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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Jan 26. 2022

환경과 사회, 인류를 위한 경제학

책, <도넛 경제학>


도넛 경제학
(케이트 레이워스 / 학고재 / 초판 3쇄 / 2021.04.15)

- 환경과 사회, 인류를 위한 경제학 -


경제는 우리 삶을 끊임없이 좌지우지한다. 오죽하면 정치경제학이라는 말이 있을까. 이는 그만큼 경제가 사회의 큰 축이고, 정치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뜻한다. 경제 이론을 만들고, 실험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걸 경제학이라고 한다. 경제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이론을 내는 이는 경제학자이고, 이들은 정치, 기업, 시민들에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이들 경제학자가 가정하는 몇 가지 상식이 있다. 소비자는 현명하고, 가계는 노동과 자본을 공급하고,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고, 가계는 다시 이를 소비해 지출을 한다. 이렇게 재화와 서비스가 오고 가는 것이 '시장'이고, 이 시장이 성장하면 사람들의 삶도 성장하고 위로,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말하는 삶의 성장과 진보는 빈곤, 환경문제까지 해결되는 성장이다. 이 나아감의 지표가 되는 것이 GDP다. 때문에 국가 성장 지표로 GDP를 채택한다. 시장은 완벽해서 알아서 균형을 맞춰 나가니 국가의 개입은 없고, 시장에 모든 걸 맡겨야 한다. 그러면 시장이 문제를 해결한다.


틀린 말은 아닌 듯 보인다. 1950, 60년 대를 생각하고 지금 우리나라를 보자. 50, 60년 대 당시 우리나라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경제 원조에 의존하고, 지나가는 미군에게 Give me Chocolate을 외쳤다. 그들의 원조를 받아 경제 즉 GDP가 성장했다. 1960년 우리나라 명목상 GDP는 약 2500억 원이었지만, 2020년에는 1933조로 대폭 증가했다. 그 과정에서 극빈층은 상당수 줄었고, 살기 좋은 환경이 됐다. 하지만 끊임없이 성장하는 GDP는 다시금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냈는데, 경제적 환경적 불평등, 오염이 그것이다.


책, <도넛 경제학>은 그동안 맹신하던 경제학의 상식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환경과 사회, 인류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을 제안한다. 21세기에 인류가 추구해야 할 경제는 GDP로 대변되는 끊임없는 경제 성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환경이 번영하는 분배와 균형의 경제다.


우리 경제학 연구자들은 속아 넘어간 어미 새마냥 아무런 의심 없이 GDP 성장이라는 목표를 열심히 믿고 따르며, 경제 상장률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최신 이론을 경쟁적으로 쏟아 놓는다. GDP 성장의 첩경은 국민 경제에 신규 기술을 채택하는 것인가? 기계와 공장 등 고정 자본을 더 많이 축적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것인가? 모두 흥미로운 질문이긴 하다. 그러나 그전에 잠시나마 멈춰 서서 과연 GDP 성장이라는 게 항상 필요한지, 항상 바람직한지, 나아가 항상 가능한지는 결코 묻지 않는다. (p.49)


저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경제학 연구자들의 잘못된 태도를 비판하며, 실로 GDP 만을 추구하는 것이 나침반 없이 위로만 앞으로만 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아무런 목적지 없이, 목표 없이 앞으로만 쭉쭉 나가다 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와 앞만 바라봐서는 그 밑과 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보지 못한다. 발밑과 뒤통수에 눈이 달린 사람은 없다.


