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31일.
나는 퇴사를 했다

퇴사했습니다.

by 한량


퇴사했다. 예정되어 있던 퇴사였다. 1년 3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막상 퇴사하는 당일이 오니 기분이 묘하다. 그렇게 기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고. 그냥 막연하게 앞으로 뭘 해야 될까, 고민이 된다.


2021.12.30 퇴사 전날.


퇴사 전날이었던 어제는 내가 맡은 사업 최종 결과보고서를 작성했다. 이후 그동안 맡은 사업의 회계 처리를 했다. 금액이 제대로 맞는지, 혹여 빠진 부분은 없는지, 항목 간 틀린 사항은 없는지를 꼼꼼히 살폈다. 문제가 몇 가지 보였고, 대표에게 알린 뒤 수정을 했다. 최종 결과 보고서를 올리고, 사업 외주를 맡겼던 업체에 전달할 금액 송금 결제를 올렸다. 마지막 엔터를 누른 순간 내가 맡았던 모든 사업이 끝났다는 게 실감 났다.


"후, 영수증 처리해야지."


내가 맡은 사업이 진행된 건 5월부터였다. 이전부터 어떻게 이 사업을 진행할까, 무엇을 보여줄까, 왜 하는 걸까 고민에 고민한 시간을 합치면 올 초인 2월부터 꾸준히 했던 것 같다. 12월에 모든 일정이 끝났으니, 거의 1년을 이 사업에 쓴 셈이다.


"5월, 6월..."


영수증을 보면 내가 어느 달에 바쁘게 움직였는지가 보였다. 일이 더디게 이루어진 초반에는 처리할 영수증이 거의 없었다. 사업이 빠르게 추진된 연말 즈음에는 처리해야 할 영수증이 수두룩했다. 그 영수증을 하나하나 다시 처리하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 지나 있었다.


늦게까지 있는 나를 보고 옆에 있던 팀은 오늘도 야근하세요?,라고 물었다. 할게 아직 조금 남아서 조금만 더 있다가 가야 될 것 같다고 하니, 내일까지 출근하시는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본인들은 그럼 오늘 인사를 드려야겠다며 그동안 정말 고생하셨고, 옆에서 지켜봤으니 인정한다고 말했다. 나는 감사하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말했다. 그들이 가니 회사 전체에 남아 있는 건 나 혼자였다.


"빨리하자."


그간 했던 사업 월별 집행내역과 가지고 있는 영수증을 일일이 비교했다. 엑셀에 있는 날짜와 금액과 영수증에 찍혀있는 날짜와 금액을 일일이 살폈다. 작은 글씨에 집중하려니 목이 저절로 앞으로 나갔는지 뻐근했다. 처리를 다하고 목 스트레칭을 하니 뚜두둑 하며 소리가 났다.


"끝났다."


영수증까지 처리를 다한 뒤, 그동안 사용했던 자리를 정리했다. 컵, 텀블러, 계산기, 공책 등 개인 물건을 쇼핑백에 넣고, 회사 물건을 원래 자리에 놓았다. 쓰던 사물함 안에 있는 물건 중 개인 물건을 넣고, 회사 물건은 제자리에 돌려놨다. 사물함을 정리하다 보니 예전에 일했던 분들이 퇴사하며 주고 간 편지들이 있었다. 대략 항상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다시금 편지를 읽고, 가방 넣었다.



자리 정리를 하고 나니, 쓰던 책상과 사물함이 이렇게 넓었나 싶었다. 막상 쓴 건 별로 없었는데, 올려둔 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싶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니 무언가 시원 섭섭했다. 잘하고 가는 건지, 아닌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회사 불을 다 끈 뒤, 문을 닫고 회사를 나왔다.



2021.12.31 퇴사 당일.

출근을 하니 다른 팀 분들이 이미 출근해 있었다. 일 적으로나 사적으로 부딪혀 본 적이 없어서 그냥 인사만 하고 자리로 올라갔다. 어제 정리를 다 해놔서 특별히 할 건 없었다. 어제 최종적으로 정리한 사업 영수증을 한 번 더 검토하고 대표에게 전달했다.


