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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Mar 18. 2020

밀포드 트레킹 : 아내의 실종 사건  (Day 4)

밀포드 트레킹의 마지막 날이다. 거리는 18 km 로서 가장 길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평지라서 힘든 코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도착점인 샌드플라이 포인트에 2시까지 도착해야 했다. 샌드플라이 포인트에서 밀포드 사운드 선착장까지 이동하는 보트가 2시에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는 3시 예약이었고, 약 1시간 반의 크루즈를 한 후에, 5시에 테아나우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어젯밤에 우리 일행 중의 코골이 두 명을 쫓아냈던 여자가 아침에 다가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자기가 예민해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잠을 못 자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면서 말이다. 쫓겨났던 두 분은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7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준비가 조금 지체되어서 7시 반에 출발했다. 마음이 급했다. 비는 어제보다는 훨씬 약하게 내리고 있었다. 일행 중의 두 분은 다리가 조금 안 좋아서 뒤쪽에서 따라오기로 했다. 


한참을 걷고 나니, 비가 그쳤다. 하늘은 파랗고 앞에 보이는 산 중턱에는 운무가 걸려있었다. 눈을 돌리는 곳 모두 한 장의 그림이고 사진이었다. 비가 온 후라서, 길 옆의 풀들이 파릇파릇해졌다. '이 맛에 트레킹을 하지.' 어제 비바람, 추위, 배고픔으로 고생했던 것에 대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배낭을 메는 법도 완전히 터득했다. 예전 트레킹 할 때는 어깨가 계속 아팠는데, 이번 트레킹을 통해서 어깨가 아닌 허리로 배낭 무게를 지탱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예전 글 중 짐 싸기 편에서 소개한, 배낭을 올바로 메는 것에 대한 동영상에 나와 있는 방법을 그대로 했다. 내 배낭끈을 조절하면서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고, 내 어깨에 걸리는 하중과 허리로 바치는 하중의 정확한 밸런스를 잡아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어깨가 하나도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물을 끓인 다음에 동결 건조 식량에 붓고 약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점심식사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나와 다른 한 분이 먼저 속보로 점심 식사 장소로 이동해서 점심 준비를 해놓기로 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점심 식사 장소에 훨씬 먼저 도착했다. 버너 하나에 먼저 불을 붙이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맙소사, 내 가방 안에서 나머지 버너를 아무리 찾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어제저녁 식사를 한 후에 다른 분께로 간 모양이었다. 뒤에서 오고 있는 분께 버너를 받아와야 했다. 왔던 길을 거슬러서 뛰었다. 다행히 무거운 배낭을 멜 필요가 없어서 몸은 가벼웠다. 한참을 뛰어 일행과 만나 버너를 챙겼다. 다시 반대로 뛰어 점심 식사 쉘터에 도착해서, 한 숨 돌린 후에 버너에 불을 댕긴 후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일행들이 도착했다. 몇 분들은 바로 점심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외쳤다. 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인원수를 세어보니 모두 있는데 내 아내만 없었다. 내 아내가 점심 식사 장소 이정표를 못 보고 지나친 게 틀림없었다. 다시 뛰었다. 이번에는 샌드플라이 포인트 방향이었다. 한참을 뛰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렇게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일이 난 건 아닐까?'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계속 뛰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터덜터덜 걷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무도 없이 혼자 걷느라고 얼마나 두려웠을까?' 눈물이 날 뻔했다. 가만히 안았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정표를 못 보고 지나쳤단다. 점심 식사를 하러 되돌아가자고 말했더니, 초콜릿바가 있으니 먹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가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번 더 얘기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내 배낭은 점심 식사 장소에 있으니 나는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뛰었다. 트레킹을 하던 사람들이 뛰어오는 나를 보더니 괜찮냐고 물었다. "Are you ok?" 나는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며 "OK"라고 외치며 계속 뛰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v7cTJi2z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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