실제 발밑과 뒤통수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환경파괴와 해결되지 않은 빈곤, 양극화, 불평등이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데는 애초에 세팅된 경제학이 자기 파괴적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경제학자들이 가정하는 몇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는 시장 만능 주의고, 수요와 공급에 맞춰 가격이 결정되고, 재화와 서비스가 오고 간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빠진 것들이 있다. 아주 중요한 것들이었다.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료가 필요하다. 물, 나무, 바람, 공기, 전기가 필요하고,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광물이 필요하다. 코발트, 금, 콜탄 등 다양하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공공재다. 책에서는 이를 '코먼스'라고 부른다. 시장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코먼스를 무분별하게 가져다가 썼다. 마치 무한한 듯이 썼다. 생산된 물건은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 쓰이다가 버려졌다. 이 버려진 물건들은 환경에 악영향을 미쳤다. 처음엔 괜찮았을 수 있다. 아직 자원은 많았으니까. 이 자원은 환경에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채굴되고, 벌목되고, 사용되니 자원은 점점 고갈되어 갔고, 그덕에 문제가 발생했다.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는 근본적으로 지구라는 '원천'에 의존한다. 석유, 점토, 코발트, 구리처럼 유한한 자원을 추출할 뿐만 아니라 목재, 작물, 어류, 담수 등 재생 가능한 자원을 수확한다. 경제는 또 지구를 쓰레기 폐기장으로도 의지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강과 바다로 쓸려나가는 화학 비료, 폐플라스틱 등이 그 예다. 그런데 지구 자체는 일종의 폐쇄된 시스템이다. 이 행성으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물질도, 또 밖에서 들어오는 물질도 거의 없다. 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유입되지만, 물질의 재료는 내부에서 계속 순환할 뿐이다. (p.91)


무너진 균형은 계속해서 경고를 보냈다. 홍수와 가뭄, 허리케인,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했다. 또한 다른 문제도 있었다.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이 맞춰져야 한다. 수요가 많아지자 공급하려는 사람도 많아졌고, 그 덕에 가격 경쟁이 벌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생산해야 했고, 그 결과 인건비를 싸게, 자원을 싸게 공급받아 가격을 낮췄다. 그 결과 불평등과 불공정이 심화됐다.


일반 균형 경제학의 세계에서 불평등이라는 건 그저 주변적인 관심사일 뿐이다. 이론에 따르면 시장이란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돌려주기에 아주 효율적인 기제이므로 넓은 의미로 볼 때 재능, 선호, 타고난 자원 등이 비슷한 이들은 결국 동등한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차이가 생긴다면 이는 노력 차이에 기인한 것이며, 또 그런 불평등은 뒤처진 이들이 더 많이 헌신하고 노력하도록 자극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는 본질적으로 불균형하고 또 강화시키는 되먹임 회로가 실로 강력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부유한 자들에겐 더 부유해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작동해서, 재능과 능력 등에서 엇비슷한 사람들을 갈라 소득 분배의 반대쪽 극단으로 팽개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p.176~177)


앞선 경제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시장은 환경과 사회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심화되고 있다. 지구는 무한한 자원(사실은 무한하지 않다)의 보고인 동시에, 쓰레기장이 됐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불평등과 불공정에 시달려야 했다.


저자는 이런 경제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신의 경제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대표적인 정크 푸드인 도넛과 닮았다. 모양은 이렇다.



이 도넛은 정확히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21세기 인류의 길잡이가 되어줄, 근본적으로 새로운 나침반이다. 이는 우리가 의지하는 살아 있는 세계를 보호하면서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미래를 지향한다. 이 도넛의 사회적 기초에 못 미치면 인간이 안녕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식량, 교육, 주거 등 필수 요소가 결핍된 이들이 매일매일 직면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생태적 한계를 넘어가면 기후 변화, 해양 산성화, 화학적 오염 등 지구의 생명 유지 시스템이 압력을 받는다. 하지만 두 경제 사이에는 도넛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최적의 지점이 있다. 생태적으로 안전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공간이다. 21세기의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인류를 이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으로 데리고 가는 것, 실로 미증유의 과제다. (p.58~59)


