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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Mar 17. 2020

밀포드 트레킹 : 코골이 퇴출 사건  (Day 3)

내리막 길이 드디어 끝난 모양이다. 길은 이제 평평했다. 한 시간 반을 걸어서 덤플링 산장 (Dumpling Hut)에 도착했다. 역시나 제일 처음 우리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샌드플라이였다. 산장 안의 한 편에는 커다란 난로가 후끈후끈 열을 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비를 맞고 난 후에 따뜻한 난로를 보니 행복했다. 그 위에는 젖은 옷들이 걸려있었다. 아래에는 젖은 등산화 두 세 켤레가 놓여있었다. 산장 안으로 들어올 때는 반드시 등산화를 밖에 벗어놓아야 하는데 누군가 그 규칙을 어긴 것이었다. 신발이 마르면서 고린내가 풍겨 나왔다.


맙소사, 일행 중의 한 부부가 배낭 안에 있던 침낭이 젖은 것을 발견했다. 배낭 방수커버를 씌웠지만 물이 새어 들어간 것 같았다. 침낭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는 데 걱정이었다. 다행히 화력 좋은 난로가 있으니, 젖은 침낭을 난로 곁에 놓고 말렸다. 침낭 하나는 금방 말랐고, 다른 침낭 하나는 제법 걸렸다.


샤워실이 없는 시설에서 씻는 요령은 하루하루 늘어갔다. 오늘은 먼저 부엌에서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뜨거운 물을 가지고 화장실에 가서 세면대에 부은 다음, 수도꼭지에서 찬물을 나오게 해서 적당히 물 온도를 맞췄다.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셨다. 옆에 있는 조그만 탈의실로 갔다. 옷을 다 벗었다. 머리를 먼저 수건으로 적시고 나서, 머리 말릴 때처럼 열심히 수건으로 털었다. 며칠 동안 머리를 감지 못해서 찝찝했는데, 이렇게 하니 꽤 효과가 있었다. 그다음에는 목부터 시작해서 몸통, 팔, 허벅지, 다리 순으로 따뜻한 물수건으로 간이 목욕을 했다. '아, 시원해.'


어라, 내 스테인리스 컵이 보이지 않았다. 배낭 안을 모두 뒤져도 없었다. 아마도 아침 일찍 어두컴컴한 가운데 배낭을 싸다 보니 빠뜨린 것 같았다. 산장 관리인에게 물어봤더니, 어제 묵었던 산장으로 무전기를 이용해서 확인을 했다. 그런데 그런 유실물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발견하게 되면, 테아나우에 있는 국립공원 안내소로 보낼 테니 거기에서 찾으면 된다고 했다. 친절한 산장 관리인에게 감사했다.


오늘은 밀포드 트레킹의 마지막 저녁식사였다. 비장의 음식들이 출현했다. 매운 깻잎찜, 소고기 장조림 (뉴질랜드 세관에서 뺏기고 나서, 퀸스타운 아시안마트에서 새로 구매) 등. 따뜻한 곳에 둘러앉아, 모두 오늘의 거센 비, 칼바람 그리고 끝나지 않는 오르막에 대한 무용담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메뉴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즐겼다.


산장 관리인의 브리핑 시간이 되었다. 내일도 비가 내린단다. 하지만 예상 강우량은 오늘에 비해서 적단다. 산장 관리인이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들은 침실 말고 휴게실에서 자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 


밀포드 트레킹의 제일 힘든 하루를 끝냈다는 안도감과 이제는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의 교차 속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 일행 중에는 두 남자분이 심하게 코를 곤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도 계열로 보이는 이삼십 대 여자가 그 두 분께 다가와서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불평을 했다. 그 두 분은 바싹 주의를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그 여자가 다가오더니 코골이 소리가 심한데 휴게실에 올라가서 자면 안 되냐고 얘기했다. 어쩔 수 없이 두 분은 주섬주섬 매트리스와 침낭을 챙겼다. 한 손엔 매트리스, 다른 한 손엔 침낭을 움켜쥐고, 머리에 달린 랜턴에 의지한 채 10 m 정도 떨어진 휴게실을 향해 뛰었다. 추운 어둠 속에서 세찬 소나기가 내리치고 있었다. 옆에 있던 그분들의 아내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맘 한켠에는 눈치 안보고 편히 코골면서 푹 자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인도(?) 여자의 남자 친구인 듯한 사람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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