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물류사랑은 어디까지?
#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4년 기준 운수업조사 잠정결과’에 따르면 국내 화물자동차 운송업은 27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동자료에 따르면 국내 화물자동차운송업체 17만 8000개 중 약 17만 2000개가 개별업종(1인 1기업 형태인 용달 및 개별화물자동차 운송업)으로 전체 종사자의 96.5%가 영세 1인 사업자로 나타났다.
영세한 개별차주들의 현실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물류 플랫폼’이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방법은 단순하다. 기존 차주와 화주간 거래의 중간에 등장하는 2~3단계 이상의 다단계 주선구조를 플랫폼을 통해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중간 주선업체가 수취하는 수수료를 차주에게 바로 지급하여 차주가 실제 받는 지급 금액을 늘릴 수 있다. 물류산업에 만연한 ‘다단계 문제’와 ‘저단가’를 혁파하고, 차주와 화주 양측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좋은 그림이다.
이 때문인지 국내에도 수십여개의 기업들이 ‘화물 정보망’이라 불리는 플랫폼 사업에 진입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이 사업은 실상 쉽지 않다. CJ대한통운, 한진, 한솔로지스틱스 등 국내 유수의 물류기업들 역시 정보망 사업에 진입했지만 이중 아직까지 명확하게 시장을 재편했다고 평가받는 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수수료 무료, 정보망 운영의 기반이 되는 계열사 물량 등을 갖고 시장에 진입했음에 불구하고 성장에 난항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CJ대한통운 한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의 화물 정보망 ‘헬로’로 성과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며 “론칭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외부 물량이 아닌 자사 물량을 돌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밝혔다.
실제 플랫폼의 영입대상이 되는 가맹점들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물류 플랫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국내 한 운송업체 관계자는 “플랫폼에 들어가서 얻는 이득에 비해 플랫폼에 들어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한 가능성이 플랫폼 진입을 막는 원인이 된다”며 “대기업이 플랫폼 입점 주선사가 가진 거래처 정보를 취득하여 하루아침에 단가 영업을 통해 빼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라 전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업체가 ‘화물 정보망’ 사업에 야심찬 도전장을 던졌다. 기업의 이름은 SK플래닛.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11번가를 운영하고, O2O 서비스 시럽을 제공하고 있는 그 SK플래닛 맞다. 어찌 보면 데이터를 다루는 IT·유통기업의 새로운 도전이며,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물류를 잘 알지 못하기에 던진 무모한 도전이라 볼 수도 있겠다. 어찌됐든 산업간 경계가 무너진 것은 분명한 상황 속에서 SK플래닛이 화물정보망 사업 ‘트럭킹’을 론칭한 이유는 무엇일까.
SK플래닛이 화물정보망 서비스인 ‘트럭킹’을 지난 9월 26일 론칭한 상황. 론칭후 20일이 지난 시점인 10월 13일, 기자는 SK플래닛의 트럭킹 사업을 담당하는 김용훈 프로젝트2실장을 만났다. 김 실장은 엔씨소프트 출신으로 게임보다는 플랫폼 분야에서 기획, 개발, POC(Proof Of Concept) 노하우를 쌓아왔다고 한다. 운송사업에 대해서는 이번이 첫 도전이다.
김 실장이 속한 SK플래닛 버티컬사업추진단은 전사적 협업이 없더라도 개별사업으로 의미가 있는 신규 모델을 빠르게 추진, 개발하는 조직이다. 최근 SK플래닛이 발표한 패션렌탈 서비스 ‘프로젝트앤’, 이번에 발표한 ‘트럭킹’은 모두 버티컬사업추진단의 작품이다. 버티컬사업추진단의 모토는 “대기업스럽게 놀지 말자”다. 최소 서비스로, 최소 가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등장하여 신속하게 사업을 변형시켜나가자는 ‘린스타트업’ 정신을 계승한다.