안쪽 고리는 사회적 기초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안으로 떨어지면 기아와 문맹 같은 심각한 인간성 박탈 사태가 벌어진다. 그리고 바깥쪽 고리는 생태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밖으로 뛰쳐나가면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 손실 등 치명적인 환경 위기가 닥친다. 두 고리 사이에 도넛이 있으니, 이 공간이야말로 지구가 베푸는 한계 안에서 만인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영역이다. (p.19)


케이트 레이워스가 주장하는 도넛에는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가 있다. 이 두 사이에 빈 공간이 인류가 번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회적 기초의 한계를 넘어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면, 빈곤과 불평등 등등이 발생하고, 생태적 한계를 벗어나면 대기오염, 다양성 손실, 기후변화 등등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의 경제학 모델은 생태적 한계와 사회적 기초를 벗어나면서 성장한 모델이다. 때문에 이를 해결하고 균형 잡힌 분배를 해야 한다. 또한 그러면서 경제의 성장이 아닌 인류의 번영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에 생각하던 앞으로만 위로만 올라가던 경제 성장의 개념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경제는 무한히 성장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성장은 둔화되기 마련이다. 끝없는 성장이란 허구다. 다만 앞서 말했듯 경제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서 정치에서도 끝없는 성장을 말하고, 마치 이것이 가능한 것처럼 공약을 펼친다. 때문에 기존에 있던 규제를 철폐하고, 자기 파괴적으로 몰아붙인다. 그것의 결과가 우리가 잘 아는 2008년 금융위기다.


환경을 파괴하고, 양극화와 불평등을 만드는 경제 성장이 아니라, 분배되고 균형을 맞춰 인류의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21세기의 과제다.


앞으로 또 위로'는 진보를 나타내는 아주 친숙한 메타포지만 우리가 아는 경제에서의 진보는 우리를 위험한 영역으로 끌고 온 주범이기도 하다. (중략) 경제학은 60년이 넘도록 GDP 성장이야말로 진보를 나타내기 충분한 대리 지표이며 이는 계속 상승하는 곡선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21세기가 요구하는 진보는 그 모습이나 방향이 전혀 다르다. 인류 역사의 현시점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보를 가장 잘 묘사하는 움직임은 '역동적 균형 상태로의 진입'이다. 도넛의 부족한 부분과 넘치는 부분을 모두 없애고 우리 모두 그 도넛의 안전하고 공정한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메타포로부터 근본적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요구다. '앞으로 또 위로가 좋다'에서 '균형이 좋다'로 말이다. 그리고 경제적 진보와 의미를 GDP의 무한 성장이 아니라 도넛 안에서의 균형 잡힌 삶으로 대체하려고 촉구한다. (p.67~68)


저자는 도넛의 안전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결정하는 요소 다섯 가지를 '인구, 분배, 기술, 열망, 거버넌스'다. 인구가 많아질수록 요구 자체가 커지기 때문에, 적정 인구를 맞춰야 한다. 또한 분배를 통해 인구가 필요로 하는 자원과 소득, 식량을 분배해야 한다. 아울러 사람들은 좋은 삶이라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좋은 삶을 구성하는 요소는 더 얇은 노트북과 최신 스마트폰, 이국적인 휴가 등이다.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이 지구 한계에 집단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이러한 걸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통해 적정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결정이 잘 이루어지고, 협력이 잘 이루어지도록 투명한 거버넌스가 확립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한 가지 사례만 말해보자. 경제에 가장 깊게 관여하는 것은 아무래도 기업이니, 기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자.



