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는 지방만 줄이는가, 욕망도 줄이는가

by 김수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위스키를 한 잔씩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비만치료 주사제 얘기가 나왔다.


정형외과 의사인 친구는

위고비를 꽤 오랫동안 써본 경험이 있었다.


그는 짧게 말했다.


“입덧하는 것처럼 먹기가 힘들다.”


“살은 확실히 빠진다. 근데 기력이 너무 없다.”


“운동을 해야 근육량을 유지하는데 힘이 너무 없어 그냥 터덜터덜 뛰게 된다.”


여기까지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위고비, 마운자로는 식욕을 줄인다.

식이량이 줄고, 체중이 감소한다.


일부 대규모 임상에서는

심혈관 위험 감소와 같은 이점도 보고되고 있다.


이쯤 되면 단순한 다이어트 약이 아니라

질병의 흐름을 바꾸는 약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약이

식욕뿐 아니라

다른 ‘욕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술 생각이 줄고,

충동이 약해지고,

어떤 행동에 대한 집착이 덜해진다는 경험들.


아직은 초기 연구와 사례 수준이지만

보상과 동기와 관련된 뇌의 경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복잡한 건,

이 변화가 한 방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덜 먹는데, 더 맛있다.”


먹는 횟수는 줄었지만

한 번의 식사가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말한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먹어야 하니까 먹는 상태.


욕구 자체가 옅어진 느낌.


같은 약인데 전혀 다른 경험…



이 지점에서 내 관심은 체중이 아니라 인간으로 옮겨갔다.



정신과 진료실에서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본다.


감정의 진폭을 조절하는 약을 사용한 이후

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회색빛이에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어요.”

“그냥 멍한 느낌이에요.”


고통은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기쁨도 옅어진 상태.


그래서 질문이 남는다.


욕망이 줄어든 상태를

우리는 어디까지 치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다.


더 이상 술을 찾지 않고 충동적인 행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즐겁지 않다.


그건 사회적으로는

“관리된 상태”일 수 있어도

인간적으로는

“회복된 상태”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쯤에서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이퀼리브리움.


인간의 감정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인간이 감정을 억제하는 주사를 맞는 세계.


그곳은 안정적이다.

질서도 유지된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은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욕망이 사라진 상태, 그게 초월, 열반 아닌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열반은

욕망을 억누르는 상태가 아니라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게 되는 과정에 가깝다.



억누름과 초월은 다르다.



약을 통해 욕구를 낮추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치료일 수 있다.


비만과 중독처럼

삶을 무너뜨리는 문제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이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지금

욕망을 조절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것일까.



욕망은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해서 시작하고,

흥미가 생겨서 몰입하고,

욕구가 있기 때문에 살아간다.


그래서 근본적 치료는 단순히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다룰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약이

그 경계를 어디까지 건드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없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이제 우리는 얼마나 살이 빠지는가가 아니라


이 약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함께 질문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것.



위고비는

지방만 줄이는가,

아니면

욕망도 함께 줄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