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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May 17. 2022

나는 배달앱을 쓰지 않는다

책,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박정훈/ 빨간소금/ 1판 2쇄/ 2020.11.30)

- 나는 배달앱을 쓰지 않는다 -


개인적으로 쓰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 플랫폼이 있다. 우선 남양유업 제품을 사지 않는다. 오너 일가가 일으킨 문제가 너무 많아서다. 유니클로 제품을 사지 않으며, 대한항공도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제외하곤 이용해 보지 않았다. 1년 넘게 여행을 다녔는데, 국내 대표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은 건 조금 특이하다. 유니클로는 경영진의 망언이 컸고, 무엇보다 스파 브랜드이기 때문에 환경에 유해하다고 생각해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라면 이용을 하겠지만, 굳이 이용하지 않아도 될 때는 쓰지 않는다.


그 외 대표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플랫폼 서비스는 배달앱과 쿠팡이다. 쿠팡은 일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근로자 여건 문제가 크다. 물론 한 번도 안 쓴 건 아니다. 쿠팡은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써봤다. 당장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쿠팡에서 밖에 팔지 않았고, 더군다나 당일배송, 새벽 배송으로 바로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개인적으로 쓰지 않은 플랫폼 서비스가 있다. 바로 배달앱이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우버이츠, 현재는 서비스를 종료한 배달통까지. 한 번도 개인적으로 이용해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스마트폰을 썼지만, 지금까지 깔아본 적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달앱이 일으키는 환경, 사회적 문제가 크다고 생각해서다. 물론, 친구들과 놀 때, 회사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배달앱을 이용한다면 말리지 않는다. 나도 주문을 넣는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쓰는 건 똑같지 않냐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가식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배달앱을 사용하지 않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저항이라는 점이다. 소비자가 가진 최대 무기는 문제가 있는 플랫폼이나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책,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는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인 배달앱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자, 본인이 만났던 배달 라이더들의 이야기다. 삶을 통해 마주한 배달앱의 문제, 겉으로 홍보하는 모습과 실제 속살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현재 '라이더유니온'이라는 배달 노동자 노동조합에서 활동 중이다. 라이더유니온을 만들었고, 가장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다. 때문에 라이더 입장에서 겪은 배달앱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잘 말하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자칫 단순 노조 입장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이 왜 문제인지 논리적으로 쉽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책 제목에서부터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국내 배달앱 중 가장 이용자 수가 많은 건 '배달의 민족'이다. 배달의 민족 앱을 통해 주문을 하고 기다리면 라이더가 와서 물건을 건네준다. 그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배달의 민족이 배달까지 해주는 걸로 오해한다. 그 오해를 부추기는 건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공복 주의' 글씨가 새겨진 민트색 오토바이를 모는 배달 라이더들이다. 그들을 보면 그들이 배달의 민족에 소속된 것처럼 보인다. 배달의 민족 앱 캐릭터가 현실에 튀어나온 느낌이라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배달의 민족은 소비자와 식당을 중개만 하고 배달은 하지 않는다. 배달은 배민라이더에서 한다. '배달의 민족'과 '배민라이더'는 엄연히 다른 회사다. 쉽게 설명하면 토익과 토익스피킹의 차이다. 둘 다 영어라는 테두리로 묶이지만 정작 시험을 보면 문제 유형도, 시험도, 채점 기준도 모든 게 다르다. 이 처럼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인식의 문제점에서 출발해 배달앱이 가진 구조적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설명한다. 외국에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가지고 있는 독특한 배달 구조를 설명한다.


