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으로 가출한 아이들

한국의 등교거부 현상

by 김수철


요즘 진료실에 오시는 부모님들 중,

등교를 거부하는 초등·중학생 자녀로 인해 고민하시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중학생까지는 의무교육이라 ‘자퇴’ 개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장기결석이 누적되면 ‘정원 외 관리’로 전환되고, 이후 검정고시를 치를 수 있게 됩니다.



일본의 상황과 한국의 현실


일본은 이 현상에 대한 공식 통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초·중학생 등교거부 인원은 약 34만 6,482명, 전년 대비 15.9% 증가했으며,

특히 초등학생의 증가 폭이 더 컸습니다.


반면 한국은 명확한 통계조차 없습니다.

다만 제 임상 경험상, 등교거부 현상은 확실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늘어났을까요?

여러 학부모,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며 정리한 가설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 늘어난 게 아니라 양상이 변했다


예전에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 일단 학교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학교를 간다고 해놓고는 PC방·노래방·오락실·번화가로 가거나,

학교에서 친구와 놀다 야간자율학습을 빼먹는 형태였습니다.

(야자 짼 다음날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맞는 건 필수코스…..였죠^^)


하지만 지금은 ‘방 안으로의 가출’이 가능합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유튜브, 게임, OTT 등 세상 모든 것이 방 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학교 부적응 학생 수는 비슷하나

‘학교를 아예 가지 않는’ 학생 비율이 늘어난 것입니다.


기술 변화가 부적응의 행태를 바꾼 셈입니다.



2. 책임감을 앗아간 사회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말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시대를 뛰어넘는 담론이죠.

하지만 최근 사회현상에서의 본질적 문제는 “책임감 자체의 약화”입니다.


학생으로서의 책임감은 줄어들고 나라는 인간의 욕구가 더 중요해졌죠. 왜 그럴까요?


서구의 개인주의는 “내 삶은 내가 선택하고, 그 결과를 내가 책임진다”라는 철학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종종 그 반대입니다.

• 선택권은 없지만 결과는 책임져야 하는 구조

• 책임을 져도 보호나 보상은 없는 사회

• 실패하면 손해만 보는 현실


예를 들어, 부모가 정해준 학습 루틴을 따라야 하지만, 성적이 안 나오면 ‘내 책임’이 됩니다.

결국, 똑똑한 한국인들은 최적의 수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책임은 최대한 회피하고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주의’죠.


책임감을 기대하려면 먼저 선택할 자유와 공정한 결과가 보장돼야 합니다.



3. 과잉보호가 만든 사회화 결핍


학군지에서 소아·청소년 정신과 진료를 하다 보면

부모와 아이가 정서적으로 분리되지 못한 채, 신체적 성장만 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심리적 성장이 억제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좋은 성적을 위해 극한의 효율을 추구해야 하니, 심리적 성장을 일시적으로 밀려나는 거죠.


“아버지는 무관심해야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한다”

“아이 방의 문짝은 유치원 때부터 떼버려야 한다”

“자아를 가지면 반항해서 학습 스케줄을 따라올 수가 없다”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가 실제 학부모들 사이에서 오갑니다.


또한, 우리 사회는 ‘삶의 외주화’에 굉장히 익숙합니다.

• 방 청소는 ‘미소’ 등의 청소 앱으로

• 운동 계획은 PT 트레이너 선생님이

• 삶의 동기부여는 유명 자기 계발 유튜버가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효율적일 수 있지만,

모든 역할을 ‘최대의 효율’이라는 미명아래 외주에 의존하다 보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태로 이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그 결과, 아파서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는 직원 대신 엄마가 전화를 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마치 예전 유명 연예인이 매니저가 없으면, 통장에서 자기 돈을 인출할 수도 없어 식사를 굶었던 일화처럼요.


정서적 독립이 되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인 사회화는 당연히 이뤄지지 않습니다.



4. 아이 자신도 모르는 불편감


등교거부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정작 본인도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 그냥 학교에 가는 게 싫고 불편하다

• 학교에 있으면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하다

• 내 마음도 모르고 학교에 가라고 혼내는 부모가 밉다


이유는 보이지 않고 감정만 분명합니다.


기질, 애착, 방어기제, 트라우마, 성적, 교우관계, 교사와의 관계 등등

수많은 요소가 얽혀 있어 정확한 하나의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부 아이들은 이런 불편함을 극복합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좋은 교우관계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들과의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좌절·극복·성취는 아이를 정신적으로 성장시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학부모들은 기를 쓰고 좋은 학군에서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하나,

막상 경쟁이 치열한 학군에서는 과잉보호와 사회화의 부재가 일어나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합니다.



5. 팀 스포츠가 주는 사회화의 힘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팀 스포츠의 5요소를 강조합니다.

1. 공동 목표

2. 역할 분담

3. 상호 의존성

4. 의사소통

5. 정체성과 응집력


자세히 보면 이 5가지 요소 안에 사회화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또, 학생, 학부 때 이룬 성취가 평생을 결정짓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평생 배움이 필요한 시대인 거죠.

그럴수록 중요한 건 두 가지

• 평생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자발성

• 그 자발성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 건강한 체력


그래서 어릴 적 공부의 몰아치기보다, 꾸준히 배우며 살아갈 힘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팀스포츠 운동이 사회화의 장이자 자발성과 체력을 기르는 연습장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결론


지금 이대로라면, 한국도 일본처럼 ‘어린이방 아저씨’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일본의 ‘히키코모리’ 문제가 우리나라에선 ‘은둔형 외톨이’ 문제로 나타나고 있고

이로 인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됩니다.


등교거부는 단순히 한 학생이 학교를 가지 않는 일이 아닙니다.

그건 사회화 실패의 시작이며, 장기적으로는 사회 불안정성의 신호탄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빠른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