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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Mar 14. 2022

소리를 뺏긴 봄

책, <침묵의 봄>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에코리브르/ 초판 7쇄/ 2003.11.20)

- 소리를 뺏긴 봄 -


새벽에 일어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새벽을 좋아하는 이유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하루가 길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만큼, 저녁이 오는 시간도 늦고, 충실하게 낮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삷에서 햇빛이 무엇보다 중요한 나로서는 햇빛을 듬뿍 받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둘째, 시끄러운 생활에서 한발짝 물러나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람들의 아침이 시작하고, 시끄러운 소리들이 깨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도 조용하게 있을 수 없다. 깊은 밤이나, 이른 새벽 시간이 아니면 조용함은 사치다. 특히 도시에서는 더욱더.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서서 운동장을 뛰어가면 이내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일찍 일어난 사람들의 소리도 있지만, 일찍 일어난 새가 우는 소리다. 짹짹짹 우는 소리를 들으면 하루가 시작됐다는 걸 깨닫는다.


책, <침묵의 봄>은 인간의 화확용품 사용으로 인해 소리를 빼앗긴 봄의 이야기다. 인간이 잡초를 죽이고, 해충을 박멸한다고 숲과 밭, 논, 나무, 집아 곳곳에 뿌린 DDT와 살충제가 어떤 효과를 불러왔는지를 다룬다. 1960년대에 나온 책이다. 환경 부분에서 현대판 고전으로 불린다.


책은 다양한 종류의 화학물질을 다룬다. 그 종류가 다양해서 다 다룰 수는 없다. 확실한 건 DDT와 살충제는 절대 인간이 의도한 것만 죽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인간이 인위적으로 죽이는 자연 생태계가 돌고돌아 인간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눈에 보이는 하나의 해충은 사실 자연계에서 담당한 역할이 있다. 누군가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다른 해충을 막기도 한다. 해충을 먹는 새는 어떨까. 새들은 여러 종류의 곤충을 먹는데 이 곤충들은 인간의 생활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새들은 그들을 먹으며 인간에게 이로운 작용을 한다. 그런데 해충을 죽인다는 목적으로 살충제를 마구 뿌리게 되면, 이는 결국 해충이 아닌 곤충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곤충 속에 쌓인 살충제 성분은 새에게 먹혀 새로 옮겨지고, 새가 곧 죽는다. 새의 부재는 자연 생태계의 연결 고리가 사라진 것이고, 그 시스템 안에서 이득을 보던 인간에게 악영향을 준다.


어느덧 고전 반열에 오른 이 책을 겨우내 읽으며,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주 바로 다음 단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짚신벌레 몇 단계 위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자신이 사는 환경을 파괴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었다.(p.344)


인간 역시 자연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다. 절대로 우월하지 않다. 이 점을 깨닫고,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계속해서 공부해야하는 이유다.


밑줄

- 잔류 화학물질은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서도 발견된다. 공식적으로 아무런 해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체스터 비티 연구소의 보일랜드 교수에 따르면 발암물질에 안전수치란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안전수치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p.23)


- 밭에 방사능물질을 뿌리자고 제안하는 사람은 없지만 체스터 비티 연구소의 알렉산더 박사는, 사람들이 이와 흡사한 결과를 초래하는 돌연변이 유도 화학물질 사용에 있어서는 별로 주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미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 많은 화학물질이 들어있고 인간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 오염물질도 함유되어 있다.(p.23)


- 생태학은 자원의 최적 이용뿐아니라 최적 보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원의 범주에 식량이나 광물 등 물질적 자원뿐 아니라 아름다운 경치, 고즈넉함, 미적 가치, 흥미 등 향유할 수 있는 무형 자원들을 포함시켜야 하며 식량 생산을 통한 이익 창출과 더불어 인간의 건강증진, 획기적 보존, 레크리에이션 창출 같은 다른 이익들과도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p.30)


- 해충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열의는 지극히 양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사실 해충을 박멸하겠다는 생각은 반생태적인 사고이다. 엄청난 규모의 해충을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리 수가 많지 않고 해를 끼치지도 않는 곤충들을 없애기는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p.30)


- 다양한 종류를 자랑하며 환경적응력이 탁월한 곤충들은 인간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지구상에 살고 있었다. 인간의 출현 이후 식량을 놓고 경쟁을 벌이거나 질병을 옮기는 등 인간의 행복에 갈등을 불러온 것은 50만 종의 곤충 중 아주 적은 비율에 지나지 않는다.(p.41)


