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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Jan 17. 2022

공정하지 않는 한,
아동노동은 계속된다.

책,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공윤희, 윤예림 / 샌들 코어 / 1판 3쇄 / 2018.03.15)

- 공정하지 않는 한, 아동노동은 계속된다 -



지난 1월 11일 세계은행이 세계 경제 성장률 망치를 내놨다. 2022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예상치는 4.1%였다. 선진국은 3.8%, 신흥국 개도국은 4.6%, 유로존은 4.2%, 동아시아 태평양은 5.1%, 미국은 3.7%, 중국은 5.1% 성장한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경제는 성장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2023년에는 3.2%로 성장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성장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노동자의 기본 소득이 상승하기도 하고, 경기 호황으로 물건이 잘 팔리기도 한다. 무역 장벽이 허물어져 자유무역이 일어나 물건의 활발한 수출입이 이루어지고, 물가 상승으로 인해 판매금이 올라서 성장하기도 한다. 이유는 많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경제가 성장하려면 기본적으로 물건이나 서비스가 사고 팔려야 된다. 수요와 공급에 맞춰 가격이 측정되고, 그것이 합리적이거나 싸면 사람들은 구매를 한다. 경제는 이 과정에서 성장한다. 이는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고 팔리는 과정에서 가격이 책정되고, 그 가격에 맞춰 소비자는 커피와 초콜릿을 먹고, 옷을 사 입고, 담배를 피우고, 라면을 먹고, 스마트폰을 산다. 이용하는 소비자가 많을수록 물건을 더 싸게 만들어 팔아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이 생긴다. 그리고 비극도 생긴다.


책,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은 경제 성장에 감춰진 아동노동의 비밀을 알려준다. 카카오, 콜탄, 팜유, 의류, 커피, 새우, 담배, 목화 총 8가지에 맞춰 아동노동이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카카오

달콤한 초콜릿에 담긴 아동 노동의 씁쓸함


첫 번째로 다루는 주제는 카카오다. 카카오는 초콜릿 제조에 필수다. 세계에서 카카오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코트디부아르다. 전체 생산량의 40.68%를 차지한다. 뒤이어 가나 20.22%, 인도네시아 7.22%, 에콰도르 5.53%, 카메룬 5.53%다.


초콜릿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회사는 우리가 익히 들어본 회사들이다. 1위 마스, 2위 몬델리즈, 3위 네슬레, 4위 페레로, 5위 메이지다. 초콜릿은 유용하다. 일상의 편한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예쁘게 포장되어 선물하기도 한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일부러 초콜릿을 사서 선물하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에 흔히 만날 수 있는 초콜릿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카카오다. 그렇다면, 초콜릿 하나를 팔았을 때 카카오 농가가 배분받는 수익은 어느 정도 일까?


책에 따르면 초콜릿 이익분배는 이렇다. 페레로, 네슬레 같은 카카오 판매회사가 44.2%를 가져간다. 뒤이어 초콜릿 제조회사가 35.2%를 챙긴다. 이어 카카오 가공업자가 7.6%, 운송비 2.1%, 세금 4.3%다. 카카오 농민이 가져가는 비율은 6.6%. 만 원짜리 초콜릿 하나가 팔리면 660원을 가질 수 있다.


카카오 농사를 짓는 대부분 농민은 척박한 현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이끌려 타국으로 온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농민들 역시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p.24)


문제는 일꾼을 쓸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농민들은 보통 2~5헥타르(약 6,000~15,000평)의 땅을 가지고 있다. 농장 크기만 생각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만, 일 년 내내 밭을 일궈도 품삯을 주기가 힘들다. 그들의 하루 수익은 우리 돈으로 만원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p.24)


카카오 농민이 가져갈 수 있는 파이 자체가 작다. 때문에 카카오 농민들은 늘 가난에 허덕인다. 게다가 카카오는 일일이 사람 손이 닿아야 수확할 수 있는 까다로운 작물이다. 숙성 시기도 달라 농민들이 1년 내내 농사에 매달려야 한다. 즉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농민들이 가져가는 비율이 말해주듯 떨어지는 할당량 자체가 작아 어른을 쓸 수 없다. 그렇게 아동들이 카카오 재배에 들어오게 된다. 인신매매를 통해서.


만원 이하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계은행은 하루 생활비가 1.25달러(약 1,500원)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절대 빈곤 상태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 비중은 8억 3천6백만 명에 달한다. 다시 말해 지구촌 어디를 가든 1,500원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코트디부아르를 예로 들면, 한 가정에는 보통 4명의 아이가 있는데 6명의 가족이 살아가려면 적어도 9,000원 가까이 돈이 필요하다. 실제로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민의 60%는 이 돈을 벌지 못해 매 끼니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 결국,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농민들은 아이들을 찾게 되는 것이다.(p.25~26)


이렇게 되는 이유가 뭘까? 비밀은 무역장벽에 있다. 카카오 생산국이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 팔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그럴 수 없다. 선진국은 카카오에 관세를 붙이지 않는다. 때문에 선진국 기업들은 싼 가격에 카카오를 수입할 수 있다. 덕분에 기업은 생산비가 낮아져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은 수입 초콜릿에는 높은 세금을 적용한다. 즉 초콜릿 생산국의 초콜릿은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없다. 반면 선진국이 만든 초콜릿은 가격 경쟁력이 있다. 수입이 아닌 직접 만들었기에 세금이 없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이 부딪히는 관세 장벽은 선진국이 겪는 것보다 4배나 더 높습니다. 여기에 비관세 장벽까지 더해져 수출에 난항을 겪고 있죠. 국제 무역 자체가 개발도상국의 이익에 반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시장을 지배하는 규칙이 부유한 나라에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자유 시장을 만들기 위해 관세를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공정한 시장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경쟁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면, 개발도상국은 아무리 노력해도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1%만을 위한 시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이들은 카카오 농장을 벗어날 수 없다. (p.30)


