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직계가족만 모인 식사 자리로 식을 갈음했다. 그리고 결혼 사실을 SNS를 통해 알렸다. 굳이 알리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축의금을 보내주었다. 결혼식에 들어갈 비용은 대학병원에 기부했다.
그때 나는 꽤 확신하고 있었다.
결혼식이라는 의례는 어쩌면 너무 비효율적인 것 아닐까. 정작 신랑신부와는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주말에 시간을 내서 와 밥을 먹고, 의례적으로 축의금을 내고, 잠깐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행사일까.
그래서 나는 ‘노웨딩’이라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이 어쩌면 앞으로의 결혼 문화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의례라는 것을 꽤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능하면 작고, 빠르고, 간단하게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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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내가 생각하던 그 형태였다. 병원에서 돌아가신 뒤 장례식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화장을 하고 가족들만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방식. 말 그대로 무빈소 장례였다.
그런데 다른 한 장례는 조금 달랐다.
장례식장을 빌리긴 했다. 염을 하고 입관도 했다. 하지만 조문객을 받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조문객을 접대하지 않았다. 일부 친인척들과 가까운 지인들이 와서 고인과 유족에게 인사를 하고 조의금을 전하고 가는 정도였다. 식사를 하거나 밤새 앉아 있는 공간은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무빈소 장례라면서 빈소는 만들어져 있고, 사람들은 와서 조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모순된 모습이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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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결혼식은 사실상 사회적 행사에 가까웠다. 회사 사람들, 부모님의 지인들, 오래 연락도 하지 않았던 친구들까지 참석했다. 신랑신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의례적으로 결혼식장에 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이런 말을 한다.
“이게 내 결혼식이었나, 아니면 부모님 결혼식이었나.”
그래서 등장한 것이 스몰웨딩, 노웨딩 같은 다양한 선택들이다. 결혼식을 사회적 행사에서 개인의 행사로 되돌려놓으려는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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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례 문화는 오랫동안 공동체적 성격이 강했다. 조선시대의 유교 장례는 가문의 행사였다. 삼일 동안 곡을 하고 상복을 입고 문상을 받는 과정은 단순히 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이 아니라 가문의 위상을 보여주는 의례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례의 장소는 집에서 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갔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병원 장례식장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3일장’ 문화가 완성됐다.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이하고 음식을 대접하며 밤새 자리를 지키는 방식이다.
이 장례식은 슬픔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회적 관계를 확인하는 의례이기도 했다. 직장 동료와 거래처 사람들, 지인들이 조문을 오고 유족은 그 관계를 기억하며 다시 찾아가 인사를 했다.
하지만 사회 구조는 크게 변했다.
대가족은 줄어들었고 지역 공동체는 약해졌다. 직장은 더 이상 평생 함께하는 공간이 아니다. 인간관계의 구조 자체가 과거보다 훨씬 느슨해졌다.
그 결과 장례식에 와야 할 사람의 숫자 자체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직장, 가족장, 무빈소 장례 같은 새로운 방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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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미 한 발 앞서 같은 변화를 겪었다. 일본에서는 ‘직장’이라고 불리는 장례 방식이 빠르게 늘고 있다. 빈소를 차리지 않고 조문을 받지 않으며 바로 화장을 하는 방식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이런 형태의 장례가 전체 장례의 30~4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사회학자들은 한국도 결국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가족 규모가 줄어들고 인간관계가 느슨해질수록 장례는 점점 더 개인적인 의식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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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의례라는 것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가능하면 작고 간단하게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웨딩을 선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조금 더 현실적인 의미가 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대대적으로 축하하고, 또 대대적으로 슬퍼하는 시간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기쁨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고, 슬픔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고, 함께 술을 마시고, 울고, 웃는 장면은 어쩌면 남겨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장례 문화는 어쩌면 과도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전통적인 장례도 아니고 완전히 개인적인 장례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정답은 아직 없다.
각 가족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장례를 만들어가고 있는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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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을 부르는 행사보다는 정말 관계가 있는 사람들만 모이는 자리. 조금 작지만, 조금 더 진짜인 자리.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게 되는 날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노웨딩과 무빈소 장례는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는 하나의 변화의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의례의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도기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