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문명을 만든다

넷플릭스 코리안셰프를 보며 든 인사이트

by 김수철


최근 넷플릭스 ‘더 코리안셰프’ 프로그램을 보며 한 장면이 오래 남았다.


강민구 셰프가 운영하는 밍글스는 2025년 미슐랭 3 스타를 받았다.

3 스타는 단순히 “맛있다”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인테리어가 좋고, 서비스가 훌륭하고, 자본이 충분하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딘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어야 한다.

그 레스토랑만의 서사, 그 셰프만의 질문.


방송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쉬는 날 사찰을 찾아가 한식 재료를 공부하는 장면이었다.

이미 충분히 성공했다고 느낄 수 있는데도,

이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자리에 올라섰는데도,

그는 여전히 궁금해하고 있었다.


“한식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있는 한식은 대체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안정에 도달하면 멈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안정 이후에도 더 깊이 파고든다.


왜일까.



인정욕구와 호기심은 다르다


사람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힘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돈, 명예, 경쟁심, 인정욕구.


인정욕구는 강력하다.

남에게 인정받는 순간 뇌는 보상을 받는다.

도파민이 분비되고, 일시적인 충족감이 생긴다.


하지만 인정욕구는 결승점이 있다.

모두에게 박수를 받는 순간, 목표는 달성된다.

그리고 멈춘다.


하지만 호기심은 다르다.


호기심은 외부 보상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모른다”는 내부의 불완전성에서 시작한다.

무언가를 이해하는 순간, 더 큰 질문이 생긴다.


뇌는 단순한 보상보다

‘예측이 빗나가는 순간’,

‘새로운 통찰을 얻는 순간’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호기심은 닫히지 않는다.

하나를 알면 두 개가 궁금해진다.

끝이 없다.


강민구 셰프가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3 스타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요리에 대한 궁금증을 풀다 보니 거기까지 간 것.



개인의 집착은 이타적이지 않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스타셰프들은 한국 식문화를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으로

요리를 시작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들은 단지 궁금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 정교한 한식을 경험한다.

한국 음식의 위상은 높아진다.


문명은 이런 식으로 쌓인다.


불을 발견한 사람도,

제철 기술을 만든 사람도,

반도체를 설계한 사람도,

처음부터 인류 전체를 위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궁금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 개인적인 집착이

세대를 거치며 누적된다.


불 -> 도자기 -> 제철 -> 반도체 -> AI


인간의 문명은 이타심보다

집요한 개인들의 호기심 위에 세워졌다.



동물도 가르친다. 하지만…


침팬지도 도구 사용법을 새끼에게 보여준다.

돌고래도 사냥 기술을 전수한다.

까마귀는 도구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인간과는 다르다.

인간은 배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약한 동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르치고,

모방하고,

배운 것을 수정하고,

기록하고,

학교를 세운다.

죽은 사람의 지식까지 보존한다.


이걸 진화인류학에서는 ‘누적 문화’라고 부른다.


한 세대의 통찰이 사라지지 않고

다음 세대의 출발점이 된다.


그렇게 호모사피엔스는 지구를 점령했다.



왜 남기려 하는가?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극단까지 간 사람은

왜 자신의 답을 남기려 할까.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중년 이후 인간에게 ‘생산성’이라는 욕구가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쌓아온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마음.


이건 단순한 생식 본능을 넘는다.

자식이 아니어도 된다.

제자, 후배, 작품, 체계.


인간은 죽음을 인지하는 종이다.

그래서 생물학적 생존을 넘어

상징적 생존을 원한다.


어쩌면 강민구 셰프가

젊은 셰프들의 등장을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질문이,

자신의 탐구가

거기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이쯤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바라야 할까.


안전하고 적당히 인정받는 자리?

아니면

끝이 없는 질문을 붙잡고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삶?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정답을 빠르게 찾는 법일까,

아니면

질문을 오래 붙들고 버티는 법일까.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


우리는

그들이 극단으로 가는 것을

정말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