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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Apr 03. 2016

느림의 공급망, 우리는 왜 속도에 열광하는가

빠른 배송이 당연한 세상, 느림의 미학

예스24의 총알배송, 신세계의 쓱배송, 쿠팡의 로켓배송, 티몬의 슈퍼배송, 마켓컬리의 샛별배송...


수많은 기업들이 ‘빠른 배송’을 만들고자 경쟁하고 있습니다. 신세계의 쓱배송은 광고를 통해 “5분 뒤면 도착한다”를 강조하고 있으며, 쿠팡 또한 일산지역에서 로켓배송 품목의 ‘2시간 배송’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마켓컬리는 당일 주문한 상품이 다음날 새벽에 집 앞에 놓이는 ‘샛별배송’을 강조하고 있지요.


(사진 : 신세계 쓱광고(배송편), 하지만 진짜 5분 뒤에 오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장봤으니까 5분 뒤에 온다는 함정이...)


어쩌면 우리들은 ‘빠른 배송’이 당연한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주문한 상품이 내일 도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주문한 상품이 오늘 도착하는 것도 이제는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소비자의 빠른 배송에 대한 기대수준은 상당 부분 올라갔습니다. 조금이라도 배송이 늦는다면 고객 클레임이 쇄도하죠. 때문에 택배업체에 있어서 ‘익일배송률’은 그들의 서비스를 정의하는 중요한 KPI가 됩니다.

(사진 : KG로지스는 카카오 옐로아이디를 통해 고객 클레임에 대응합니다. 택배업체 고객 클레임의 대부분은 '배송'문의죠.)


하지만 이 시점에서 다시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왜 우리는 속도에 열광하기 시작했을까요? 


혹 현재의 빠른 배송이 그저 당연한 가치가 됐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물론 일반적인 재화의 경우 고객이 느린 것보다 빠른 배송을 선호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온라인 유통채널의 ‘저렴한 가격’에 더해 빠른 배송을 통해 오프라인 유통채널이 갖는 ‘즉시성’이라는 가치까지 충족시킬 수 있겠지요. 그러나 상품의 부가가치가 속도를 상쇄한다면, 고객은 얼마든지 ‘느림’을 감수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스트라입스, 커스텀에 빠지다


커스텀 남성복 커머스 스트라입스는 남성 맞춤복을 판매합니다. 스트라입스에 따르면 고객이 스트라입스에서 상품을 주문하고 받아보기까지는 평균 7일~10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저 또한 지난달 스트라입스에서 맞춤셔츠 한 벌을 주문했었는데요. 16일에 주문한 상품이 31일에 도착했습니다.(셔츠 소매에 이니셜을 새기는 서비스를 받을 경우 배송 리드타임이 다소 증가한다고 합니다.) 느리죠.


그렇다면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스트라입스에서 옷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은 자신만의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점, 즉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타 쇼핑몰과 달리 스트라입스의 공급망 최전방에는 택배기사가 아닌 ‘스타일리스트’가 있습니다. 스타일리스트는 고객접점에서 고객의 치수를 재고, 1:1 스타일 상담을 해줍니다. 이것은 모두 무료로 진행됩니다. 지난 31일 CLO 사무실에도 스트라입스의 스타일리스트가 방문했었는데요. 상담을 받은 한 편집국 기자는 그 자리에서 셔츠를 구매했지요.

(사진 : CLO라운지 창고에 방문한 스타일리스트, feat. 편집장)


셔츠를 구매한 기자는 “오버핏 셔츠를 구매하고 싶었는데 시중에는 원하는 치수의 셔츠를 팔지 않는다”며 “상담을 통해서 원하는 치수를 직접 만들고 옷을 주문할 수 있어서 바로 구매를 결정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셔츠를 구매한 기자는 여성입니다. 남성 맞춤복을 판매하는 스트라입스에서 왜 여자가 셔츠를 구매할까 의문이었는데요. 사실 오버핏 셔츠를 사고 싶으면 그냥 옆 동네 유니클로에서 파는 남성셔츠를 사면 자연스럽게 오버핏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이것은 패션을 알지 못하는 저의 안일한 생각이었더군요... 


셔츠를 구매한 기자왈. “시중에 파는 남성셔츠를 그냥 사서 입으면 남성의 치수를 기준으로 만들었기에 옷의 일부가 몸에 안 맞는 부분이 생긴다”고 말하더군요. 결국 자신이 원하는 오버핏 셔츠를 갖기 위해서는 ‘커스터마이징’이 답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주문한 셔츠가 기자에게 배송되기까지는 아마도 10일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느린 속도요? 그게 문제가 될까요. 시중에서 전혀 구할 수 없는 자신만의 셔츠를 만들었는데 말이죠. 


메이커스위드카카오, 문화에 빠지다


카카오는 지난 2월 16일 모바일 주문생산플랫폼 ‘메이커스위드카카오’를 론칭합니다. 메이커스위드카카오는 카카오톡 플랫폼 내부에 내장된 주문생산(Make to Order) 방식의 서비스입니다. 카카오톡 어플리케이션 내부의 ‘주문생산’ 탭을 눌러서 주문 가능한 상품을 열람할 수 있지요. 