소비자가 배달의 민족을 통해 주문을 하면, 배달의 민족은 식당에 해당 사실을 알린다. 식당은 음식을 만들고, '배민 라이더, 요기요플러스, 부릉, 생각대로' 등 배달 대행업체에 배달 요청, 즉 콜을 한다. 그러면 이들 배달 대행업체 소속 배달 라이더들이 콜을 받고 해당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픽업한다. 픽업 후 주문자의 집에 찾아가 배달을 하고 배달을 완료한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소비자-배달앱-식당-배달라이더'의 4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다.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배달앱이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세 개일지라도, 배달 대행업체는 정말 무수히 많다. 누구나 신고만 하면 배달대행업체를 차릴 수 있기 때문에, 배달 대행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난다. 이들 배달 대행업체는 라이더와 식당 주문 매칭 수수료를 통해 돈을 번다. 배달 대행업체에게 필요한 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라이더와 식당이다. 때문에 배달대행업체들 간의 출혈 경쟁이 심하다. 또 배달대행업체들이 라이더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라이더들은 모두 개인사업자로 건당 계약 형식이다. 때문에 배달 라이더 개개인이 오토바이, 보험 등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보험료가 무수히 비싸고, 오토바이 역시 비싸 초기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든다는 점이다. 결국 보험은 제대로 들지 못하고, 오토바이는 리스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라이더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쉽게 옮기게 된다. 그러면 배달료가 비싸지게 되고, 이들 문제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오게 된다. 배달앱을 써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뉴스를 보면 배달료가 음식 값만큼 나온다며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걸 자주 본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국내 배달앱 시장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너무나도 극심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문제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누군가는 배달 라이더들이 너무 욕심부리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 인터넷을 보면 배달 라이더들이 엄청난 돈을 번다는 글을 볼 수 있다. 맞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일.부.에.불.과.하.다. 실제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신호 위반은 물론이고, 한 번에 여러 개의 상품을 픽업해서 배달해야 한다. 또한 엄청난 노동시간을 들어간 결과다. 만약 신호를 다 지키고, 안전을 담보하며 배달을 할 경우 1시간에 세 건도 제대로 배달할 수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벌게 된다. 버는 돈은 최저임금보다 못한데, 들어가야 할 돈은 유류비, 보험비, 오토바이 리스비 등 계속해서 빠져나간다. 결국 무리해서 과속과 신호위반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사고가 나면 라이더 스스로가 오로지 책임져야 한다. 그들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들이 진짜 개인사업자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개인 사업자라면 본인의 출근시간, 퇴근시간, 개인 영업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계약 내용과 실태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강제되다 시피한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영업도 할 수 없게 한다. 범위를 정해놓고 이 안에서 돌아다니라고 하는 게 과연 진짜 자유일까? 숲을 다녀야 하는 호랑이와 바다에서 헤엄쳐야 하는 돌고래를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 데려놓고 "우리 동물들은 자유롭습니다." 라고 하면 과연 누가 납득할까? 


라이더의 위험을 전제로 쌓여진 돈은 결국 배달앱에 돌아간다. 배달앱은 배달과 우리는 상관없다 말하지만, 이 아래로 떨어지는 구조를 이용해 돈을 버는 건 결국 배달앱이고, 대중도 배달앱이 배달까지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배달의 민족은 배달 라이더들이 배달을 험하게 해서 손님이 끊길까 걱정하는 걸 알고 '배민라이더'를 사용하도록 제안한다. 이렇게 관여하고 있는데 책임이 없다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경쟁자들은 라이더를 근로기준법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위탁 계약자로 계약하고 실제로는 근로자로 사용하고 있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책임져야 할 비용을 할인받으면서 안정적인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 셈이다. 우버 이츠가 직접적인 지휘 감독 없이 프로모션과 알고리즘만으로 한국의 불법적인 배달 산업에 맞서 이길 수는 없었을 테다. 플랫폼 산업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반칙하고 있었고, 외국 자본은 한국형 플랫폼을 이길 수 없었다.(p.100)


중요한 것은 이 데이터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속도와 숫자가 아니라, 데이터화 된 속도와 숫자라는 점이다. 가령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내비게이션에 나온 도착 예정 시간이 15분인 곳을 배민 라이더가 신호 위반과 과속, 자기만이 아는 지름길과 골목길을 통해서 7분 30초 만에 도달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실제로는 10명이 아니라 20명쯤 필요한 일을, 초인적인 노동을 하는 배민 라이더 10명이면 충분하다는 데이터로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데이터화 알고리즘화 된 노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중립적이라는 환상을 만든다. 손님이 앱을 통해 받은 깔끔하고 세련되며 과학적일 것 같은 배달 안내 시간 60분에는 라이더의 악착같은 시간, 아수라장의 시간이 숨어 있다.(p.148)


여기서 우리는 플랫폼 노동의 새로운 딜레마를 발견한다. 극단적 경쟁을 유발하는 건당 수수료, 그때그때 바뀌는 프로모션 등을 일하는 사람들 간의 불화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업무 의욕 저하와 회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회사가 라이더를 이런 식으로 다룬다면 라이더 역시 회사를 그야말로 플랫폼, 즉 지나가는 정거장 정도로 여길 수밖에 없다. 라이더는 15초 먼저 보여주고 6,500원 보너스를 주는 시기에 빨리 입사했다가, 보너스가 사라지면 떠나는 게 상책이다. 마치 주식시장의 단타족처럼 치고 빠지는 것이다. 회사는 이를 두고 라이더들이 돈만 좇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을 조장하는 주체가 바로 플랫폼 기업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p.149)


이런 걸 몰라도 사실문제는 없다. 소비자로서는 버튼 몇 번 두드리면 음식이 오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배달앱 발달의 효과인지, 아니면 요즘 사람들이 그런 것인지 몰라도 직접 전화하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겐 직접 식당에 주소를 말하며 주문하는 게 힘들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배달앱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데이터가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 문제는 지금보다 더욱더 커져있을 것이다.