이후 사무실 청소를 했다. 1년 동안 여러 사업을 하느라 널브러진 짐들이 많았다. 우리 팀 사무실이 있던 2층과 주로 사용하던 지하에 있던 짐을 정리했다. 쓰레기가 많이 나왔다. 대부분의 짐에 손발을 걸쳐 놓은 게 많아서 인지, 왜 샀었는지, 어떻게 샀었는지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짐을 다 정리하고, 쓰던 컴퓨터 자료를 다시 한번 정리하고, 대표와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갔다. 마지막 식사였다. 회사를 떠나기 전 대표가 마지막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건넸다. 열어보니 만년필이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년필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대표는 "글은 주로 컴퓨터로 쓰지만, 가끔은 손으로 쓸 때도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본인도 전에 다니던 직장의 대표님이 퇴사를 하면 직원들에게 만년필을 선물로 줬다고 말했다. 전 직장임에도 배운걸 잘 쓰는구나 싶었다.



대표와 함께 간 식당은 평소 자주 가던 중식당이었다. 대표는 볶음밥을 나는 해물짬뽕을 시켰다. 메인 메뉴로 등심 탕수육도 하나 시켰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어떤 걸 할지, 대표가 본 일하는 모습은 어땠는지, 대표 본인은 회사를 운영하며 어땠는지 등이었다. 대표가 보는 것과 직원이 보는 시선은 확실히 다르구나 싶었다. 대표가 갖고 있던 부담감이 많이 컸다는 게 느껴졌다. 특히 여러모로 큰 충격을 받은 올해 10월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낯빛이 잠시 어두워졌었다.


대표는 내게 일하면서 어땠는지를 물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게 있지 않아, 시원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말했다. 내가 맡은 사업을 잘 마무리하긴 했지만, 담당자였던 내가 사업이 오픈되는 걸 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게 아쉽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다하고 가니 시원하다고 말했다. 그 뒤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밥을 다 먹고 대표는 회사로, 나는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내 1년 3개월의 직장 생활이 끝났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좋은 순간이 있고, 그렇지 않은 순간이 있다. 내 경우엔 반반이었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안 좋았던 순간은 이 조직에서 이 일을 왜 하는 건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을 때였다. 조직의 미션이나 비전과 맞지 않아 보이는 사업에 조직 구성원들이 너무 큰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수록 '왜?'라는 질문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스스로 왜와 싸우는 시간이 힘들었다.


좋았던 순간은 내가 제안했던 사업이 실제 이루어진 것이었다. 비록 큰 사업비가 배정된 건 아니었지만, 여유가 많이 없는 상황에서 꽤 큰 금액을 들여 사업을 했고, 그걸 내가 처음 제안하고 메인 담당으로 끝까지 해냈다는 게 좋았다. 그래서 준비 다 해 놓고 오픈을 보지 못한다는 게 많이 아쉬웠다.


퇴사를 하게 되면, 이제 매달 들어오던 월급도 안 들어오고, 직장 가입자로 되어 있던 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건보료는 비싸지고, 일정한 수입이 없다는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묻는 대표에게 평소 관심 갖던 분야의 일을 말했다. 사실 처음 이 조직에 온 것도 그 분야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표는 어느 직장을 가던지 무언가를 열심히 배운다는 생각으로 하면 좋다고 말했다. '왜?'라는 질문이 정말 좋은데, 조직은 조직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건 내가 맨 처음에 이 조직에 들어왔을 때, 대표가 내게 했던 말이 '왜?'라는 질문을 자주 하느냐는 거였다. 만약 그 왜?라는 질문 없이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힘들어진다고 했다. 조직 구성원들이 묻는 그 '왜?'라는 질문이 대표 입장에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지난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왜?'라는 질문을 꾸준히 가져갈 생각이다. 만약 이 '왜?'가 없다면,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가치도, 의미도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 내 일에 자긍심을 갖기 위해서, 나 스스로 내가 일하는 곳의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 나 스스로 내 일과 직장에 떳떳하기 위해서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왜라는 질문을 할 것이다. 취준생으로서 앞으로 쓰게 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이 질문을 쓰고, 내가 내린 답을 잘 적어야 할 것 같다.


좋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 하게 될 일에서도 이런 좋은 경험을 하고 싶다.


2021년 12월 31일.

나는 퇴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