메이커스위드카카오의 핵심은 “팔릴 만큼만 생산한다”입니다. 애초에 제조회사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최소생산수량을 설정하고 그 이상의 주문 건에 대해서만 생산에 들어갑니다. 이를 통해 제조회사는 평균 약 20% 수준의 재고물량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재고비용이 제거된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기에 서로 이득입니다. 


카카오에 따르면 메이커스위드카카오에서 주문한 상품이 고객에게 도착하기 까지는 평균 2~3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느리죠. 게다가 사실 메이커스위드카카오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동종 공산품에 비해 그다지 저렴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반응은 꽤나 괜찮습니다. 메이커스위드카카오는 지난 2월 16일 론칭부터 3월 14일까지 한 달 동안 총 51개 품목을 판매했습니다. 그 중 38개 품목이 최소 주문수량을 넘어서 실제 생산, 판매됐는데요. 수치적으로 살펴보자면 메이커스위드카카오에 한 달 동안 올라온 품목 중 75%가 목표수치를 달성, 판매됐고 그렇게 판매된 상품의 매출은 3억 원에 달합니다. 카카오 또한 이런 성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관계자는 “오빅 작가의 2단 우산은 500개가 5시간 만에 완판되서 앵콜에 들어가기도 했고, 앵콜 판매 이후에도 단시간 내 다시 완판을 기록했다”며 “인지도 높은 브랜드 없이도 아티스트 제품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자체 입증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왜 비싼 가격, 느린 배송속도에도 불구하고 메이커스위드카카오에서 판매되는 상품을 구매할까요. 앞서 카카오가 강조한 포인트 ‘아티스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메이커스위드카카오 플랫폼에 올라오는 상품의 상당수는 아티스트와 제휴를 통해 탄생한 문화상품입니다. 생산부터 한정판임을 강조한 독창적인 제품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그 희소성에 매료됩니다. 만약 상품을 구매하는 이가 해당 상품을 기획한 아티스트의 팬이라면 높은 가격 따위 더더욱 문제되지 않겠죠. 

(사진 : 메이커스위드카카오는 추천 게시판을 통해 추천수 10개 이상의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검토합니다. 고객을 생산의 주체로 참여시킨 것이지요. 실제로 다음웹툰 '홍도'의 피규어 상품이 판매되기도 했지요. 물론 추천게시판에 옆동네 N사 웹툰 아티스트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메이커스위드카카오는 매주 화요일 10여개의 상품을 업데이트하면서 이러한 고객반응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있습니다. 현재 피규어와 의류·잡화를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는 품목들은 장차 팬덤이 강한 스타제품으로 확대, 판매될 계획입니다. 메이커스위드카카오를 총괄하는 카카오 홍은택 수석부사장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향후 ‘LP음반’ 판매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음반사업·스포츠마케팅도 눈독… 카카오의 제조업 혁신 어디까지…(서울경제)


음반이라... 갑자기 카카오가 지난 1월 1조 8천700억 원에 인수한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생각나네요. 혹 메이커스위드카카오에 로엔의 간판스타 아이유의 피규어가 판매될 수도 있으려나요. 재밌는 상상입니다. 이 부분은 조만간 발행될 CLO 4월호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주문생산(Make to Order), 속도를 뛰어넘은 가치


앞서 소개한 두 서비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꽤나 잘 나간다는 것. 론칭 2달째를 맞이하는 메이커스위드카카오는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현재까지의 성과는 꽤나 괜찮은 편입니다. 스트라입스와 같은 경우 현재까지 5만 명의 고객치수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스트라입스에 따르면 고객의 1년 기준 재구매율은 50% 이상이며, 매 분기 50% 이상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요. 지난해 11월에는 50억 원 규모의 추가투자 유치도 발표했습니다. 건강해보입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두 기업 모두 ‘주문생산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두 기업은 모두 고객의 주문 이후 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별다른 재고를 두지 않습니다. 메이커스위드카카오는 애초에 재고를 두지 않는 생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생산공장 인수를 발표한 스트라입스의 경우 일부 완제품(기본형 흰색 셔츠 같은 경우 잘 팔려서 완제품 재고를 두고 운영한다고 합니다.) 및 생산 부자재를 제외하고는 재고를 구비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때문에 느립니다. 주문과 함께 상품 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당연히 고객이 상품을 수령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집니다. 남들과 똑같은 상품을, 그것도 다소 비싸 보이는 가격에 판매하는데 느리기까지 하다면 당연히 고객은 경쟁사로 이탈하겠지요. 그러나 두 서비스는 느림을 상쇄할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업체는 ‘커스터마이징’에서 답을 찾았고, 또 다른 업체는 ‘문화상품’에서 답을 찾았지요.


가치가 느린 속도를 상쇄한 두 서비스의 사례는 무엇보다 속도에 열광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시대에 많은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처음 했던 질문을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속도에 열광하기 시작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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