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부부, 한 번도 안싸운 부부, 맨날 싸우는 부부

by 김수철


부부상담을 하다 보면 한 가지 반복해서 느껴지는 점이 있다.


사람들은

“싸우지 않는 관계”를

좋은 관계라고 믿는다는 것.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보면 그건 절반만 맞는 말이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히 틀린 말이기도 하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애착을 형성하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해 온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삶을 살아간다.


충돌이 없을 수가 없다.


문제는

“갈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싸움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우린 정말 잘 맞아요.”

“우린 싸운 적이 없어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 더 진지하게 그들을 바라본다.


싸움이 없다는 건 갈등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갈등이 표면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유는 대체로 단순하다.


한쪽이 어떠한 이득을 위해 완전히 참고 있거나,

둘 다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감정을 접어버리고 있거나

혹은

“좋은 관계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념이 작동하고 있거나…


정신과적으로 보면

부정, 회피, 반동형성과 같은

방어기제가 개입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한 번도 안 싸운 커플”을 보면

안심이 아니라

이상한 긴장이 느껴진다.


아직 싸우지 않은 것뿐이지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갈등은

대개 나중에 훨씬 더 큰 형태로 극적인 상황에서 터진다.



반대로

상담실에서 자주 보는 또 다른 유형이 있다.


예전에는 정말 치열하게 싸우던 부부.

소리 지르고, 울고,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그래도 계속 함께하던 관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싸움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싸울 일이 없어요.”

“이제는 정말 편해요.”

“스트레스도 없어요.”


겉으로 보면

관계가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치료자의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그건 평화가 아니라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상대가 무엇을 하든

이제는 더 이상.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다.


관심이 아예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에서 정말 위험한 순간은

“싸움이 많을 때”가 아니라

싸움조차 사라졌을 때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관계의 건강도를

조금 냉정하게 정리해 보면 이렇다.


싸우는 부부 = 정상

안 싸우는 부부 = 그럴 수 있으나, 아직 갈등 시작 전일 가능성 높음

한 번도 안 싸운 부부 = 비정상

맨날 싸우는 부부 = 정상이나, 지쳐 서로 멀어질 가능성 높음



결국 중요한 건 하나다.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다름을 견딜 수 있는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잘 맞는다”는 건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80을 표현해도

상대가 잘 받아주고,


나는 40밖에 못 받아줘도

상대가 그걸 이해하고 억울해하지 않는 관계.

그런 억울함을 나는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그런 관계.


그 불균형을 서로 감당할 수 있는 관계.

그게 진짜 건강하고 오래가는 연인, 부부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대체로

적당히 잘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