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논쟁을 보며

— 처벌과 교화 사이,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

by 김수철


최근 대통령이 직접 촉법소년 연령 기준의 하향을 언급했다는 뉴스를 보고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한 청소년들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곧바로 같은 질문이 따라온다.


“촉법소년 제도를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


감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감정만으로 판단하기에는 꽤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촉법소년이란 무엇인가


먼저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국 형법에서는 만 14세 미만을 형사미성년자로 본다.

즉 형사 처벌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중에서도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을 흔히 ‘촉법소년’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일반 형사재판을 받지 않는다.

대신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는다.


소년법 제1조는 이 제도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조정과 품행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핵심은 분명하다.


처벌이 아니라 교화다.


소년법은 “어리니까 봐주자”는 법이 아니라

아직 사회로 되돌릴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보자는 철학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은 비교적 교화 중심 국가에 속한다.


예를 들어

• 영국은 형사 책임 연령이 10세

•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12~13세도 성인 재판 가능

• 독일은 한국과 비슷하게 14세 기준을 유지하며 교화 중심 정책을 유지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확실히 처벌보다는 보호와 교화에 무게가 실린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종종 이런 말도 나온다.


“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한 나라다.”

“대한민국은 사기 공화국이다.”


촉법소년 논쟁이 뜨거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학교폭력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꽤 많이 만나게 된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촉법소년 제도에 대한 분노가 왜 생기는지 쉽게 이해된다.


아이의 학교생활과 인생이 무너진다.

폭행, 협박, 집단 따돌림, 성폭력.

많은 경우 PTSD 수준의 트라우마가 남는다.


그런데 가해자는 어떻게 될까?


“어려서 처벌할 수 없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상황이 끝나버린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다.


그래서 촉법소년 논쟁은 항상

피해자의 분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분노는 상당 부분 정당하다.



아이들은 예전의 아이들이 아니다


또 하나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예전의 아이들이 아니다.


1953년 소년법이 만들어졌을 때의 만 13세인 중학교 2학년과

지금의 중학교 2학년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다.


SNS, 사회경제의 성장, 신체적·정신적 성숙, 접근 가능한 정보의 확대.


지금의 초등학생은

과거 세대 기준으로 보면 준어른에 가깝다.


실제로 정신과 레지던트로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우울해서 죽고 싶다”며 온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적도 있다.


아이들은 훨씬 빠르게

어른의 세계와 연결되고 있다.


그렇다면

1953년에 만들어진 촉법소년 기준이

지금도 현실적인지 고민해 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나는 촉법소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촉법소년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 전체의 비용 때문이다.


교도소에 사람을 한 명 수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최근 자료를 보면 재소자 한 명을 1년 동안 교도소에서 관리하는 데 약 3천만 원 정도의 세금이 들어간다.


급식비와 의료비 같은 직접 비용뿐 아니라

교도관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까지 포함된 금액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교정시설은 때때로

범죄 기술이 전수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사기범들을 면담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감옥에 갈 때마다 더 숙련된 범죄자를 만나고

새로운 범죄 방법을 배우고

범죄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것이다.


교도소를 ‘학교’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만약 어린 나이에 범죄자로 만들어

이 시스템 안으로 밀어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범죄 기술은 더 빨리 발달하고

전과 기록은 사회로 돌아갈 가능성을 더 줄인다.


그래서 어느 정도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갱생의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이는 선택일 수도 있다.


물론 피해자에게는

피눈물 나는 이야기다.



그래서 현실은 냉정하다


여기서 매우 불편한 결론이 하나 나온다.


피해자가 되는 순간, 손해는 결국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국가의 제도는

사회 전체의 균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공리주의적으로 보면

소수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보단,

사회 전체의 안정이 우선될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되는 순간

그 논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트라우마는 남고

그 상처는 개인의 삶 속에서 이어진다.


그래서 현실적인 결론은 하나다.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



범죄자는 항상 쉬운 표적을 찾는다


대부분의 범죄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쉬운 표적을 찾는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대체로 약한 아이에게 집중된다.


절도는

보안이 허술한 가게에서 발생한다.


온라인 사기는

지나치게 싼 물건을 덥석 사는 사람을 노린다.


범죄자는 생각보다 대담하지 않다.

대부분은 될 것 같은 대상을 찾는다.


그래서 범죄 예방의 출발점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내가 쉬운 표적이 되지 않는 것.


아이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야 하고,


가게는

허술해 보이지 않게 관리되어야 하며,


온라인 거래에서는

속지 않을 만큼 조심해야 한다.


완벽한 안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표적이 될 확률을 낮추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학군지로 이사한다


이 이야기는 조금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부모들이 이러한 선택을 한다.


학교폭력

사이버 괴롭힘

디지털 성범죄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좋은 학군지로 이동한다.


아이를 보호하려는 선택이다.


환경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위험한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그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래서 부모들은

가능한 한 그런 환경을 피하려 한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선택이다.



제도는 이상을 향해 움직이고 개인은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촉법소년 제도는

아이들을 사회로 다시 돌려보내기 위한

이상적인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그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의 삶은

이상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를 지킬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