이런 대형 플랫폼 기업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은 처음 서두에 썼던 것처럼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저항이다. 배달앱을 쓰지 않는 나는 이들에겐 불필요한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또 나하나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배달앱 다운로드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수가 다운을 받았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중이 되면 모든 식당이 배달만 할지도 모른다. 직접 손님을 맞는 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면서 말이다. 카카오톡을 쓰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미아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플랫폼 기업에는 가장 무가치한 소비자이자 플랫폼의 적과 같은 존재다. 노동자가 필요했던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일하지 않는 거지의 귀를 잘랐다는 기록이 있다. 플랫폼 기업에는 네트워크에서 살지 않는 존재가 디지털 세계의 거지 같은 존재다. 플랫폼은 이들의 귀를 자르지 않고 무료 스마트폰과 쿠폰을 뿌린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p.33)


자본 추적이 아니라 데이터 축적이야말로 플랫폼 자본주의의 원리다. 그래서 적자 운영 중인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데이터를 독점에서 우위를 차지하면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투자를 받는다. 우버의 성공은 수많은 젊은 창업가에게 이런 꿈을 심어줬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투자, 기업 공개를 통한 기업 가치 상승과 기업 판매, 이것이 모든 스타트업 기업의 꿈이다.(p.34)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도 쭉 배달앱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배달앱 스타트업들의 꿈이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쌓고, 독점하고, 그것을 통해 기업 가치 상승과 판매를 꿈꾸고 있다면. 나는 한 명의 소비자로서 내 데이터를 주지 않음으로써 그 꿈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고 싶다. 배달앱은 과거 찌라시처럼 뿌려지던 주문 광고지를 하나에 담는 혁신을 보여줬다. 하지만 혁신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면 언젠가 그 문제가 나를 찌를 것이다. 내가 누리는 편리함은 누군가의 불편함과 위험, 위기를 발판으로 내게 올라온 것이다.


나는 아무리 편리한 서비스라도 그것이 사람에게, 환경에게 위협이 된다면 사용을 재고해야 한다고 믿는다. 기꺼이 불편함을 추구하는 사회와 시스템, 그리고 개인이 됐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배달앱을 쓴다고 하면 절대로 말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 나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을 계속해서 해나갈 것이다.


플랫폼 노동의 문제는 플랫폼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산업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불행하다면, 우리 사회가 해당 산업의 발전을 지지해야 할 까닭이 없다.(p.204)


밑줄

- 미국 우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유럽에서도 라이더스 유니온이 탄생해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자신이 만든 애플리케이션이 우리의 삶과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주장은 일부 국가에서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플랫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문제에 주목하는 이가 너무 적었다. 노동의 문제를 거스를 수 없는 기술 발전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작은 부작용 정도로 다루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싫었다. 우리 삶과 노동의 문제는 작은 부작용이 아니라 전부이기 때문이다.(p.7)


- 테일러-포드주의든, 비정규직이든, 맥도날드의 제로아우어든 그냥 도입된 게 아니다. 경영 효율화의 측면, 곧 '혁신'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수.량.적.유.연.화.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수량적 효율화가 비정규직과 별 상관없고, 노동자들 내부의 차별과 갈등을 조장하며, 재계약 여부 등으로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을.(p.22)


- 이제는 주 단위로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장사가 잘되는 시간에만 쓰고, 장사가 안 되는 시간에는 쓰지 않을 수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플랫폼'이다. 노동력을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대기시켜 놓았다가 내가 필요할 때만 태워서 보내고, 다 쓰고 나면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곳, '정거장'이 탄생한 이유다.(p.22)


