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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살기 Jan 10. 2019

군대가 스펙?

조직 시뮬레이션의 기회

1990년도 초반 병무청 신체검사실


“발을 들어서 발바닥을 보여주세요”

“어 평발인데?”

“다시 들어보세요”

...

“1급”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들 군면제나 방위를 위해 온갖 이유를 찾고이었으나 나는 당시 학사장교에 지원한 터라 ‘1급’ 판정이

절실했다


대한민국 남자에게 군 복무는 커다란 난관이다

비교가 안 되겠지만 ‘여자에게 아기 낳는 고통이 있다면 남자에겐 군대 가야 하는 고통이 있다’고 할 정도로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고 하더라도 빨리 지나고 쉽게 지나고 싶은 시간이다

‘신의 아들’이 아닌 나도 1급을 받아 현역으로 가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다만 어차피 보낼 그 시간을 더 잘 보낼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학사장교라는 제도가 눈이 들어왔다. 학사장교는 학사 이상의 학위자 대상으로 신체검사, 필기, 면접, 신분조회 등의 과정을 거쳐 입과 한 후 4개월(해군 6개월)의 군사훈련 후 소위에 임관하여 장교로 군 근무를 마치는 제도였다. 매력이 있어 보였다. 하나의 조직인 군대에서 중간관리자로 적지 않은 월급 받아가며 역할을 해보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긴 기간이었지만 3군을 모두 응시했다. 공군과 해군이 일단 합력하였다. 해군이 1년 중 함정을 타고 바다에 나가야만 할 것 같은 예상에 과감히 공군을 택했다. 4개월의 극강 훈련을 받으며 신체의 한계도 시험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 무엇보다 끈끈한 동기가 생긴 것이 좋았다. 소위 임관 후의 비행단 근무는 일반 직장과 매우 유사했다. 출퇴근을 할 수 있고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부대 근무 후 퇴근 시간 이후엔 공부와 여가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는 기회도 이 시기였다

무엇보다 군도 하나의 생태계이어서 잘 운영되기 위해, 조직이 구성되어 있다. 여러 부서가 있고 각 부서별로 사병, 하사관, 장교가 마치 커다란 기업처럼 목표를 향해 운영된다. 현재 일반기업에서 사용하는 많은 시스템과 기술들이 국방시스템에서 시작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게는 기업에서 일하는 예행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였던 셈이다. 군에서도 프로세스의 개선을 위한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추진하기 위하여 각 부서의 지원에 요청하고 승인받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기업과 동일하다. 부서 간 공을 차지하기 위한 알력도 존재하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실무자의 아이디어로 부서가 포상을 받기도 하고 상관이 승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스템이 돌기 위해선 조직이 필요하고 조직이 움직이기 위해선 시스템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비단 장교가 아니더라도 사병 간의 조직도 동일하다고 본다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긍정적인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 하지만 어차피 보내야 할 기간이라면 군 복무란 시간도 마인드를 바꿔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시간으로 반전시켜 보는 것은 어떠한가? 몸 만들어 가며, 월급 받아가며, 조직도 경험하는 기회로 생각해 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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