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로서 사기 피해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마음이 망가진 사람들에게, 심리학이 말해주는 몇 가지 진실들

by 김수철


요즘 진료실에는 사기 피해로 마음의 병을 안고 오는 분들이 정말 많다.

전세사기, 미수금 때문에 무너진 사업, 캄보디아발 보이스피싱/로맨스 스캠까지.

문제는 “피해자만“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가해자도 온다. (이게 정말 큰 함정이다 -_-;;;)


진료실에서 나는, 같은 사건을 두고

“정말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라고 울부짖는 피해자와

“제가 뭐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고…”라며 담담한 가해자를

연달아 보게 된다.

이 두 장면 사이의 간극은 정말 깊다.



1. 한국은 왜 이렇게 ‘사기 공화국’이 되었는가


우리 사회의 사기 범죄는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다.


한국 형법은 원래 “처벌보다 교화”에 무게가 실려 있다.

하지만 사기 범죄는 타인의 경제/사회적 기반을 붕괴시키고

그 피해가 광범위함에도 처벌은 놀랄 만큼 가볍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폰지사기 ”머지포인트 사건“의 주범이

부처님 오신 날 특사로 조기 출소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상식과 정의감을 완전히 뒤흔든다.


이런 구조는 “사기를 치고 잠깐 교도소에서 쉬다 나오면 된다”는

기형적인 인식을 만들고,

나쁜 행동이 반복될 토양을 넓힌다.

법과 제도가 공정성을 지켜주지 못하면,

사회 전체의 신뢰 기반 또한 무너진다.



2. 우리가 실제로 가장 많이 만나는 ‘악’은 어떤 모습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쁜 사람’은 대개 드라마 속 살인마나 흉악범이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사람들을 가장 깊이 상처 입히는 존재는

대부분 잡범 사기꾼이다.


이들은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집, 직업, 인간관계, 미래 계획, 자존감, 수년의 노동 결과를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사이코패스에 관한 과거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진짜 무서운 악은 거창하지 않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주 조용하고, 친근하게 스며든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경제적 손실보다

심리적 타격이 훨씬 크다.



3. 사기꾼의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 ‘공감 능력 저하 × 이익추구 과활성’의 조합


임상과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 있다.


사기꾼들은 죄책감·부끄러움·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유의미하게 감소되어 있다.


이는 뇌영상 연구에서도 나타나는데,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는 ‘전측 대상피질’과

감정 공감을 담당하는 ‘편도체’ 반응이 둔감한 경우가 많다.

반면 보상추구 회로(특히 ‘복측선조체’)는 과도하게 반응한다.


쉽게 말하면:


“타인의 손실은 잘 안 느껴지고,

내가 얻는 이익은 너무 크게 느껴지는 뇌”


이런 신경학적 조합은 지능이 일정 수준 이상일 때 더 위험해진다.

이들은 “도덕적 브레이크”가 약한 상태에서

자기 합리화 능력만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그들은 병원에 와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뭐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고…”

“저도 힘들었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어떤 환경에서 컸냐고 하면요…”


그리고 그 말이 진심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믿는다.

이게 일반인들을 더욱 미치게 만드는 지점이다.



4. 사기를 당했을 때, 왜 분노보다 ‘수치심’이 먼저 오는가


많은 피해자가 처음엔 사기를 당했다는 말을 못 한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숨긴다.

진료실에서야 비로소 조심스레 입을 뗀다.


왜일까?


사기는 단순한 금전적 피해가 아니다.

사람은 “속았다”는 경험을

자신의 인지적 능력, 판단력, 자존감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도

사기를 당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바보인가?”

“어떻게 이렇게 당했지…?”

하는 수치심이다.


분노는 그 뒤에 온다.



5. 피해자들이 빠진 또 하나의 함정

— 사실, ‘일확천금 심리’도 존재한다


전문가 시선에서 말해야 할 것들이 있다.

모든 피해가 억울한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이번 기회만 성공하면…”

“이 정도 수익이면 무조건 들어가야지~!”

하는 과도한 보상기대가 판단을 흐린 경우가 많다.


사기꾼의 문제와 별개로,

희망·욕망·불안·조급함이 결합될 때

사람의 판단은 쉽게 어긋난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피해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6.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돈을 잃었다면, 감정까지 잃지 마라”


사기를 당하면

금전적 손실보다

감정적 소모가 훨씬 오래간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분노를 쏟아붓는다고

그들이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진심으로 이렇게 말한다.


“제가 뭘 그렇게 크게 잘못했나요?”

“세상이 저를 너무 몰아붙여요.”


이런 사람들에게 분노를 퍼붓는 건

마치 벽을 주먹으로 치는 것과 같다.

상처는 오히려 내 손에 생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내 감정이다.


분노와 억울함에 에너지를 계속 쓰는 순간,

사기꾼들은 이미 당신에게서

두 번째 피해를 가져가는 것이다.


정말 정말 마음 아프고 안타깝지만


법적 절차를 차분하게 밟고,

금전적 손해를 확정하고

헛된 기대를 가지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7.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사기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실제로 경찰서에 가보면

전문직, 고학력, 고연봉, 청년부터 노인까지

모든 계층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순간의 판단이 흔들렸을 뿐이다.


혹시 그 판단 뒤에

조급함이나 욕망이 섞여 있었다면

그 또한 인간의 매우 자연스러운 심리다.


우리가 할 일은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심리 구조를 이해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다들 힘내십쇼. 진심으로 여러분들의 회복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