자유무역이라는 돛을 단 다국적 기업은 전 세계를 순항하며 큰돈을 벌어들이지만, 모든 다국적 기업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제대로 세금을 낸다면, 개발도상국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이 아니라 자신의 몫을 제대로 받는 것이다. (p.33)


하지만 비관적인 상황만 있는 건 아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와 그로 인한 아동노동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영국의 바디샵의 창립자 아니타 로딕과 영국 공정무역단체 트윈의 도움으로 '디바인 초콜릿'이 영국에 설립됐다. 이 초콜릿의 최대 주주는 가나의 카카오 협동조합인 '쿠아파 코쿠 협동조합'이다. 회사의 45% 지분을 가지고 있고, 이사회 의석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즉 회사가 내리는 모든 결정에 생산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이다.


디바인 초콜릿
쿠팡

실제 인터넷에 디바인 초콜릿을 검색하면 여러 초콜릿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주목할 건 가격이다. 12팩 기준 우리나라 돈으론 79,100원, 영국 현지에선 약 5만 원 정도다. 첫 느낌에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정직한 가격이다. 아동노동과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카카오 농장이 아닌, 공정한 경쟁에서 벌였을 때의 올바른 가격인 것이다.



콜탄

소년병의 손으로 채취된 스마트폰


두 번째로 다루는 주제는 '콜탄'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 콜탄이라는 소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처음 들었다. 눈과 귀에 낯선 이 재료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스마트폰에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콜탄은 고온에도 잘 견디고, 다른 금속과 결합하면 더욱 단단해진다. 또 적은 양으로 많은 전기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없어선 안될 원료다. 비단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게임기, 노트북, 비행기, 인공위성, 전구, 카메라, 현미경에도 들어간다.


콜탄이 생산되는 나라는 다양하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며, 남수단, 르완다, 브른디, 앙골라, 우간다, 잠비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콩고, 콩고 민주공화국, 탄자니아에서 생산된다. 이중 아동 노동이 발견되는 국가는 콩고 민주공화국이다.


콩고 민주공화국은 오랜 내전을 겪었다. 정부군과 반군이 피 튀기는 전쟁을 했고, 이 과정에서 어린 소년들이 끌려가 소년병이 됐다. 이후 내전은 끝났지만, 콩고 민주공화국에 매장된 광물로 인해 또다시 내전이 발발했다. 콩고 민주공화국에 매장된 지하자원의 가치는 우리나라 GDP의 17배에 달한다. 이 어마어마한 가치의 광물을 두고 정부군과 반군이 전쟁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린 아동들은 다시 소년병으로 끌려가거나, 콜탄 광산으로 끌려가 고사리 손으로 콜탄을 캤다. 이러한 이유로 콜탄은 대표적인 분쟁 광물이고, 블러드 콜탄이라고 불린다. 윤리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분쟁으로 캔 콜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콜탄의 원산지가 어딘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생산된 콜탄은 주변국인 르완다와 우간다 등으로 은밀하게 밀수되어, 전 세계로 흩어진다.


"수출업자들은 반군이 채취한 콜탄인지 먼저 묻습니다. 그럼 저희는 그저 아니라고 말합니다. 직접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까요. 원산지를 속이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p.56)


이렇게 알 수 없는 원산지의 콜탄은 러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 수출되고 전 세계에서 모인 콜탄과 섞여 그 원산지를 영원히 알 수 없게 된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러한 행태를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유엔이 국제사회에 반군이 채취한 콜탄을 쓰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은 이 콜탄을 쓰고 있다. 애초에 원산지를 모르는데 반군이 채취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다.


블러드 콜탄은 국제 사회의 모순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유엔은 약사상 가장 많은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콩고 민주공화국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기업은 반군으로부터 콜탄을 사들이며 간접적으로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콩고 민주공화국의 상황은 유엔군이 처음 발을 들인 15년 전과 비교해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콩고 민주공화국의 비극을 막고 싶다면 세상에서 스마트폰이 사라져야 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정부군과 반군을 동시에 지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스마트폰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결고 콩고 민주공화국의 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p.58)


앞서 말했다시피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에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 이제 더 이상 스마트폰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소년병과 아동노동이 깊숙이 들어간 블러드 콜탄을 사용한 스마트폰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걸까? 대안은 있다. '페어폰(Fair Phone)'이다.


"페어폰을 통해 전자 산업이 가진 모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휴대폰은 소통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생산자와 공급자가 누구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데이터 하나에 광물, 제조, 공급,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데도 말입니다."(p.65)


페어폰은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현재 유럽 전역에 자사의 스마트폰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페어 폰은 스마트폰이 만들어지고, 수명을 다할 때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국제 시민 단체와 힘을 합쳐 광산을 방문해 감시 활동을 하고, 투명한 콜탄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조립과정에서도 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고장 났을 때 부품만 따로 구매할 수 있도록해 스마트폰의 수명을 늘리고 있다.


