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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Apr 22. 2020

호주에 오지 않고 한국에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면?

내 인생의 결정

내 인생에서 스스로 내린 주요한 결정이 뭐가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대학에 들어갈 때 전산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 직장에 취직한 것,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것, 호주로 이민 온 것 등이다. 호주로 온 지 다음 달이면 벌써 만 9년이다. 그때 만약 호주로 이민 오지 않고 한국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호주에서 누리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것은 뭐가 있을까? 첫째, 저녁이 있는 삶이다.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코로나 19 사태 이전에는 매일 5시 30분경 퇴근을 했다. 집에서 직장이 가까워서 6시쯤 집에 도착했다. 그 후에는 온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하루 동안의 일과를 얘기했다.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평일에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으리라. 


그다음으로는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다. 이곳 호주에서는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다. 뒷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녹색의 잔디밭, 짙은 향기를 내뿜는 스타 재스민 꽃, 이름을 모르는 분홍색 꽃, 다음 달에 필 동백꽃, 구석 텃밭에 있는 깻잎과 샐러드로 먹는 로켓. 그리고 앞마당 정원에는 30 m 짜리 전나무, 알로에, 철쭉과 비슷한 꽃나무들이 있다. 일 년 내내 푸른 잔디밭과 계절에 따라 번갈아가며 피는 꽃나무가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눈을 들면 파란 하늘이 보인다. 집에서 걸어서 10분만 가면 국립공원 등산로(산책길)에 닿는다. 차를 타고 20분을 가면 바닷가에 도착한다. 국립공원에서 또는 바닷가를 따라 지인분들과 함께 자주 걷는다. 


마지막으로 내 딸과 아들의 교육이다. 딸은 한국 중학교 2학년 때 호주로 왔다. 학교를 다니면서 (호주에서는 한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합쳐진 High School을 6년간 다닌다), 과외와 학원을 뺑뺑 도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에 소질이 있는지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드니 미대를 선택해서 잘 다니고 있다. 작년에는 국제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하기도 했다. 아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다. 파스타를 기가 막히게 요리한다. 고등학교의 교과 과정 중의 하나로, 실제 레스토랑에 가서 주방 보조로 2주일 동안  실습을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지인 분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대학을 진학해서 수학계열의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도 딸과 아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던 환경에 감사한다.                


반면에 한국에 남아있었더라면 가족, 친척, 친구들 옆에서 손쉽게 만나서 얼굴을 보며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주 어머니, 우리 식구와 동생들 식구가 모두 함께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처갓집 식구들 모두와 함께 닭갈비를 먹으러 갈 수 있으리라. 친구들 불러서 소주 한잔 기울이며 각자의 고민거리를 나눌 수 있으리라.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있는 한국 음식을 즐길 수 있으리라. 홍어, 삼겹살, 신김치의 홍어삼합, 서울 삼각지의 대구탕, 서해안 해변가에서의 조개구이, 얼큰한 버섯매운탕. 코를 막고 싶을 만큼 진한 냄새의 청국장도 좋겠다.


가족, 친척, 친구들이 보고 싶지만 그리고 제대로 된 한국음식이 먹고 싶기는 하지만 나는 호주로 오기로 한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9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나를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창밖에 밝은 연두색 나뭇잎들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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