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국가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by 박유신 Scott Park

호주는 이민자 국가답게 다양한 종교가 어우러져있다. 천주교, 성공회, 개신교를 합치면 약 50%,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이 약 20%, 무교가 약 30%이다 (2016년 인구센서스 자료 기준). 곳곳에 성당이나 교회가 있고, 모스크, 절 등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인다.


전 국민의 90-95%가 불교신자인 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성당에 가서 성탄미사를 드려야 하는데 치앙마이에 성당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치앙마이 낮의 최고기온은 약 30도까지 올라간다. 낮에는 대부분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불교국가에서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이다. 잠시 이정현의 노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들어볼까?

https://www.youtube.com/watch?v=LqFY9BK6m50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영 크리스마스 기분이 나지 않는다. 거의 전 국민이 불교를 믿는 나라에서 뭘 기대하겠는가?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서 저녁을 먹는 것은 싫었다. 숙소에서 만난 "카이"라는 이름의 독일 친구와 함께 그의 최애 식당으로 갔다. 근데 태국어로 카이는 계란을 말한다. 사람 이름이 계란인 셈이다. 식당 앞에서는 직원 아가씨가 환한 웃음을 짓고 손님을 끌고 있었다. 나는 카레 국물에 닭다리가 나오는 까우쏘이라는 음식을 시켰다. 상표에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 태국의 대표 맥주인 창 맥주(Chang Beer)를 마시며 그와 함께 독일 통일 얘기, 일 얘기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갑자기 식당 밖에서 캐럴이 들려왔다. 그것도 라이브로 말이다. 캐럴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청소년들 여럿이서 악기를 연주하며 "징글벨 징글벨 징글 올 더 웨이"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앙코르를 외쳤다. 캐럴 두 곡이 이어졌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예기치 못한 선물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날이다. 치앙마이에 성당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을 안고 구글맵으로 찾아봤었다. 성당이 있다. 그것도 불과 걸어서 20분 거리에 말이다. 야호~. 조그마한 성당을 상상했다. 막상 도착해서 보니 의외로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내가 시드니에서 다니는 성당의 3배쯤 되어 보였다.


성당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보통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몸에 상처가 나있고 얼굴에 고통을 느끼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성당의 예수님의 모습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상처 하나 없이 아주 평온하고 평화스러운 얼굴 표정을 짓고 계셨다. 예수님이 한편으로는 고통스러웠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평온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이처럼 평온하고 평화스러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미사가 끝나고 나서 성당 밖으로 나왔다. 옆에 서 계신 노인분이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데 문제가 있으신 모양이었다. 도와드렸다. 그 노인분은 즐겁게 웃으며 통화를 하셨다. 뿌듯하다. 사소한 것이지만 이게 하루하루의 삶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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