트럭킹 역시 그 기조를 이어 받았다. 개발인력 9명, 제품담당 3명, 영업·홍보 6명 총 18명의 작은 조직이 트럭킹 서비스를 담당한다. 사업승인은 올 초 떨어졌으며, 3개월 안팎의 짧은 준비 과정을 거쳐 차주 약 1만여 명을 모집하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10월 시점으로 하루 물동량은 약 5000건. 트럭킹 론칭 이전 시장의 기대는 꽤 컸지만, 기대만큼 큰 성과를 만들지는 못한 모습이다. 실제로 트럭킹에 올라오는 물량은 직접물량보다는 주선물량이 대부분이며, 다른 화물 정보망 서비스에 비해 올라오는 주문 또한 별 차이가 없어 ‘도긴개긴’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내부 평가다.
김 실장은 “차주들은 트럭킹의 진입 이전부터 SK 내부물량을 통해 ‘저단가 주문’ 및 ‘높은 주선사 수수료’ 문제를 해결해주는 모습을 만들어주길 바랬다”며 “하지만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초기 SK그룹 물량을 가지고 가지 못해서 차주들로부터 참 많은 욕을 먹고 있다”고 전했다.
트럭킹은 현재 플랫폼 내부로 주선사 유입에 힘쓰고 있다. 트럭킹이 주선사 유입에 힘쓰는 이유는 결국 물량 확충을 위해서다. 차주 유입을 위해서는 물량 확충이 필연적으로 선행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업계 대부분의 물량유통을 담당하는 주선사 물량 유입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얼핏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단계 구조를 혁파하여 화주와 차주의 직거래를 목표로 하는 물류 플랫폼 아니던가. 왜 주선사가 필요할까. 그 이유는 화물 특성에 따른 다양한 운송니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물운송주선 과정에는 다양한 변수가 따른다. 화물운송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화물운송에는 단순한 정시배송뿐만 아니라 혼적, 화물특성에 맞는 특수차량 수배, 파손될 수 있는 화물에 대한 대책 등의 추가적인 이슈가 시시각각 발생한다. 결국 화물과 차량, 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관제인력의 오프라인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트럭킹 역시 현시점에서는 별도 업력을 보유한 관제인력을 통한 수동배차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율성이 높은 방법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트럭킹의 목표이자 경쟁력은 결국 ‘잘 짜여진 알고리즘’에서 나타난다. ‘트럭킹’이라는 물류 플랫폼이 여타 화물 정보망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마치 우버(UBER)와 같이 화물이 언제, 어디로 이동하고 그에 따라 요금은 어떻게 달라지고,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톤수, 거리수 등의 변수를 모두 고려하는 알고리즘을 짜야 된다는 것이다. 즉, 트럭킹은 궁극적으로 기존 배차담당자의 머릿속에 내재화된 로직을 데이터화한 100% 자동 알고리즘 구축을 목표하고 있다.
김 실장은 “사실 온전히 수작업 배차를 한다고 하면 물류업계에 우리보다 잘하는 사람들은 수두룩하게 많다”며 “기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화물배차를 로직으로 극복할 수 없었다면 트럭킹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 강조했다.
보통 화물차주들 사이에서 지입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나. 회사에서도 지입차를 들이는 것이 사실 불안하다. 그럼에도 지입차를 쓰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일정에 배차를 할 수 있는 그 편의성에 있을 것이다. 사실 언제든 배차를 받을 수 있는 배차 성공률 100%인 플랫폼이 시장에 있다면 회사는 지입차를 들일 이유가 없다. 차주들 사이에선 ´노예계약´이라 표현되는 지입계약을 맺는 방법이 아니라, 트럭킹 플랫폼을 통해 차주들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해줄수는 없을까. 사실 트럭킹은 이런 비전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화물정보망, 운송중계를 떠나서 육상운송시장 이상의 범위 안에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 김용훈 SK플래닛 트럭킹담당 실장
여기까지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기자의 의문은 명확했다. 그래서 SK플래닛의 트럭킹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전국24시콜화물’이나 시장에 먼저 진입한 물류기업의 화물정보망에 비해 갖는 경쟁력은 지금 당장 무엇이 있는가. 아직 주선물량은 물론이거니와 SK그룹 물량 확충 역시 부족한 상황이며, 강조하고 있는 기술력 역시 실체가 없는 미래의 이야기 아닌가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확실히 트럭킹은 양면시장인 플랫폼 사업을 영위하면서 물동량을 많이 가진 것도 아니며, 차주와 화주가 많이 모여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처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플랫폼 사용편의성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시장에 나가보니 그것도 중요한 포인트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트럭킹은 SK플래닛의 사업 일환이라기보다는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시장을 인식하고 시장에 진입한 스타트업처럼 봐주면 좋겠다”며 “현시점에서 우리의 경쟁력은 오프라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진정성”이라 밝혔다.