- 원시적 농업 시대에 곤충은 농부들에게 별로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곤충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농업이 본격화되고 대규모 농지에 단일 작물 재배를 선호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이런 방식으로 농사를 짓게 되면 특정 곤충 개채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단일 작물 경작은 자연의 기본적 원칙이라기보다는 기술자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자연은 자연계에 다양성을 선사했지만 인간은 이를 단순화하는 데 열성을 보이고 있다. 특정 영역 내의 생물에 대해 자연이 행사하는 내재적 견제와 균형 체계를 흐트러뜨리려 애쓰는 것이다. 자연의 견제로 각각의 생물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넓이의 주거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일 작물을 경작할 경우(예를 들어 밀과 다른 작물을 섞어 키우는 대신 밀만 재배하는 경우)에는 다른 작물 때문에 널리 퍼져나갈 수 없던 해충이 급증하게 마련이다.(p.41~42)


- 제초제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경박하게 권위를 행사했고, 제초제 사용에 관한 장기적 인식과 그 확실치 않은 효과를 언급하면 '비관론자들의 근거 없는 상상'이라고 무시하곤 했다. 농약 살포기가 농기구를 대신하는 세상에서 '농업기술자'들은 부주의하게 '화학적 영농'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수천 군데 마을의 촌로들은 길가의 '잡목'을 싼값에 없애준다는 살충제 세일즈맨과 열성적인 방제업자들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비용이 잔디 깍는 값도다도 싸다는 말 때문이다. 아마도 공식적인 회계장부에는 그 경제적인 비용이 깔끔한 수치로 표시될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비용은 그저 돈으로만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고려할 가치가 있는 숨은 비용도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화학물질을 대규모로 살포하면 주변 환경은 물론 이 환경에 의지하는 생물들의 건강에 심각한 손상을 주며 따라서 그 금전적 비용은 훨씬 더 비싸질 것이다.(p.100~101)


- 목축업자에게 초원을 찾아다닐 권리가 있고 나무꾼에게는 벌목을 할 권리가 있듯, 이 노인에겐 들꽃을 즐기는 것이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권리이기도 하다(인도적이고 지각 있는 법조인에게 물어보라). 야생의 자연 생태계가 지닌 심미적 가치는 산기슭에 묻힌 구리나 금광맥 혹은 우거진 숲처럼 우리가 물려받아 보호해야 하는 유산이기도 하다.(p.104~105)


-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마구 없애버리는 식물들은 사실 건강한 토양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흔히 '잡초'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런 자연적 식물 군락은 토양 상태를 나타내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화학제초제를 사용하면 이런 유용한 기능이 상실되게 마련이다. 모든 문제를 제초제를 뿌려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식생 보존의 필요성을 간과해버린다. 인간의 행위가 자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측정하는 기준으로 삼으려면 이런 식물들이 필요하다. 또 곤충과 다른 유기체가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서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식물의 존재는 필수적이다.(p.112)


- 살충제는 대부분 비선택적이다. 없애려는 특정한 종만을 제거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독성이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살충제와 접촉하는 모든 생물, 가족들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 농부가 키우는 가축, 들판에서 뛰노는 토끼, 하늘 높이 날아가는 종달새가 모두 위험에 빠진다. 이런 동물은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사실 동물들과 그 주변 환경의 존재로 인해 인간의 삶이 더욱 즐거워진다. 그러나 인간은 그 보답으로 갑작스럽고 무시무시한 죽음을 선사한다.(p.132)


- 봄을 알리는 철새들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때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가득 찼던 아침을 맞는 것은 어색한 고요함뿐이다. 노래하던 새들은 갑작스럽게 사라졌고, 그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던 화려한 생기와 아름다움, 감흥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너무도 빨리 사라져버렸다. 아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마을은 그런 사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p.134)


- 종의 다양성이 중시되어야 전염병으로 인해 나무들을 잃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동식물 집단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열쇠는 영국의 생태학자인 찰스 엘텐이 말한 '종 다양성 유지'에 있다.(p.151)


-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며 잔물결이 생기듯이, 유독물질의 연쇄 작용을 일으켜 죽음의 물결을 퍼뜨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한쪽 접시에는 딱정벌레들이 갉아먹는 나뭇잎을 올려놓고, 다른 쪽 접시에는 유독성 살충제가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몽둥이에 스러져간 새들의 잔해와 다양한 빛깔의 가련한 깃털들을 올려놓은 채 저울질한 사람은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하늘을 나는 새들의 부드러운 날개가 모두 사라져버린 황폐한 세상이 되더라도 벌레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 사람이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그가 결정을 내릴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우리가 잠시 동안 권력을 맡긴 관리자들이다. 이들은 아름다움과 자연의 질서가 깊고도 엄연한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 소홀한 틈을 타서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p.162)


- 근해 어업과 원양 어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천연자원을 공급받는다. 이러한 자원들이 물 속으로 흘러든 화학약품 때문에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보다 강력한 독성을 지닌 약제를 만드는 데 매년 지출하는 비용의 아주 일부분만이라도 건설적인 연구로 전환할 수 있다면, 이런 화학물질들을 보다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고 또 그런 독극물이 수로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쯤이면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하게 될 것인가?(p.189)