"페어폰은 아동 노동을 줄이고, 광부들에게 더 나은 작업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사실 광산에서 벌어지는 아동 노동을 감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희가 가진 수백 개의 공급망 중, 광산은 가장 끝에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저희는 포기하지 않고,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광산을 찾아냈습니다. 물론 아동 노동이 없다고 100% 보장하기는 어려워요. 배가 고픈 아이들은 단돈 몇 푼이라도 벌기 위해 광산 근처에서 식수를 팔거나, 광물을 씻어내는 일을 하거든요. 윤리적인 광물을 늘려 이 문제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생각입니다. 광산 외에 제조 과정이나 폐휴대폰 분리 작업에서도 아이들이 일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p.66)


페어폰 https://www.fairphone.com/en/


실제 페어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원료 원산지와 제조 비용까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국내에서는 페어폰을 구매할 수가 없다. 현재 유럽에서만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스마트폰의 약정이 끝나서 휴대폰을 바꾸게 된다면 페어폰으로 살까 했는데, 아쉽다.


페어폰이 추구하는 건 공정한 재료의 사용과 지속가능성이다. 이 중 공정성이 핵심이다. 이렇게 힘쓰는 곳이 있기에 아직 세상이 변할 가능성이 보인다.




팜유

아동의 노동이 라면으로 돌아온다


세 번째 주제는 '팜유'다. 팜유는 일상에서 다양하게 쓰인다. 마가린, 초콜릿, 라면, 화장품, 인스턴트 커피, 빵 등이다. 전 세계적으로 팜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는 1위 인도네시아, 2위 말레이시아, 3위 태국, 4위 콜롬비아, 5위 나이지리아다. 이중 아동노동이 발견되는 곳은 말레이시아와 시에라리온,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팜유의 85%를 생산한다. 흥미로운 건 팜나무는 아프리카에서 주로 자란다. 애초에 자라지도 않는 나라에서 어떻게 그 많은 팜유를 생산할 수 있었을까? 비밀은 다국적 기업과 세계은행에 있었다.


세계은행은 동남아 개발도상국에 토지 거래가 빈곤을 해치울 수 있다고 말했다. 토지를 팔면 그곳에 다국적 기업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창출되어 부가 만들어지고, 빈곤이 사라진다는 논리였다. 당시만 해도 국경을 닫고 있던 동남아 개발도상국은 그 말에 현혹되어 국경을 열었고, 다국적 기업은 너도나도 뛰어들어 토지를 샀다. 그리고 팜나무를 심어 팜유를 만들었다.


문제는 원래 그곳에 있던 농민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과일나무가 있었어요. 저는 저 아래에서 벼농사를 지었고요. 20년 전, 갑자기 군인과 인부들이 마을에 들이닥쳤어요. 제 땅에 도로를 만들 예정이며, 다짜고짜 나무를 베기 시작했어요.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p.84)


숲과 토지는 사라지고, 도로가 깔리며 팜농장이 들어섰다. 기업이 무작정 빼앗은 건 아니었다. 그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생계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팜농장이 완성되면 6,000평의 팜농장을 빌려주고, 농장에서 수확한 팜 열매를 적절한 가격에 사들이겠다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원래 있던 주인들의 것을 빼앗고, 기부하고 공정한 가격에 사겠다며 선심 쓰듯 한 모습이다.


쫓겨난 지역 주민들은 하는 수 없이 팜농장을 빌려 거기서 농사를 지었다. 한순간에 집과 일자리를 잃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팜농장은 분명 세계은행과 기업, 국가 주도로 한 사업이었다. 주민들을 위한 개발이었지만, 그들을 배려하진 않았다.


"저는 회사가 지원해준 프로그램으로 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회사는 농장이 만들어질 때 들었던 초기 비용을 저희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때 진 빚이 아직도 있어서 매달 빚을 갚고 나면 겨우 40달러(약 50,000원) 정도 손에 쥘 수 있어요."(p.85)


팜농장이 위험한 이유는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그곳에 원래 살고 있던 동식물의 터전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아시아의 허파로 불릴 정도로 열대우림이 많다. 전 세계 동식물의 50%가 열대우림에 서식한다. 팜농장은 열대우림을 태워서 생성한다. 나무를 태우고, 그곳에 팜 나무를 심는다.


피해는 크다. 열대우림은 탄소 저장 능력이 탁월하다. 특히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은 늪지에 있어 일반 숲보다 20배가 넘는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습지는 그 깊이가 20m에 이른다.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는 말은, 태우면 그 안에 담겨 있는 탄소가 뿜어져 나온다는 말이다. 현재까지 아프리카 케냐 정도의 열대우림이 인도네시아에서 불태워졌다. 누군가는 팜 나무도 나무니 괜찮은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다. 다르다. 열대우림과 팜나무를 비교하면, 보관된 탄소의 량이 다르고 홍수예방 등 다양한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는 수준이 다르다. 게다가 저장되어 있는 탄소를 일부러 공기 중에 내뿜어서 다시 흡수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이러한 팜유의 생산을 막기 위해선 시민들이 힘을 합쳐 싸우고, 개인적으로도 싸워야 한다. 팜유를 생산하지 말도록 힘을 합치고, 팜유가 사용된 건 쓰지 말아야 한다. 책을 읽고, 우리 집에 물건 중 팜유가 들어간 게 없나 살폈다. 우리 집에도 있었다. 내가 먹던 라면에 말레이시아산 팜유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후,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다.