트럭킹이 당장은 전국24시콜화물과 경쟁하고 있지만, 그 위치까지 도달하는 방법, 그리고 그 이후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령 SK플래닛은 얼마전 SK텔레콤으로 분할된 LBS사업본부의 티맵 등을 운영하며 차량관제 사업, 오프라인 택시운영 등을 직접 해봤고, 이 부분이 트럭킹에 활용할 수 있는 노하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여객과 물류의 특성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동시간에 처리해야 하는 주문을 펼쳐놓고 어떤 주문을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부분은 분명 유사하다는 게 SK플래닛의 설명이다.
김 실장에 따르면 많은 IT업계 관계자들이 기존 시장에 기술적으로 뛰어난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으면 더 뛰어난 플랫폼으로 기존 업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 넘겨짚는다. 김 실장은 자신 역시 그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입장이며, 화물시장도 그에게는 기술적으로 낙후된 시장처럼 보이는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트럭킹은 절대로 오프라인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급적 오프라인에 밀착된 현장 바닥에서 구르는 ‘싼마이’ 정신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 현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내부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오프라인 경험이 분명하게 플랫폼에 녹아내려야 하며, SK플래닛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O2O’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 무게감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궁금해했던 트럭킹과 SK그룹의 연결고리는 사실상 없었다. 트럭킹 자체가 SK플래닛의 신규사업의 일환으로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진행된 건이며, 이 때문에 트럭킹이 먼저 개별 독립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트럭킹 역시 “SK그룹이 알아서 잘해주겠지”라는 생각보다 “SK그룹의 조력없이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다.
SK에너지의 또 다른 화물정보망 ‘내트럭’과도 트럭킹을 시작할 때부터 서로 이야기를 했으며 분명 지금은 영역이 겹치는 모습이지만, 지향점이 다르기에 각자의 관점에서 물류를 바라보며 나아가겠다는 설명이다. SK에너지의 내트럭은 주유소, 터미널 사업의 확장개념이며 SK플래닛은 커머스 사업자이기에 자연히 묶이는 경쟁력이 ‘물류’, ‘배송’이고, 트럭킹 역시 그 부분에서 사내 시너지를 발휘하겠다는 계획이다.
트럭킹 론칭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강조한 SK플래닛의 커머스 사업 11번가와의 시너지는 곧 연결될 조짐이 보인다. 김 실장에 따르면 2017년부터 장기적으로 ‘화물운송’과 ‘라스트마일 물류’ 두 가지 영역을 중점 추진할 전망이다. 이 때 11번가의 B2C 물량을 트럭킹이 처리하는 그림의 협업모델을 만들어나가는 중이라 전했다. 특히 트럭킹의 화물차를 통한 간선운송과 이륜차 라스트마일 물류를 결합한 서비스를 추진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국내 몇몇 이륜차 물류스타트업과 제휴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실장은 “11번가와의 제휴는 연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될 수는 있지만 당장 결정된 상황은 아니다”라며 “서로 이야기를 하며 여러 가지 협업 모델을 만들고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 전했다.
* 필자주= 트럭킹과 11번가의 제휴는 지난달 15일 이륜차 스타트업 ´원더스´와의 협업을 통해 처음 시장에 그 모습을 선보였다. 11번가의 이벤트 물량을 트럭킹이 사륜차 간선운송하고, 원더스가 이륜차 직송방식을 통해 110분 배송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