- 게다가 디지털 세계에는 퇴근이 없다. 서버는 잠을 자지 않는다. 따라서 디지털로부터 일감과 업무 지시를 받는 노동력도 노동법에서 정한 노동시간의 제한을 받으면 안 된다. 놀고먹는 노동자가 없는 '꿈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탄생한 플랫폼에서 노동자는 반드시 사용자여야 하며, 발전된 기술을 통해서든 자기 착취를 통해서든 끊임없이 감시당해야 한다. 그래서 플랫폼 자본주의를 감시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플랫폼은 노동법을 절대로 펼칠 수 없도록 노동법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노동법을 펼치는 낡고 구태의연한 모든 시도는 플랫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p.23)


- 플랫폼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철폐함으로써 이 산업이 발생시키는 사회적 문제와 비용에 대한 책임에서도 벗어난다. 그렇다면 플랫폼 기업이 던져버린 책임을 누가 떠맡을까? 오롯이 개인이다. 라이더로 일하려면 오토바이를 사야 한다. 없다면? 임대료를 내고 빌리면 된다. 에어비앤비에 홍보하기 위해서 집주인은 1천만~2천만 원의 인테리어 비용을 들여 집을 꾸민다. 배달, 청소와 숙박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도 개인에게 돌아간다. 생산수단을 일하는 사람이 가졌으니 책임도 일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p.25~26)


- 반면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한 독점적인 플랫폼이 있어야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며, 완벽한 수요 예측과 재고율 제로라는 이득이 발생한다. 이제는 자율주행차나 의료 기술 발전 같은 '혁신'을 만들려면 기업이 데이터를 마음껏 쓸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p.32)


- 물론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플랫폼 기업에는 가장 무가치한 소비자이자 플랫폼의 적과 같은 존재다. 노동자가 필요했던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일하지 않는 거지의 귀를 잘랐다는 기록이 있다. 플랫폼 기업에는 네트워크에서 살지 않는 존재가 디지털 세계의 거지 같은 존재다. 플랫폼은 이들의 귀를 자르지 않고 무료 스마트폰과 쿠폰을 뿌린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p.33)


- 자본 추적이 아니라 데이터 축적이야말로 플랫폼 자본주의의 원리다. 그래서 적자 운영 중인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데이터를 독점에서 우위를 차지하면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투자를 받는다. 우버의 성공은 수많은 젊은 창업가에게 이런 꿈을 심어줬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투자, 기업 공개를 통한 기업 가치 상승과 기업 판매, 이것이 모든 스타트업 기업의 꿈이다.(p.34)


- 금융자본에 플랫폼은 매력적인 투자처다. 그동안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에 투자하고 구조정을 단행한 뒤 이윤을 뽑아 달아나는 수순을 밟아왔다. 그런데 구조조정을 하면 노동조합의 저항이 일고 여론의 손가락직을 받기도 한다. 공장 부지와 생산수단을 파는 것도 만만찮다. 대규모 산업 자본이라면 투자에 따른 위험도 높다. 그런데 플랫폼 자본은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저항도, 여론의 손가락질도, 생산수단을 파는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 기술과 데이터, 애플리케이션만 있으면 언제든지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으며, 이를 탐내는 거대 기업에 팔아치울 수 있다. 유동적인 금융자본에 이보다 매력적인 투자처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플랫폼 산업은 금융 산업이다.(p.35)


- 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쿠폰 뿌리기다. 앞서 우리는 이것을 '교차 보조금'이라고 불렀다. 플랫폼 회사는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해 앱을 깔 수 있도록 무료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달 할인 쿠폰'까지 뿌린다. 이 효과를 알 수 있는 사례가 초복, 중복, 말복에 뿌려지는 치킨 할인 쿠폰이다. 이날 밤 동네 치킨집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새벽까지 오토바이의 불빛들이 골목 구석구석을 밝힌다. 소비자가 시장을 쿠폰으로 자극해 반대편 시장인 공급 시장을 터뜨리는 것이다. 쿠폰을 통해 소비자가 자주 플랫폼을 사용하다 보면 디지털 단골이 만들어진다. 소비자에게 앱을 여러 개 까는 건 너무나 귀찮은 일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사용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출근길에 익숙한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정류장을 계속해서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p.64~65)


-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플랫폼의 형태는 양자 또는 3자 중개다. 손님-음식적-라이더(3자)를 연결하거나, 클라이언트와 노동자(양자)를 중개한다. 그런데 한국은 주문 중개 플랫폼과 배달 대행 플랫폼이 나뉘어 있다. 여기에 동네 배달 대행사가 끼어 있다. 그래서 한국의 플랫폼 산업은 2개의 플랫폼(주문 중개, 배달 대행)이 손님-음식점-동네 배달 대행사-라이더, 4자를 중개한다.(p.74)