집에 있던 라면에도 팜유가 들어 있었다


기업은 팜유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팜유가 없어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 이것을 몸소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팜유 없는 삶은 번거로움과 불편함의 연속이지만, 분별없는 희생을 막는 것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고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돈이 아니라 결국 용기와 열정이다. (p.97)



의류

싼 만큼 인건비가 싸다


자라, H&M, 유니클로의 공통점은 뭘까? 패스트 패션 브랜드라는 점이다. 패스트 패션은 유행에 민감하게 괜찮은 제품을 싸고 대량으로 생산한다. 소비자들은 싼 가격에 괜찮은 제품을 살 수 있어서 패스트 패션에 열광한다.


2013년 4월 24일 오전 8시 45분,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있던 라나플라자 건물이 무너졌다. 8층짜리 건물 안에는 누군가의 옷을 만드려고 일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며 그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 수는 1,134명이었다.


라나 플라자 사태는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매우 유명했다. 건물 붕괴가 일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패스트 패션 브랜드 옷을 만들고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내가 싸게 입던 옷의 출처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패스트 패션엔 비밀이 있다. 물건이 쌀 수 있는 이유의 비밀은 '하청'에 있다. 다국적 의류 회사는 공장을 자국에 두지 않고, 에이전트를 통해 물건을 생산한다. 에이전트는 생산 공장과 직접 거래하고, 날짜에 맞춰 회사에 납품하는 중간자 역할이다. 문제는 이들에게 적절한 금액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다국적 의류 기업은 에이전트에 적은 돈을 주고, 물량을 맞출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에이전트들의 경쟁이 발생한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해야지 계약을 딸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전트들은 능력 이상의 옷을 만들 수 있다고 소리치며 계약을 따내고, 능력 이상의  물량은 다시 하청을 맡긴다. 물론 하청에 주는 돈은 더욱 적다. 적은 돈으로 물건을 생산하려면 어린아이들의 손이 필요하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청의 하청 공장을 그림자 공장이라고 한다.


그림자 공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법으로 건물을 증축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화기 하나 없이 비상구가 잠겨 있는 때도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불이 나면 인명 피해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p.114)


라나 플라자는 그런 하청 공장 중에 하나였다. 라나 플라자가 붕괴된 날 근로자들은 출근을 거부했다. 건물 벽에 금이 가고, 무너질 것 같은 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 관리자들은 괜찮다며 그들을 밀어 넣었고, 참사가 발생했다.


의류 회사들은 그림자 공장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림자 공장은 재하청을 받은 상황이라 겉으로는 회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일에 동원되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회사들은 책임이 없다며 말한다.(p.114)


패스트 패션은 우리에게 빨리 사서, 빨리 입고, 빨리 버리라고 말한다. 이 말에 현혹돼 정신없이 쇼핑하는 사이, 우리는 우리가 입는 옷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놓치고 있다. 더 슬픈 현실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하나 없다면 패스트 패션은 생산자의 희생 위에 세워진 반쪽짜리 혁명일 뿐이라는 것이다.(p.115)


세계화는 우리에게 9,900원짜리 티셔츠를 선물하고, 기업에는 저렴한 노동력을 마음껏 취할 기회를 제공했지만, 의료 생산국에는 '바닥을 위한 경쟁'이나 다를 바 없다.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더 낮은 임금을 제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라벨이 말해주지 않는 진실이자 우리가 저렴한 옷을 살 수 있는 이유다. (p.118)


이러한 다국적 기업을 견제할 수 있는 건 시민들이다. 라나 플라자 사고가 발생한 직후, 전 세계 SNS에는 패스트 패션을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온라인 서명 운동이 벌어졌고,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결국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H&M은 두 손을 둘고, 1,600개 공장의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200만 명의 노동자가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보장받았다. 또한 월마트와 갭도 이에 동참했다.


현재도 이러한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SNS 상에 #whomademyclothes를 검색하면 약 88만 개가 넘는 #를 볼 수 있다. 라나플라자 사고 이후, 누가 내 옷을 만들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소비자 캠페인이었다. 검색을 해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누가 내 옷을 만들었는지 알려달라는 사진을 SNS에 올리고, 내가 디자인했다, 내가 옷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감시하는 시민들이 있는 한, 기업의 무책임이 덜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커피

풍년이다. 투자자에겐.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커피는 일상에 깊게 스며들어있다. 커피 원산지는 다양하다. 브라질, 베트남,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케냐, 아르헨티나 등에서 생산된다. 하루에 전 세계인이 마시는 커피양은 20억 잔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커비 브랜드는 스타벅스이다. 


수요와 공급의 측면에서 보면 수요는 넘쳐난다. 오히려 하루 20억 잔에 필요한 커피 원두를 제대로 공급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오히려 공급이 부족해 원두 가격이 올라 커피 농장이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커피 원두 농가는 돈을 벌지 못한다.


커피 원두 열매를 하루 종일 따면 30kg 정도다. 커피 알맹이는 아주 작다. 그걸 일일이 손으로 떼야한다. 커피 원두 30kg은 커피 3,000잔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이걸 팔면 받을 수 있는 돈은 8달러(약 9,500원)이다.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아메리카노 기준 4,500원이다. 커피 두 잔이면 없어지는 돈이다.