현재의 제품 생산과 폐기는 자원을 취하고, 상품을 만들고, 사용하고, 버리는 형태다. 최선 기능의 제품을 만들고, 한동안 사용하다 빨리 버려져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래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한 도넛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각종 금속과 합성 섬유 등 기술적 영양소로 만들어진 제품들은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으므로 수리, 재사용, 재단장(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재활용으로 복귀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중략) 순환 경제에서는 전화기도 쉽게 수집하고 분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러면 폐품을 수리해 다시 팔 수 있고, 그 모든 부품을 분배해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원리를 모든 산업으로 확장한다면 20세기에는 산업 폐기물이던 것이 21세기에는 소중한 원자재가 되는 광경이 눈앞에 그려질 것이다. (p.258)


도넛 경제를 위해서는 자원을 취하고 만들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한 제품을 다시 재활용하고, 그 안에서 쓸 수 있는 부품을 가져와 다른 제품과 결합해 사용해야 한다. 다 쓴 제품을 폐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품에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원료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버려지는 환경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제품 수명주기를 끌어올려야 한다.


지식 코먼스는 왜 중요한가? OSCE(오픈 소스 순환 경제 운동) 진영에서 지적하는 바로는, 기업들이 각자 자기네 공장 울타리 안에서 기를 쓰는 것만으로는 순환적 생산의 재생 잠재성을 전부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비논리적이고 순환 경제를 실현하는 기초가 될 수도 없다. (중략) '제조법을 오픈 소스로 만들어야만 누구든 수명이 다한 자기 제품을 재활용할 방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조법을 공개하면 누구나 필요에 맞게 제품을 개선, 변형할 수 있으므로 '이는 곧 세계 곳곳의 수리점, 주문 제작자, 혁신 설계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 개발 팀을 거느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p.266~267)


이런 재생적인 경제 설계를 위해서는 기업의 자사의 소스를 오픈해야 한다. 어느 한 기업만 재순환 경제를 해서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제조법을 오픈해 누구나 제품을 다 사용하면 다른 제품에서 부품을 뜯어다가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기업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나아가야 할 길이 아주 멀고도 험할 것 같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 보자.


다수 기업이 스마트폰을 생산하지만 대표적인 두 기업은 삼성전자와 애플이다. 두 기업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넛 경제학의 제안 대로라면 삼성전자와 애플은 자사가 만드는 스마트폰 제조 과정과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 디자인 방법 등등을 모두 오픈해야 한다. 그리고 삼성전자와 애플이 만드는 갤럭시와 아이폰의 제품이 서로 호환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이 즉슨 제품의 크기, 기능 등을 다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지금은 어떤가. 갤럭시와 아이폰은 충전 단자부터 맞지 않는다.


게다가 기업들이 과연 이 모든 걸 오픈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와 애플이 하는 경쟁 중 하나는 특허권 전쟁이다. 비단 삼성전자와 애플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대기업이 이 특허권을 가지고 소송을 한다. 오픈소스를 한다는 말은 결국 이 특허권까지도 오픈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이다. 기업에게 있어서 특허권은 자사의 이익과 직결된다. 특허권을 내놓으라는 말은 특허권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얻는 수익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지금 당장 기업에게 이를 설득할 수 있을까? 험난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픈소스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스마트폰 제조에 있어서는 실로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 들어가는 광물만 20가지 정도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광물이 분쟁광물이거나 아동노동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만들며 채굴된다는 점이다. 오픈 소스라는 말은 즉 스마트폰을 제조할 때 들어간 자원을 어디서 채굴했는지까지 공개한다는 말이다. 만약 기업이 이 출처를 투명하고 명확하게 공개할 수 있다면, 비윤리적으로 만들어진 광물의 사용이 줄어들 것이고, 윤리적인 과정으로 거친 소비재를 찾게 될 것이다.


