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을 붙이고 싶은 사람들

ㅡ 강북구 모텔 살인사건과 레이디 두아

by 김수철


최근 비슷한 질문을 두 번 들었다.


“강북구 모텔 살인사건 범인,

싸이코패스 맞죠?”


그리고 또 하나.


“레이디 두아에 나온 사라킴,

리플리증후군 같은 거죠?

어디 아픈 사람 맞죠?”


질문은 달랐지만

묘하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 다

이미 답을 정해놓은 질문이었다.



1) “싸이코패스 맞죠?”


이 질문을 들으면

나는 항상 거꾸로 생각해 본다.


이 사람은 왜

이 질문을 하는 걸까?


아마도

이미 마음속에서는 결론이 나 있다.


“저 정도면 싸이코패스지.”


그리고 그 확신을

전문가의 입으로 확인받고 싶은 것뿐이다.



대중적으로 말하는 싸이코패스는

실제로는 진단명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PCL-R 같은 평가 도구를 통해

점수를 매긴다.


그런데 이 검사는

객관식 테스트가 아니다.


환자가 체크하는 것도 아니다.


면담, 과거 기록, 행동 패턴을 종합해

검사자가 점수를 매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다.


검사자는 인간이다.


범인을 마주하면

검사자의 과거 경험, 트라우마, 역전이 등이 올라오고

감정이 흔들린다.


그리고 그 감정은

판단에 영향을 준다.


이미 마음속에

“이 사람은 위험하다”는 가설이 생기면


그 이후의 평가는

그 가설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때로 사람들은

너무 쉽게 낙인을 찍는다.


“이해할 수 없다”는 불편함을

“싸이코패스”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해 버린다.



2) “사라킴은 아픈 사람인가요?”


이번에는 반대 방향의 질문이다.


이 질문 역시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저 사람, 뭔가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저러는 거 아닐까?”



드라마는 친절하다.


사라킴의 과거를 보여준다.


억울했던 일들,

버려졌던 경험,

상처받은 시간들.


우리는 그 서사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한다.


“저건 마음의 병 아닐까?”



하지만 임상에서는

조금 다르게 본다.


병적 거짓말은

대개 목적이 없다.


이득도 없고,

이야기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라킴은 다르다.


목적이 명확하다.

행동이 전략적이다.

이득이 분명하다.


이건 증상이 아니라,

선택에 가깝다.


즉, 사라킴은 그냥 사기꾼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에도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공감이

판단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 사람들은

너무 쉽게 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그 순간

책임은 흐려진다.



3) 두 질문 사이에서


하나는

너무 쉽게 낙인을 찍고,


다른 하나는

너무 쉽게 면죄부를 준다.



흥미로운 건

이 두 반응이 전혀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방향이라는 점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만나면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단순한 말로 정리한다.


“싸이코패스니까 그렇지.”

“상처받아서 저러는 거지.”



그 순간

생각은 멈춘다.



나는 정신과 의사지만

모든 행동을 병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행동을 병이 아니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진단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지,


낙인을 찍거나

면죄부를 주기 위한 장치는 아니다.



이 두 질문을 들은 이후로

오히려 나는 궁금해졌다.


우리는

언제 너무 쉽게 단죄하고,

언제 너무 쉽게 공감하려고 하는 걸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