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도널드 트럼프)
1. 예기치 못한 질문
얼마 전 PT 중,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갑자기 물으셨습니다.
“임산부가 타이레놀을 먹으면 자폐아가 생긴다는 기사 보셨어요?”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의학 및 정신과학을 전공한 제 지식으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스쳐 지나가듯 기사에서 본 듯한 기억이 있었지만, 설마 했습니다.
그래서 “어그로 끌기 위해 이상한 논문을 인용한 기사”라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직접 찾아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말의 출처가 다름 아닌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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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트럼프의 발언
“타이레놀을 임산부가 먹으면 자폐아가 생긴다. 타이레놀을 안 먹는 쿠바는 자폐아가 없다.”
이 발언에는 많은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은 수십 년간 임산부가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으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고열은 태아의 뇌 발달에 손상을 줄 수 있고, 심하면 유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의사들은 필요한 경우 타이레놀을 권합니다.
또한 “타이레놀을 안 먹는 쿠바에는 자폐아가 없다”는 주장은 의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의료진과 약이 귀하고 진단 체계가 충분치 않은 나라에서 정확한 통계가 집계되기 어려운 건 자명합니다. 진단되지 않았다고 해서 질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통계학적 오류 중 하나인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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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체 왜…
이쯤에서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런 발언은 임산부들에게 불필요한 두려움을 안깁니다. 통증이나 고열이 있어도 약을 먹지 못하고 참게 되고, 그 결과 태아가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주장이 등장할까요? 많은 사람들과 깊이 대화해 온 저는 두 가지 이유를 확신합니다.
1. 어떤 형태로든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결국 돈.)
2. 혹은 굳건한 그릇된 신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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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념이 만든 그림자
현재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입니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환경운동에 헌신했지만, 동시에 대체의학을 신봉하고 백신에 비판적인 태도로 유명합니다.
그가 남긴 말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항우울제는 극심한 중독성을 일으킨다. 내 가족들을 보니 그랬었다.”
=> 개인적 경험을 통해 섣부른 일반화를 하여 판단. 감정적으로 투사가 있을 수밖에 없음.
• “홍역 예방접종 대신 비타민 A가 풍부한 생선을 먹어라.”
=> 비타민A의 경우 과다복용 시 문제가 생김. 최근 홍역으로 인한 유아 사망이 늘자 백신비판을 잠시 멈춤.
• “인공색소가 문제다. 모든 음식에서 색을 없애라. “
=> 과학적으로 안정성이 증명된 성분까지도 일괄적으로 호도함.
그의 이러한 신념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교육을 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과학적 근거보다 개인적 경험이나 신념이 더 크게 작동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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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실보다 신념이 앞설 때
저는 정신과 의사로서 이런 장면들을 자주 목격합니다. 사실보다 신념을 앞세우는 순간, 대화는 합리적인 길에서 벗어나곤 합니다.
홍역 백신을 맞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들을 보게 되면, 거대 제약회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연구결과를 만들어내고, 의사들이 이득을 위해 불필요한 과도한 의료행위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편집되어 있는 통계와 유명인들의 발언을 가지고 와 자신들의 말에 신뢰도를 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제약회사가 돈을 많이 버는 나쁜 놈들이라는 감정적 사실과 홍역백신의 작용기전, 효과, 예후 등의 과학적 사실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감정적인 호소를 하고 과학적 사실을 은근슬쩍 뭉개고 넘어갑니다.
문제는 결국 사실보다 신념이 앞설 때, 사회 전체가 혼란해지고 위험해진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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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문가에 대한 신뢰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입니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설명하는 것보다 옆집 사람이나 인터넷의 비전문가의 말이 더 신뢰받을 때가 많습니다.
“같이 목욕탕 다니는 사람이 말하는데~ 그 약 먹으면 치매 온다고 절대 먹지 말래요” 제가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이 과잉진료를 하거나 이익을 우선시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신뢰가 흔들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환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사실에 기반해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불신이 확대되는 현실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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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통의 어려움
한 번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건 맞고 틀리고 가 아닙니다. 사실 관계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설득을 하려면 그들의 방식으로 천천히 자연스럽게 다가가야 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의료 현장에서 빠른 템포로 과학적 사실만을 이야기해 온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물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감정적인 거부감, 불신, 의심 등이 올라오며 선뜻 수용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에도 공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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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함께 지켜야 할 것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저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 전문가라면 자신의 본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익이나 신념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우선해야 합니다.
• 일반인이라면 전문가의 설명을 존중해 주길 바랍니다. 때로는 낯설고 감정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과학적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사실에 기반한 대화를 지켜낸다면, 불필요한 공포와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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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주제, 타이레놀과 자폐증 사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