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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May 12. 2020

노안

예전에 동사무소에 가면 종종 할아버지들이 돋보기를 꺼내 쓰고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돋보기를 통해 보이는 두 눈은 왕방울만큼 컸다.     


5년 전쯤의 일이다. 안경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데 글씨가 예전처럼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컴퓨터의 모니터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 도수를 조정해야 하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안경점에 가서 검안을 했더니 노안이 왔단다. 노안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얼어버렸다. 마음은 아직 이삼십 대인 것 같은데 몸은 이제 늙어버린 걸까. 할아버지처럼 돋보기를 쓰고 나서, 개구리 왕눈이처럼 커다랗게 보이는 눈으로 글씨를 읽어야 한단 말인가.


다행히 돋보기안경을 맞출 필요는 없단다. 그동안 쓰던 일반렌즈 대신 다초점렌즈로 바꾸기만 하면 된단다. 다초점렌즈 안경은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안경과 전혀 다름이 없다. 다만 먼 곳을 볼 때는 안경의 중간이나 위를 통해 보고,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볼 때는 눈을 깔아서 안경의 아래쪽을 통해 봐야 한다. 먼 곳을 보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눈을 깔아서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적응하는데 일주일 넘게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보거나 컴퓨터 화면을 볼 때 아예 안경을 벗는다. 다초점렌즈 안경을 쓰면 시야가 좁아져서 답답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맨 눈으로 보는 게 훨씬 편하고 자유롭다. 노안 덕분에 하루의 상당 시간 동안 25년 넘게 써 온 안경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맛본다. 노안이 가져다준 행복이다.


근데 가끔씩은 안경을 어디에다 벗어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온 집안을 헤매면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45년이 넘게 두 눈을 혹사시켰으니 탈이 날만도 하다. 노안이 온 이상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게다. 그동안 고생한 두 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두 눈에게 가끔씩 충분히 휴식할 기회도 주고, 잘 다독이면서 함께 잘 지내자고 속삭인다.     

        


한 줄 질문과 한 줄 답변

나에게 노안이란? 평생 데불고 다독이고 감사하며 함께 가야 하는 것

 

필사 : 김용준 님의 <근원수필> 중 안경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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