"커피 농장은 항상 일손이 부족합니다. 열매를 빨리 따지 않으면, 금방 썩어 버리기 때문에 아이들의 손을 빌리는 겁니다. 게다가 성인 대다수는 산비탈에서 일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안개도 많이 끼고, 비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아 위험하기 때문이죠. 물론 아이들에게도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가파른 골짜기에서 일하다 보면 쉽게 미끄러져 바위나 나무에 머리를 부딪치기에 십상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되도록 아이들이 부모 곁에 있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부모가 아이들을 돌볼 수 있으니까요." ... 아이를 맡길 만한 곳도 없고, 학교에 보낼 형편도 안되기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일터에 데려온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 옆에서 커피 따는 법을 배우며 자란다. (p.139)


최근 스타벅스가 커피 가격을 올렸다. 스타벅스가 올리니 대다수 커피 브랜드가 커피 가격을 인상하는 추세다. 스타벅스는 커피 가격 인상의 이유를 커피 원두 가격의 상승으로 말했다. 실제 커피 원두 가격은 꾸준히 상승했다.


뉴욕 상업거래소


위 차트는 커피 원두의 가격이다. 37,500파운드(약 17,000kg) 당 약 240달러(약 29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커피 원두 가격이 꾸준히 상상한 걸 보면 커피 농가의 수입도 그에 비례해서 증가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조금 낯설다. 커피 원두의 가격을 생산하는 생산자가 정하는 게 아니라, 증권 거래소에서 정하고 있다. 여기에 커피 농가의 가난과 아동 노동의 원인이 발생한다.


30년 전만 해도 원두 가격은 안정적이었다. 전 세계 커피 수출량을 관리하는 국제 커피 협약 덕분이었다. 이 기구는 각 국가의 생산량을 조절해 가격이 폭락하거나 폭등하지 않도록 미리 방지했다. ... 그러나 1989년, 미국의 반대로 국제 커피 협약이 폐지되자 원두 가격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이후 원두의 몸값은 증권 거래소에 맡겨졌다. 투기꾼들은 가뭄이나 비가 온다는 소문에 따라 돈을 이리저리 옮겼고, 이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의 투기 자금이 빠르게 들어가거나 빠져나가면서 원두 가격은 심하게 요동쳤다. 클리 몇 번으로 투기꾼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졌지만, 생산자들의 삶은 전보다 더 팍팍해졌다. 누군가의 기쁨이 다른 이에게는 슬픔이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커피 상품 투기는 생산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폭풍이 되어 돌아왔다. (p.140~141)


어떤 과정에서 국제 커피 협약이 폐지되었는지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하지만 폐지 이후 농가의 수입이 정체된 건 사실이다. 커피 원두는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고, 해충과 한경에 취약하다. 1년 내내 인력이 붙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커피 해충은 습하고 따뜻한 곳에서 발생한다. 지구 온난화로 온도가 상승하자, 커피 농가는 점점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점점 위험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커피 원두의 가격은 생산자들의 손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 증권 거래소에서 거래하는 사람들의 클릭으로 정해진다. 이 같은 모습이 아동노동이 발생되는 원인이다. 커피 농가는 원두를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제대로 된 가격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커피 농가를 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고, 맡길 곳이 없는 아이들은 부모를 돕는다는 명분 아래 아동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커피 농가에게 제대로 된 가격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 대안이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 커피는 커피 농가에게 최소한의 금액을 보장해 커피 원두 가격이 폭락해도 수익을 보장해 준다. 그 보장된 수익으로 커피 농가는 돈을 벌 수 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


국내에서도 공정무역 커피가 존재한다. 아름다운 커피다. 원두 자체를 공정무역 거래로 판매하고, 농장의 소득을 보장한다. 커피 가격이 싼 편은 아니지만, 여타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서 비싸지 않다. 실제 스타벅스도 공정무역 원두를 판매하고 있다. 다만, 모든 원두가 공정 무역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실천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우

어린아이들이 끌어올린 식재료


새우의 최대 생산지는 태국이다. 새우는 바다에서 잡힌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잡을 수 있다. 새우잡이 배라고 하면 그 억양이 주는 것이 있듯 일이 고되다. 성인들은 새우잡이 배를 타려고 하지 않았다. 또, 탄다고 하여 꾸준히 고용되는 게 아니라 계약직으로 고용되고 끝나버리기 때문에 일자리 자체가 안정적이지 않았다. 태국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주변 국가의 국경을 개방해 이주민들을 데려왔다. 그중엔 아이들도 있었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온다.


이러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자 태국 정부와 납품업체와 기업이 실사를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형식적일 뿐이었다.


월마트에 새우를 공급하는 나롱 씨푸드 공장은 태국 정부와 월마트로부터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았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은 몸을 숨긴 채 일하고 있었다. ... "검사 날짜가 정해지면 공장 관리자는 아이들에게 오지 말라고 해요. 검사관과 인터뷰할 사람을 미리 뽑아 놓고,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주죠.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워요. 검사 당일이 되면, 유니폼을 단정하게 입고, 평소보다 천천히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라는 지침이 내려와요. 검사관들은 보통 공장을 한번 쓱 둘러본 후 경영진들과 이야기를 나눠요. 그게 다예요."(p.172~173)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원재료를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일부 식당에서 아동노동이 없는 원재료를 사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을 것이다. 사실 재료가 중요한지는 알지만, 싱싱하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지 여기에 아동노동이 들어갔느냐 아니냐는 따지지 않는다.



