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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May 18. 2018

시드니 부시워킹 (1)

Wollstonecraft 역에서 라벤더 베이까지 

한국에는 조금만 눈을 돌리면 산을 볼 수 있으나 호주 시드니는 산다운 산을 가려면 2시간 정도를 운전해야만 한다. 하지만 시드니에는 도심 내에 마치 정글같이 나무가 빽빽이 있는 국립공원들이 여럿 있다. 이런 곳을 걷는 것을 부시워킹 (Bushwalking)이라고 부른다. 한국말로는 느낌상으로 산행이 제일 비슷하지만, 산이 아니기에 그냥 부시워킹이라고 적는다. 한편 해안선을 따라 걷는 코스도 많이 개발되어 있다. 이는 코스털 워킹 (Coastal walking)이라 불린다.


성당 교우분들과 2주일에 한 번씩 토요일에 부시워킹 또는 코스털 워킹을 한다. 앞으로 이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일자 : 2018년 5월 12일 (토)

코스 : Wollstonecraft 역에서 Ravender 베이까지

소요시간 : 2시간 51분

거리 : 8.8 km


새벽 4시쯤 깼다. 다시 잠이 들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났다. 노트북을 켜고 최근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썼다. 근데 창문 너머 빗소리가 들린다. '비 오면 안 되는데. 부시워킹 가는 날인데.' 옛날에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 (사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의 심정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다행히 좀 있다가 빗소리가 멎는다. 다행이다. 앗, 빗소리가 다시 나네. 천당과 지옥을 왔다리 갔다리 한다. 글을 다 쓰고 나니 6시 20분쯤이다. 부시워킹을 가기 위해 맞춰놓은 알람은 6시 50분이다. 30분이 남았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따뜻한 침대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맙소사, 아내가 깨워서 일어나 보니 벌써 7시 10분이다. 알람 소리를 못 들었거나, 알람을 잘못 맞춰놓았다 보다. 후다닥 옷만 입고 가방을 챙긴다. 세수는 과감히 생략한다. 급히 자동차 키를 찾아 근처 기차역으로 달려간다. 차를 역 근처에 주차하고 기차역으로 100 m 달리기를 한다. 역 바로 앞에 도착한다. 이미 정차해있던 기차의 문이 닫히고 매정히 출발해버린다. 


Shit! 지인분들과 이 기차 맨 앞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죄송하고 난감하다. 주말이라서 다음 기차는 15분 후에나 있다.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카톡을 연다. 눈에 단톡방의 마지막 톡이 눈에 들어온다. 휴~ 살았다. 지인들과 만나기로 한 기차의 시각은 15분 후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생각해보면 일이 잘못될까 봐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봐 걱정을 많이 하며 산다. 근데 실제로 그 걱정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만약 실제로 그 걱정이 현실로 다가올 경우, 그때 어떻게 할지 고민해서 행동하면 되는 게 아닐까? 내가 실제로 기차를 놓쳐서 15분 지각을 했다면, 죄송하다고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커피 한잔씩 쏘면 되지 않았을까?


기차는 서서히 Wollstonecraft 역에 도착한다. 시드니 도심으로 들어갈 때 이 역을 많이 지나다녔지만 이 역에서 내리는 것은 드물다. 역에서 내려 30 m 쯤 갔을까? 나무들이 무성한 부시 지역으로 들어선다. 역 바로 옆에 이런 울창한 나무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기차를 타고 수없이 많이 지나다닌 곳이지만 실제 그 근처에 뭐가 있는지는 몰랐다. 


다 안다고 자만하지만 실제로는 무지한 나를 돌아본다. 내 주변의 자연이 그렇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렇다. 익숙하기 때문에 다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사는 것이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덮여있다. 날씨는 초겨울처럼 좀 쌀쌀하다. 올해는 겨울이 일찍 오나보다. 하지만 부시 워킹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이다. 오늘의 코스는 Wollsonecraft 역에서 라벤더 베이까지 시드니 항구의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바다에 한가롭게 보트가 정박되어 있다. 보트의 뒷배경으로 푸른 나무들과 시드니 타워, 높은 빌딩들이 보인다. 가끔씩 맞은편에서 개를 산책시키려고 나온 사람들과 아침인사를 서로 건넨다. 토요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개와 사람 모두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한 시간쯤 지났나 보다. 조그만 카페가 눈에 띈다.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시드니 항구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여유로움이고 평화로움이다. 행복하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커피 한잔에 행복이 담겨있다. 한걸음 한걸음에 행복이 함께 걷는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해안선을 따라 여러 베이들을 걸으니 하버브리지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한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더 걸은 후에 시크릿 가든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화초와 나무들이 아기자기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오늘의 부시워킹 코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땅이 질척해질 만한 곳은 모두 위에 나무를 대어서 편히 걸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지인분들 중의 한 분이 이렇게 관리를 잘 하니까 세금을 많이 내도 아깝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동감이다.


시드니 항구의 해안선을 따라 걷는 코스는 아기자기해서 발걸음이 즐거웠다. 항구의 멋진 뷰 덕분에 맥주, 브런치, 커피는 더 맛있었다. 오늘 코스를 안내하느라 내내 스마트폰의 앱을 바라보며 애쓰신 요셉 형제님과 함께 했던 자매님들께 감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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