실제 네덜란드의 사회적 기업인 <페어폰 FairPhone>은 스마트폰을 만들 때 어디서 자원을 채굴하는지 공개하고 있다. 또한 자원 채취에 있어서 아동노동이 없고, 인부들에게 공정한 임금을 제공하고 있다. 만약 삼성전자와 애플이 페어폰의 자료를 참고해 똑같이 사용한다면 도넛 경제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기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학자들이 도넛 경제학의 모델을 공부하고, 업그레이드하고, 발표해야 한다. 때문에 저자도 마지가 에필로그를 <이제는 모두가 경제학자다>라고 한 게 아닐까 싶다. 앞서 말했듯 재생적인 경제 설계를 위해서는 '성장'이라는 메타포에 꽂힌 생각을 뒤집어야 하고, 이 생각 자체를 다시 그려야 한다. 21세기 경제학의 역할은 성장이라는 성채를 무너뜨리고, 균형과 번영이라는 새로운 성채를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경제의 주체로서 기업의 역할은 아마 계속 중요해질 것이다. 기업은 경제를 성장시킨 주역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환경과 사회를 파괴한 주범이기도 하다. 최근 ESG가 대두되면서 기업에게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책임을 묻는 모습이 많이 보이고 있다. 그 기저에 흐르는 전제는 '환경과 사회를 파괴하는 경영은 더 이상 기업과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번영하게 만들지 않는다.'이다.


도넛 경제학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환경과 사회,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경제 이론의 토대가 되어주는 책 같다. 지금이 경제의 방향성과 나아갈 방향의 지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참고

우리나라의 도넛 상황 사회적 기초에선 그나마 안정적이지만, 환경 생태계는 그 한계를 넘어간지 오래다
도넛을 보고 핵 표시가 떠오른 건 나뿐인가? 환경과 사회에 피해가 계속되면 그 피해가 핵처럼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밑줄

- 경제학이야말로 모든 공공 정책의 모국어일 뿐 아니라 공공 생활의 언어이며, 사회를 형성하는 세계관과 사고방식이다. (p.14)


- 안쪽 고리는 사회적 기초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안으로 떨어지면 기아와 문맹 같은 심각한 인간성 박탈 사태가 벌어진다. 그리고 바깥쪽 고리는 생태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밖으로 뛰쳐나가면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 손실 등 치명적인 환경 위기가 닥친다. 두 고리 사이에 도넛이 있으니, 이 공간이야말로 지구가 베푸는 한계 안에서 만인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영역이다. (p.19)


- 우리 경제학 연구자들은 속아 넘어간 어미 새마냥 아무런 의심 없이 GDP 성장이라는 목표를 열심히 믿고 따르며, 경제 상장률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최신 이론을 경쟁적으로 쏟아 놓는다. GDP 성장의 첩경은 국민 경제에 신규 기술을 채택하는 것인가? 기계와 공장 등 고정 자본을 더 많이 축적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것인가? 모두 흥미로운 질문이긴 하다. 그러나 그전에 잠시나마 멈춰 서서 과연 GDP 성장이라는 게 항상 필요한지, 항상 바람직한지, 나아가 항상 가능한지는 결코 묻지 않는다. (p.49)


- 경제 성장은 어느새 수많은 사회적, 환경적, 정치적 질병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그려졌다. 공공 부채와 무역 불균형의 해결책도 경제 성장이요, 국가 안보의 핵심도 경제 성장이요, 계급투쟁의 뇌관을 제거하는 수단도 경제 성장이요, 정치적으로 예민한 재분배라는 쟁점을 피하면서도 빈곤 문제에 대처하는 길 또한 경제 성장이라는 것이었다. (p.51)


- 2008년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전 세계 경제 사상가 스물다섯 명을 초빙했다. 이들은 센과 그의 동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인도하에 현재 가이드라인 정책 입안의 경제적, 사회적 진보 척도를 가치 평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GDP를 위시해 사용 중인 여러 지표의 상태를 평가한 뒤 이들은 단호하게 결론을 내린다. '우리 사회와 경제를 인도하고자 하는 이들은 믿을 만한 나침반도 없이 길을 잡는 비행기 조종사 같다.'(P.57~58)