담배

아동에게 매일 쌓이는 담배 두 갑의 니코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담뱃잎을 생산하는 국가는 말라위다. 아프리카 내륙에 있는 말라위는 지하자원이 없고, 가난하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팔 수 있는 건 담뱃잎이 거의 유일하다. 담뱃잎이 팔리지 않으면 국가는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린다.


하지만 담뱃잎을 생산하다고 하여 제대로 된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다. 담뱃잎 판매 가격 자체가 담배 농가가 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때문에 담뱃잎 농장은 인부를 고용할 여유가 없고, 하는 수없이 농가의 아동들이 담뱃잎 생산에 들어가게 된다.


방과 후에 부모님을 돕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의 몸에 니코틴이 쌓여가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오랜 시간 담뱃잎에 노출된 아이들의 경우 담배 2갑 반을 피우는 만큼의 니코틴이 매일 쌓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종일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두통, 어지러움, 복통, 구역질, 기침을 일으키는 담뱃잎 농부병에 시달리고 있다. (p.199)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담해 회사는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이다. 말라위 담뱃잎은 세계에서 가장 싸다. 거대 담배 회사는 말라위가 쉽게 담뱃잎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이용해 싼 가격에 담뱃잎을 구매한다. 게다가 담배농가는 담배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비료와 농약을 산다. 그리고 담뱃잎을 판 돈으로 대출을 갚는다. 하지만 본전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빚더미에 쌓이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담배 회사에 이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책임회피였다.


"세계보건기구는 담배가 흡연자와 생산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말라위 담배 생산을 제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생산자의 건강을 논할 수 있을까요? 생산자들은 몸이 아파도 약을 살만한 돈이 없습니다. 담배 수확량을 지금보다 더 줄인다면, 말라위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담배 회사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담배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산이 늘어도 생산자들은 여전히 가난하기만 하고 아이들이 담배 농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p.202)


비단 기업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담배 회사를 키우는 데는 선진국도 한몫한다. 세계 2차 대전 직후 미국은 평화를 위한 식량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원조를 시작했다. 원조 물품에는 담배도 있었다. 이유가 있다. 당시 담배 회사들은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미국은 자국의 기업을 살려야 했고, 해외 원조는 기가 막힌 기회였다.


원조 물품에 담배를 넣고 개발 도상국 국민들이 담배 맛을 알게 하고, 아주 싼 값에 개도국에 담배를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자국 기업은 담배를 판매해 해외 판로 개척을 할 수 있었고, 미국은 원조라는 이름으로 착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아다리가 잘 맞아 이뤄낸 결과였다.


문제는 그 이후다. 원조가 끝나고 안정될 즈음 개발 도상국의 국민들은 담배를 잊을 수 없게 됐다. 계속 담배를 원했고, 담배 회사들은 꾸준히 성장한다. 얼핏 보면 좋은 의도에도 선진국과 기업의 이익 논리가 파고들어 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담배를 피우지 않고, 담배가 마치 멋있는 것처럼 모습을 티브이 속에서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기호 식품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 담배를 쉽게 포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목화

지폐에 담긴 아동 노동


지금까지 목화는 옷을 만드는데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또 목화가 어디서 주로 생산되는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지 못했다. 목화는 화이트 골드라고 불린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전체 GDP의 25%가 목화 산업에서 나올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목화는 옷에도 들어가지만, 지폐에도 들어간다. 처음 알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국가에서 주도로 목화를 생산한다. 학교에서도 목화를 생산하는 게 미덕처럼 여겨진다. 학교에선 할당제를 주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목화를 생산하도록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동들이 노동 현장에 투입되게 된다.


한국 조폐공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화폐를 생산한다. 우리나라 지폐뿐만 아니라, 해외 지폐도 생산한다. 돈은 매일 쓴다. 물론 카드를 주로 쓰지만, 현금은 아직까지 그 비중이 크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목화 생산에 아동노동이 발견됐다는 논란이 일었을 때, 조폐공사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업을 하는 포스코 대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코튼 캠페인을 벌였다. 이는 우즈베키스탄 목화 산업의 강제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캠페인으로, 다국적 의류 회사와 공급 업체가 우즈베키스탄 목화를 쓰지 않도록 설득하는 일을 한다. 2013년 이들은 나이키를 겨냥한 캠페인을 벌였다. 서한 9만 장을 보냈고, 과거 아동 노동 이슈가 있었던 나이키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아동 노동으로 원료를 구매하는 포스코 대우와 거래 관계를 끊었다.


이 캠페인의 성과는 포스코 대우에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비윤리적인 기업에 경고장을 내밀었다는 데에 있다. 기업들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갈 만큼 성장한 사이, 시민사회도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물을 정도로 성숙해졌다. 이제는 시민의 수준이 기업의 수준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p.239)



우즈베키스탄에서 목화 사업에서 벌어지는 아동노동을 알리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My Cotton Picking Life라는 게임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목화를 채취하면 된다. 게임에서는 실제 우즈베키스탄 아동들이 겪는 상황을 그대로 재연했다. 조금만 채취를 안 하면 강압적인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그리고 할당량을 채우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8시간이 걸리는데, 이는 실제 목화를 채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작은 실천일지 모르지만,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재미있는 사례다.


아동노동이 발생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아마 책에서 제시한 사례 외에도 많은 분야에서 아동노동이 발생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아동노동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불공정이다. 아동노동이 발생하는 국가는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이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기술이나 자원이 부족한 국가들이다. 물론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있다.


