 저지하고 있기도 한 전화대리 프로그램 1위 업체입니다. 티맵모빌리티는 이번 인수로 카카오모빌리티와 대항할 수 있는 대리운전 서비스 네트워크를 확보하게 됐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단, 대리기사들에게 썩 좋지 않은 로지소프트의 브랜드 이미지가 티맵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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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커넥터스 구독자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소식이 하나 있어 전합니다. 커넥터스는 이번 주부터 기존 주 3회였던 유료 콘텐츠 송고량을 주 5회 이상으로 늘립니다. 콘텐츠는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콘텐츠 요금은 이전과 동일한 월 4900원입니다. 몇 달 전 객원 에디터로 합류한 하진우님에 이어, 커넥터스의 두 번째 동료로 신승윤님이 합류했기 때문입니다. 신승윤님은 앞으로 커넥터스에서 로컬 커머스 브랜딩 관련 콘텐츠를 주력으로 전할 예정입니다.
구독자 여러분 덕에 저희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성원에 보답하는 더 큰 가치를 전할 수 있도록, 커넥터스는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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