- 만약 이 송아지들이 우유를 통해 유독물질에 중독되었다면 그 지역 착유장에서 수집된 우유를 마시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p.206)


- 현재 사용되는 살충제 관련 기구의 수량을 고려한다면, 또 적절한 경고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떠올린다면 공공식수가 오염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가?(p.214)


- '잔류 허용량 기준치' 제정은 결국 농부와 가공업자들에게 생산비용 절감이라는 혜택을 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독성 화학물질 사용을 허락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동시에 시민들이 섭취하는 화학물질이 위험 수준이 아님을 확산시켜주는 정책기관을 만들고는 그 유지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려는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 사용되는 농약의 양과 독성 정도를 고려할 때, 이런 임무를 수행하자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데 의회의 국회의원들 중 그런 비용 지출을 승인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은 없다. 결국 운이 지독히도 없는 시민들은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기관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다.(p.220~221)


- 오늘날 대부분의 발암물질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바로 사람이다. 그러므로 만일 원하기만 한다면 그 위험물질의 상당수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우리 환경에 등장하는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좀더 편하고 손쉬운 생활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화학물질의 제조와 판매를 경제와 산업의 한 부분으로 편입하는 과정을 통해서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화학적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일은 비현실적인 목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성분이 아니다. 이런 물질들을 제거하면 전체 발암물질의 양은 훨씬 줄어들고 그 결과 네 명 중 한 명에게서 암이 발병할 가능성 역시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음식과 식수와 대기를 오염시키는 발암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음식과 식수, 공기 속의 위험물질은 수년간 지속적으로 계속 흡수되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요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p.279)


- 자연의 균형이란 유동적이고 계속 변화하며 조절과 조정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인간 역시 자연이 이루는 균형의 일부분이다. 가끔씩 인간이 이런 상태를 자의적으로 바꾸곤 한다. 그 결과 인간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문제가 일어난다.(p.282)


- 오늘날 곤충방제 프로그램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첫번째는 정말 효과적인 곤충방제는 자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연계에는 고유의 '환경적 저항'이 존재함으로써 특정 종마다 개체수가 일정하게 조절되는데, 이는 지상에 첫 생명체가 등장한 이후부터 계속 그래왔다. 먹이, 기상과 기후 조건, 경쟁 상대나 포식 상대 등이 모두 '환경적 저항'의 중요한 요소이다. '이 세상이 곤충으로 뒤덮이지 않게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곤충들이 서로 싸우도록 만드는 것이다'라고 곤충학자인 로버트 멧칼프(Robert Metecalf)는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학약품은 인간의 친구이건 적이건 구분하지 않고 모든 곤충을 없애버린다.(p.282)


- 문제는 우리가 천적 역할을 하는 동물은 모두 죽인 후에야 비로소 그 동물이 맡고 있던 조절 기능을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숲을 지나 가면서도 그 아름다움과 경이를 모르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낯설고 때로 무서울 정도인 생명의 힘을 잘 알지 못한다. 포식곤충과 기생곤충의 활동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고 있다. 정원의 덤불 숲에서 이상하게 생긴 곤충의 사나운 모습을 발견한 적도 있을테도 사마귀가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다는 사실 정도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한밤에 정원에 나가 손전등을 비추고 여기저기서 사마귀가 은밀히 먹이를 노리며 기어가는 것을 보면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잡아먹는 자와 잡아먹히는 자 사이에 드라마가 펼쳐진다. 자연이 스스로를 제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냉혹하고 집요한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p.284)


- 이런 생존 방식과 인간의 본질적인 요구로 인해, 곤충들은 인간을 보호하며 자연의 균형을 유지해준 동맹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우리를 집어삼킬 적을 막아내는 데 있어 큰 도움을 주는 곤충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큰 위험을 불러오는 일이다.(p.287)


- 살충제의 수와 다양성, 그 파괴성이 매년 실질적으로 증가하면서 환경 저항은 점점 더 감소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질병을 옮기고 농작물을 해치는 곤충의 개체수는 유래 없을 만큼 심각하게 증가했다.(p.287)


- 새롭고 상상력 풍부하며 창의적인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들, 그 생명체의 밀고 밀리는 관계, 전진과 후퇴이다. 생물들이 지닌 힘을 고려하고 그 생명력을 호의적인 방향으로 인도해 갈 때, 곤충과 인간이 납득할 만한 화해를 우리게 될 것이다. 생태계는 한편으로 너무나 연약해 쉽게 파괴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고 회복력이 강해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역습해 온다. 아무런 고결한 목적도 없고 겸손하지도 않은 화학방제 책임자들은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자연의 위대한 능력을 계속 무시해왔다.(p.333~334)


- 어느덧 고전 반열에 오른 이 책을 겨우내 읽으며,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주 바로 다음 단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짚신벌레 몇 단계 위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자신이 사는 환경을 파괴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었다.(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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