기업이 이렇게 한 이유는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담배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담배회사는 판로 개척을 하려고 했고, 말라위의 상황을 알고 이를 악용했다. 기업이 이렇게 하는 데는 국가와 국제 금융기관도 한몫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원조를 하며 담배를 개발도상국에 공급했다. 기업에게 판로 개척을 하고, 본인들은 원조 이미지를 챙겼다.


세계은행 역시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로 토지 판매를 독려했고, 그 결과 수많은 기업들이 들어와 팜유를 만들었다. 


기울어진 무역장벽을 만들기도 했다. 카카오 농민들은 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쩔 수 없이 헐값에 자신들의 카카오를 판매하고 있다. 그 결과 기업은 원재료를 싼 값에 가져올 수 있었고, 초콜릿은 비싸게 팔아 이익을 챙겼다. 장벽을 만들어 생산지의 초콜릿은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게 했고, 했다고 하더라고 가격 경쟁력이 없게 만들었다.


판은 이미 너무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비관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기업이 저렇게 할 수 있다는 건, 그 반대로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또한 세상이 변하고 있다.


콜탄과 커피, 카카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조금 더 공정하고 깨끗한 원료를 이용하려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소비자도 행동하고 있다. 의류와 목화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에게 깨끗하고 공정한 원료를 사용해 상품을 생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소비가 있어야 공급이 있다. 기업이 이런 흐름을 거스르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투자자들도 변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트렌드는 ESG다. 책에서 나온 사례는 아동노동을 집중하고 있지만, 그 원인은 공정거래에 있다. 거래 자체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ESG의 요소 중 사회(S)에는 다양한 이슈가 포함되는 데, 대표적으로 공정거래, 인권, 아동노동 금지, 노동조건, 업무환경 등이 포함된다. 세상이 점점 이를 중요시 여기는 것으로 변하고 있고, 돈이 이런 기업에게 쏠리고 있다. 흐름이 변하고 있으니 기업 역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의 맨 서두에 세계은행이 예측한 세계 경제 성장률을 다시 보자. 책을 다 읽고 의문이 든다. 저 성장률이 정직하고 옳은 성장률일까? 누군가의 인권을 짓밟고, 분쟁이 일어나고, 환경을 파괴하고. 이러한 토대 위에 쌓아올린 성장을 진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정한 성장이 필요하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아마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업이 이를 뒤집을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조금 더 공정하게 경영을 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나 역시도 변해야 할 것 같다.


밑줄

- 카카오 농사를 짓는 대부분 농민은 척박한 현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이끌려 타국으로 온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농민들 역시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 문제는 일꾼을 쓸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농민들은 보통 2~5헥타르(약 6,000~15,000평)의 땅을 가지고 있다. 농장 크기만 생각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만, 일 년 내내 밭을 일궈도 품삯을 주기가 힘들다. 그들의 하루 수익은 우리 돈으로 만원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p.24)


- 만원 이하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계은행은 하루 생활비가 1.25달러(약 1,500원)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절대 빈곤 상태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 비중은 8억 3천6백만 명에 달한다. 다시 말해 지구촌 어디를 가든 1,500원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코트디부아르를 예로 들면, 한 가정에는 보통 4명의 아이가 있는데 6명의 가족이 살아가려면 적어도 9,000원 가까이 돈이 필요하다. 실제로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민의 60%는 이 돈을 벌지 못해 매 끼니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 결국,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농민들은 아이들을 찾게 되는 것이다.(p.25~26)


- 인신매매를 당한 아이들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농민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계유지가 어려워서 성인을 고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인신매매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p.26)


- 선진국의 제품 규제는 복잡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식품 안전 기준의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국가마다 제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이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기준을 세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과도한 수입 규제를 만든다면, 이것은 또다시 개발도상국을 시장에서 밀어내는 장벽이 된다. ... "개발도상국이 부딪히는 관세 장벽은 선진국이 겪는 것보다 4배나 더 높습니다. 여기에 비관세 장벽까지 더해져 수출에 난항을 겪고 있죠. 국제 무역 자체가 개발도상국의 이익에 반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시장을 지배하는 규칙이 부유한 나라에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자유 시장을 만들기 위해 관세를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공정한 시장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경쟁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면, 개발도상국은 아무리 노력해도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1%만을 위한 시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이들은 카카오 농장을 벗어날 수 없다. (p.30)


- 더 큰 문제는 기업의 몸집이 커질 대로 커지면 국가의 힘으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가 힘들 다는 것이다. ... 자유무역이라는 돛을 단 다국적 기업은 전 세계를 순항하며 큰돈을 벌어들이지만, 모든 다국적 기업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제대로 세금을 낸다면, 개발도상국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이 아니라 자신의 몫을 제대로 받는 것이다. (p.33)


- 블러드 콜탄은 국제 사회의 모순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유엔은 약사상 가장 많은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콩고민주공화국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기업은 반군으로부터 콜탄을 사들이며 간접적으로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콩고민주공화국의 상황은 유엔군이 처음 발을 들인 15년 전과 비교해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비극을 막고 싶다면 세상에서 스마트폰이 사라져야 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정부군과 반군을 동시에 지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스마트폰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결고 콩고민주공화국의 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p.58)


- 두 국가의 운명을 가른 것은 다름 아닌 거버넌스(Governance)였다. 거버넌스는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자들이 참여하는 의사 결정 과정을 뜻한다. 정당한 규칙과 절차를 바탕으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보다는 국민의 요구와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거버넌스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가 바로 부정부패인데, 2015년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에서 보츠와나는 28위를 차지했다. 37위인 우리나라보다도 더 좋은 거버넌스를 가지고 있다. (p.60~61)


