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사태로 본 체계적 위험의 예
필자는 이전의 글 (타이밍보다 분산에 집중하면 중간은 간다: https://brunch.co.kr/@scotchpen/8)에서 Markowitz의 포트폴리오 이론을 소개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분산투자를 통해서 위험을 회피하고 시장 평균 수익률을 추구함으로써 안정적이고 건전한 투자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의 여러 글들에서도 필자는 분산투자를 장기투자와 함께 건전한 투자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아왔다.
하지만 이번 우한 폐렴 대유행 사태로 인한 폭락장에서 분산투자 전략은 그다지 유효하지 못했다. 분산투자를 한 투자자라도 결국은 곤두박질치는 주가와 함께 보유 주식 포트폴리오의 가치 하락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분산투자 전략이 더 이상 건전한 투자전략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긴 어렵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투자자가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의 종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현대 금융학에서는 투자자들이 직면하게 되는 위험은 체계적 위험(Systemic Risk)과 비체계적 위험(Unsystemic Risk)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위험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체계적 위험이란 무엇이고 비체계적 위험이란 무엇인가?
우선 체계적 위험에 대해서 알아보자. 체계적 위험은 경기가 변동함에 따라서 시장 전체가 직면하게 되는 위험, 대표적으로는 금리 조정 등의 정부 정책, 인플레이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위험을 의미한다. 체계적 위험의 경우 시장에 있는 모든 자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분산투자로써는 이 체계적 위험을 회피할 수 없다. 그래서 체계적 위험은 분산 불능 위험 (Undiversifiable/Non-diversifiable Risk) 혹은 시장위험 (Market Risk)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1997년 금융위기로 인한 IMF 구제금융 신청, 그리고 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 등이 우리 주식시장이 직면했던 체계적 위험이라고 볼 수 있다.
비체계적 위험이란 체계적 위험보다 비교적 낮은 차원의 위험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경영진의 변동, 노사분규, 법적소송, 연구개발, 사업 확장, 재무구조 변동 등 어느 특정 기업이 직면하는 상황의 변동에 따라 야기되는 위험을 이야기한다. 이런 위험들은 개별기업에만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해당 종목의 주가 변동에만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여러 종류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라면 이런 개별 종목의 위험은 다른 보유주식의 수익 등으로 상쇄시킬 수 있다. 그래서 비체계적 위험을 분산 가능 위험(Diversifiable Risk) 또는 특이 위험 (Idiosyncratic Risk)라고도 한다.
투자의 총 위험 = 체계적 위험 (분산투자로 회피 불가) + 비체계적 위험 (분산투자로 최소화 가능)
우한 폐렴의 경우는 그 충격이 대단히 광범위하여 상장기업들 중에서 이 여파를 피해 갈 수 있었던 기업이 극소수에 불과했다.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우한 폐렴 대유행 사태를 1929년 대공황 이후 세계 금융이 겪었던 가장 큰, 어쩌면 그를 능가하는 체계적 위험으로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투자자가 분산투자를 통해 어느 정도 비체계적 위험을 최소화했다고 하더라도 체계적 위험으로 인한 임팩트가 워낙에 컸기 때문에 보유 자산가치 하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분산투자가 마냥 무용지물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분산투자보다는 집중투자전략을 선택하고 있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이번 우한 폐렴 사태로 545억 2000만 달러의 투자손실을 입었다. 이로 인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는 2020년 5월 15일 기준 연초 대비 약 20% 이상의 하락폭을 보였다. 해당 기간 뉴욕증시의 S&P500지수가 10% 내외의 하락폭을 보인 것에 비하면 분산투자의 위험분산 효과가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러한 비체계적 위험에 대해서 투자자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도 꼭 그렇지는 않다. 분산투자는 건전한 투자전략의 한 요소일 뿐이고 건전한 투자는 장기투자전략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장기투자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통계자료와 이론적 배경에 대해서는 이전 게시물에도(시간은 변동성을 이긴다: https://brunch.co.kr/@scotchpen/1) 소개한 바가 있다.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역사적 데이터들은 우리에게 시간은 결국 변동성을 이긴다는 교훈을 이야기해준다.
우한 폐렴의 대유행은 현대 인류에게 뉴 노멀을 강요함으로써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역사의 큰 파도의 한가운데서 많은 투자자들은 유래가 없는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다시 한번 건전한 투자를 통한 리스크 최소화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