- 이 도넛은 정확히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21세기 인류의 길잡이가 되어줄, 근본적으로 새로운 나침반이다. 이는 우리가 의지하는 살아 있는 세계를 보호하면서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미래를 지향한다. 이 도넛의 사회적 기초에 못 미치면 인간이 안녕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식량, 교육, 주거 등 필수 요소가 결핍된 이들이 매일매일 직면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생태적 한계를 넘어가면 기후 변화, 해양 산성화, 화학적 오염 등 지구의 생명 유지 시스템이 압력을 받는다. 하지만 두 경제 사이에는 도넛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최적의 지점이 있다. 생태적으로 안전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공간이다. 21세기의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인류를 이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으로 데리고 가는 것, 실로 미증유의 과제다. (p.58~59)


- 도넛을 가로 질러 상호 연관 관계에 주목한다면 인간의 번영은 곧 지구의 번영에 의존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모두를 먹일 식량을 충분히 얻기 위해서는 비옥한 토양, 충분한 담수, 다양한 작물, 안정적인 기후 등이 필요하다. 깨끗하고 안전한 식수를 확보하려면 지역과 전 세계를 연결하는 물 순환으로 강수량을 풍부하게 발생시켜 강과 대수층을 계속 채워야만 한다. 공기를 깨끗하게 하려면 폐를 망가뜨리는 미세 먼지 배출을 중단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 놓고 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려면 오존층으로 자외선을 걸러내야 하며, 온실 효과로 태양의 열기가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p.65~66)


- '앞으로 또 위로'는 진보를 나타내는 아주 친숙한 메타포지만 우리가 아는 경제에서의 진보는 우리를 위험한 영역으로 끌고 온 주범이기도 하다. (중략) 경제학은 60년이 넘도록 GDP 성장이야말로 진보를 나타내기 충분한 대리 지표이며 이는 계속 상승하는 곡선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21세기가 요구하는 진보는 그 모습이나 방향이 전혀 다르다. 인류 역사의 현시점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보를 가장 잘 묘사하는 움직임은 '역동적 균형 상태로의 진입'이다. 도넛의 부족한 부분과 넘치는 부분을 모두 없애고 우리 모두 그 도넛의 안전하고 공정한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메타포로부터 근본적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요구다. '앞으로 또 위로가 좋다'에서 '균형이 좋다'로 말이다. 그리고 경제적 진보와 의미를 GDP의 무한 성장이 아니라 도넛 안에서의 균형 잡힌 삶으로 대체하려고 촉구한다. (p.67~68)


- 우리가 실제로 그 안전하고도 정의로운 공간으로 옮겨갈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분명한 핵심 요소를 다섯 개 꼽아보자. 인구, 분배, 열망, 기술, 거버넌스다.(p.72)


- 경제는 근본적으로 지구라는 '원천'에 의존한다. 석유, 점토, 코발트, 구리처럼 유한한 자원을 추출할 뿐만 아니라 목재, 작물, 어류, 담수 등 재생 가능한 자원을 수확한다. 경제는 또 지구를 쓰레기 폐기장으로도 의지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강과 바다로 쓸려나가는 화학 비료, 폐플라스틱 등이 그 예다. 그런데 지구 자체는 일종의 폐쇄된 시스템이다. 이 행성으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물질도, 또 밖에서 들어오는 물질도 거의 없다. 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유입되지만, 물질의 재료는 내부에서 계속 순환할 뿐이다. (p.91)


- 일반 균형 경제학의 세계에서 불평등이라는 건 그저 주변적인 관심사일 뿐이다. 이론에 따르면 시장이란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돌려주기에 아주 효율적인 기제이므로 넓은 의미로 볼 때 재능, 선호, 타고난 자원 등이 비슷한 이들은 결국 동등한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차이가 생긴다면 이는 노력 차이에 기인한 것이며, 또 그런 불평등은 뒤처진 이들이 더 많이 헌신하고 노력하도록 자극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는 본질적으로 불균형하고 또 강화시키는 되먹임 회로가 실로 강력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부유한 자들에겐 더 부유해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작동해서, 재능과 능력 등에서 엇비슷한 사람들을 갈라 소득 분배의 반대쪽 극단으로 팽개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p.176~177)