- "페어폰을 통해 전자 산업이 가진 모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휴대폰은 소통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생산자와 공급자가 누구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데이터 하나에 광물, 제조, 공급,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데도 말입니다."(p.65)


- 인도네시아에서 팜 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다국적 기업이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땅에 대형 팜 농장을 만들기 시작했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전체 농경지의 1/3에서 팜 나무가 자라고 있다. ... 물론 토지 거래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굳게 닫혔던 국경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은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세계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토지 거래가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형 농장이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창출되고, 도로와 병원 같은 사회기반시설이 늘어나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이다. 세계은행은 토지 거래 규제를 완화하라며 개발도상국에 정책 조언을 했고, 외국 기업들에는 대형 농장을 세울 수 있도록 투자금을 지원했다. ... 기업들은 앞다퉈 토지거래에 뛰어들었다. 기업들은 이 땅에 수익률이 높은 콩, 옥수수, 팜유를 심으로 돈을 끌어모았다. (p.83)


- "저는 회사가 지원해준 프로그램으로 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회사는 농장이 만들어질 때 들었던 초기 비용을 저희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때 진 빚이 아직도 있어서 매달 빚을 갚고 나면 겨우 40달러(약 50,000원) 정도 손에 쥘 수 있어요." (p.85)


-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경제가 좋아지고, 결국 모두가 잘 살게 된다고 말하지만, 경제가 발전한다고 모두가 부유해지지는 않았다. 이득을 본 사람은 다국적 기업과 기업에 투자한 은행, 그리고 팜 농장에서 일하는 소수의 관리자뿐이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은 '발전이란 우리의 삶을 더 좋게 만들고, 자유를 증진하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팜 농장은 주민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경제 발전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버린 팜 농장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p.86)


- 기업은 팜유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팜유가 없어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 이것을 몸소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팜유 없는 삶은 번거로움과 불편함의 연속이지만, 분별없는 희생을 막는 것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고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돈이 아니라 결국 용기와 열정이다. (p.97)


- 패스트 패선은 디자인, 원단 가공, 생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2주면 충분하다. 한마디로 가적 같은 시스템을 일궈낸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옷이 날마다 쏟아진다는 것은 바꿔 말해 누군가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 비밀은 하청에 있다. (p.113)


- 세계화는 우리에게 9,900원짜리 티셔츠를 선물하고, 기업에는 저렴한 노동력을 마음껏 취할 기회를 제공했지만, 의료 생산국에는 '바닥을 위한 경쟁'이나 다를 바 없다.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더 낮은 임금을 제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라벨이 말해주지 않는 진실이자 우리가 저렴한 옷을 살 수 있는 이유다. (p.118)


- 30년 전만 해도 원두 가격은 안정적이었다. 전 세계 커피 수출량을 관리하는 국제 커피 협약 덕분이었다. 이 기구는 각 국가의 생산량을 조절해 가격이 폭락하거나 폭등하지 않도록 미리 방지했다. ... 그러나 1989년, 미국의 반대로 국제 커피 협약이 폐지되자 원두 가격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이후 원두의 몸값은 증권 거래소에 맡겨졌다. 투기꾼들은 가뭄이나 비가 온다는 소문에 따라 돈을 이리저리 옮겼고, 이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의 투기 자금이 빠르게 들어가거나 빠져나가면서 원두 가격은 심하게 요동쳤다. 클리 몇 번으로 투기꾼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졌지만, 생산자들의 삶은 전보다 더 팍팍해졌다. 누군가의 기쁨이 다른 이에게는 슬픔이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커피 상품 투기는 생산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폭풍이 되어 돌아왔다. (p.140~141)


-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와 같은 다국적 담배 회사는 중간 유통 업체에 원하는 가격과 양을 정해 줍니다. 예를 들어 담뱃잎 1kg의 가격을 정해주는 거죠. 그러면 중간 업체는 이 가격에서 자신들의 몫을 공제합니다. 이렇게 남은 금액이 최종 담뱃잎 가격으로 결정됩니다. 생산자들은 그 이상을 받을 수 없는 거죠. 이미 가격이 결정되어 있어서 경재 자체가 무의미할뿐더러 생산자들은 가격 결정에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 (p.201)


- 그 결과 생산자들은 빚더미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담배 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비료와 농약을 산 뒤, 담뱃잎을 판 돈으로 대출을 갚는다. 하지만 본전도 건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빚은 눈동이처럼 불어났다. ... 그러나 담배 회사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책임 회피를 선택했다. 세계 보건기구가 말라위의 담배 생산을 제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회사들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세계 보건기구는 담배가 흡연자와 생산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말라위 담배 생산을 제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생산자의 건강을 논할 수 있을까요? 생산자들은 몸이 아파도 약을 살만한 돈이 없습니다. 담배 수확량을 지금보다 더 줄인다면, 말라위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겁니다.


담배 회사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담배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산이 늘어도 생산자들은 여전히 가난하기만 하고 아이들이 담배 농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p.202)


- 이 캠페인의 성과는 포스코 대우에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비윤리적인 기업에 경고장을 내밀었다는 데에 있다. 기업들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갈 만큼 성장한 사이, 시민사회도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물을 정도로 성숙해졌다. 이제는 시민의 수준이 기업의 수준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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