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은 어디로 가는가

by 김수철


장모님이 이사를 나가던 날,

새로 들어올 세입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계약은 본인들이 직접 진행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계약 당일, 보증금을 이체해야 했는데 계좌 이체 방법을 몰랐다.

부동산 중개인이 은행까지 모시고 가서 겨우 겨우 진행했지만

통장에 돈이 2천만 원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통장을 확인하고, 돈을 모으고, 겨우 계약이 마무리됐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분들은 여기서 잘 살 수 있을까…?



얼마 뒤, 우연히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만 혼자 남았다고 했다.


이제 그 집의 계약 기간은 몇 개월 남지 않았다.

그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질문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비슷한 장면을 다른 곳에서도 봤다.


부동산 경매로 한 빌라를 낙찰받은 사람이 있었다.

집을 확인하러 갔는데

그 안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집이 경매로 넘어간 사실도,

소유자가 바뀌어 본인들이 무단 점거 중이라는 점도,

지금 당장 나가야 하는 이유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설명은 통하지 않았다.


결국 낙찰자는

그 노인들을 위해 사비를 써서,

직접 주민센터를 데리고 다니며

사회복지 서비스를 신청하고,

임대아파트를 알아보고, 이사를 시켰다.


그제야 경매 절차가 끝났다.


이건 낙찰자가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 문제가 아니다.


단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 전면 시행되었다.


취지는 분명하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과 장애인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니라

자신이 살던 곳에서

의료와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방향은 명확하다.


병원에서 이루어지던 돌봄이

가정으로 이동한다.


국가가 감당하던 책임이

개인으로 이동한다.



동시에 의료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산부인과, 소아과, 외과 같은 필수의료는

점점 기피된다.


고생은 많고, 보상은 적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문제는

누구도 비정상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비 의사는 합리적으로 움직였고,

그 결과 필수의료는 비어 가고 있다.

아니, 이미 비어있는지 오래다.



이 두 가지 흐름이 겹치면

하나의 구조가 드러난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늘어나고,

필수적인 서비스들은 줄어든다.


결국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그 공백을 감당해야 한다.



공백을 채우는 사람들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이 아니다.


임대인은 그 노인들과 계약을 했기 때문에,

낙찰자는 하필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낙찰받았기 때문에,

사회복지사는 갑자기 통합 돌봄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외과의사는 10년 전 선택으로 그냥 수술을 하고 있을 뿐이기에,


그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이 책임은

선택해서 맡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있었고,

그리고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떠안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구조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임은 한 단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항상 더 아래로 이동한다.


조금이라도 더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빠져나가고,

남아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묶인다.



우리는 여전히 ”돌봄, 복지, 국민 건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로 사회가 움직이고 있는 방향은 다르다.


이 사회는 개개인의 부담을 없앤 것이 아니다.


단지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순차적으로 내려보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