- 우리가 번영하는 경제를 만들어내는 데 지침으로 삼을 만한 자연계의 원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답은 두 가지다. 다양성과 분배.(p.208)


- 주주자본주의가 발흥하면서 주주를 최우선으로 모시는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기업의 으뜸가는 의무는 주주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역설이 도사리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꼬박꼬박 출근하는 직원들은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다. 생산 비용은 최소화해야 하며 투입량은 채산성에 맞춰 해고되거나 고용된다. 반면 주주들은 회사에 발걸음조차 하지 않을 테지만 기업의 최고 내부자로 대우받는다. 이들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그 협소한 이해관계가 기업 경영에서는 무엇보다 우선한다. 그러니 이런 환경에서는 일반 노동자들이 제 몫을 계속 빼앗기는 게 당연하다. (p.223)


- 기업이 만들어 낸 가치를 분배하는 데는 두 가지 설계 원칙이 있다. 성원들의 소속감과 이해관계자의 자금 조달에 근거하는 것이다. 두 원칙을 결합시키면 현재의 지배적인 소유자 모델은 전복된다고 한다. 노동자가 더 이상 소모품이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궁극적인 내부자가 되고 기업에 튼튼히 뿌리박은 존재가 된다고 상상해보라. 또 이런 기업이 외부 투자자에게 주식을 파는 대신 채권을 발행하고, 투자자에게 소유권 조각이 아니라 공정한 고정 수익을 약속한다고 상상해보라. 아니, 상상이 아니다. 이런 기업이 실제로 존재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니까. (p.224)


- 우리 도넛의 지구적인 경계선을 감안하면 생명 세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곧 만인의 공통된 이익이 된다. 깨끗한 공기와 깨끗한 물, 안정된 기후, 번성하는 생물 다양성 등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공동 소유' 자원이다. (p.236)


- 각종 금속과 합성 섬유 등 기술적 영양소로 만들어진 제품들은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으므로 수리, 재사용, 재단장(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재활용으로 복귀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중략) 순환 경제에서는 전화기도 쉽게 수집하고 분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러면 폐품을 수리해 다시 팔 수 있고, 그 모든 부품을 분배해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원리를 모든 산업으로 확장한다면 20세기에는 산업 폐기물이던 것이 21세기에는 소중한 원자재가 되는 광경이 눈앞에 그려질 것이다. (p.258)


- 중요한 건 18세기에 지은 건물이든, 최신형 스마트폰이든, 앞으로는 주변 모든 사물을 재료와 에너지를 저장한 배터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저장된 가치를 보유하고 또 재창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p.258)


- 지식 코먼스는 왜 중요한가? OSCE(오픈 소스 순환 경제 운동) 진영에서 지적하는 바로는, 기업들이 각자 자기네 공장 울타리 안에서 기를 쓰는 것만으로는 순환적 생산의 재생 잠재성을 전부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비논리적이고 순환 경제를 실현하는 기초가 될 수도 없다. (중략) '제조법을 오픈 소스로 만들어야만 누구든 수명이 다한 자기 제품을 재활용할 방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조법을 공개하면 누구나 필요에 맞게 제품을 개선, 변형할 수 있으므로 '이는 곧 세계 곳곳의 수리점, 주문 제작자, 혁신 설계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 개발 팀을 거느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p.266~267)


- 기업 내규에 재생적 경제에 대한 책임과 약속을 명문화하고 이를 기업 지배 구조에도 구현한다면 시간이 지나 경영진이 바뀐다 해도 그 기업의 목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뜻밖에 임무가 변경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본래 목적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오늘날 어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깊이 있는 행동은 그 기업 내규나 정관을 다시 작성해 정체성을 '삶의 목적'에 비춰 재규정하고, 또 재생과 분배를 근거로 설계해 운영 원칙으로 삼는 것이다. (p.27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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