- 여기에는 배달 대행 플랫폼 사와 동네 배달 대행사의 독특한 관계도 있다. 배달 대행 플랫폼 사는 동네 배달 대행사와 '위탁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이 동네 배달 대행사는 라이더와 '알선 계약'을 맺는다. CU 편의점 알바가 CU 본사의 직원이 아니고 동네 편의점이 직원인 것처럼, 플랫폼 회사는 라이더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사업처럼 라이더는 플랫폼 사의 로고가 찍힌 배달통을 달고 배달 조끼를 입어야 한다. 게다가 CU 편의점 알바가 가맹점의 직원인 것과 달리, 라이더는 배달 대행사의 직원도 되지 못한다. 두 번 멀어지는 셈이다.(p.74~75)


- 그가 자신을 옥죌 수 있는 배달 대행업의 등록제를 주장하는 이유다. 자격 없는 사장들, 저가로만 경쟁하려고 하는 사장들을 규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스스로 독특한 배달 대행업체를 차려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다. '내 위에 뭐 없고, 나 밑에 뭐 없다.' 그가 배달 사업을 하면서 세운 경영 철학이다.(p.83)


- 한국의 경쟁자들은 라이더를 근로기준법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위탁 계약자로 계약하고 실제로는 근로자로 사용하고 있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책임져야 할 비용을 할인받으면서 안정적인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 셈이다. 우버 이츠가 직접적인 지휘 감독 없이 프로모션과 알고리즘만으로 한국의 불법적인 배달 산업에 맞서 이길 수는 없었을 테다. 플랫폼 산업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반칙하고 있었고, 외국 자본은 한국형 플랫폼을 이길 수 없었다.(p.100)


- 라이더들이 모여 있는 다양한 종류의 공개 채팅방에는 다양한 사연이 올라온다. 그 가운데 위치 정보와 관련한 흥미로운 제보가 있다. 라이더가 자기가 아는 길로 손님에게 약속한 시간 안에 갔는데 손님이 대뜸 라이더에게 항의했다. "왜 돌아오셨어요?" 손님은 라이더가 움직이는 동선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약속 시간 안에 도착했는데도 손님에게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의 과정을 지적받았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손님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노동과정 감시자이자 사용자로서의 손님이 탄생했다.(p.106)


- 사람들은 라이더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라이더들의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최저임금과 비슷하거나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벌뿐이다. 라이더들이 가져가는 높은 수익의 비밀은 '노동시간'에 있다. 게다가 개인사업자라면서 실제로는 출근을 강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만약 연차수당과 퇴직금까지 계산하면 요기요 플러스는 명백히 최저임금보다 낮은 금액으로 라이더를 사용했다. 많은 플랫폼 기업이 자기들 덕분에 라이더들의 수익이 늘었다고 홍보하는데 대부분은 거짓이다.(p.132)


- 중요한 것은 이 데이터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속도와 숫자가 아니라, 데이터화 된 속도와 숫자라는 점이다. 가령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내비게이션에 나온 도착 예정 시간이 15분인 곳을 배민 라이더가 신호 위반과 과속, 자기만이 아는 지름길과 골목길을 통해서 7분 30초 만에 도달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실제로는 10명이 아니라 20명쯤 필요한 일을, 초인적인 노동을 하는 배민 라이더 10명이면 충분하다는 데이터로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데이터화 알고리즘화 된 노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중립적이라는 환상을 만든다. 손님이 앱을 통해 받은 깔끔하고 세련되며 과학적일 것 같은 배달 안내 시간 60분에는 라이더의 악착같은 시간, 아수라장의 시간이 숨어 있다.(p.148)


- 여기서 우리는 플랫폼 노동의 새로운 딜레마를 발견한다. 극단적 경쟁을 유발하는 건당 수수료, 그때그때 바뀌는 프로모션 등을 일하는 사람들 간의 불화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업무 의욕 저하와 회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회사가 라이더를 이런 식으로 다룬다면 라이더 역시 회사를 그야말로 플랫폼, 즉 지나가는 정거장 정도로 여길 수밖에 없다. 라이더는 15초 먼저 보여주고 6,500원 보너스를 주는 시기에 빨리 입사했다가, 보너스가 사라지면 떠나는 게 상책이다. 마치 주식시장의 단타족처럼 치고 빠지는 것이다. 회사는 이를 두고 라이더들이 돈만 좇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을 조장하는 주체가 바로 플랫폼 기업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p.149)


- 2019년 가을, 한창 조국 사태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울 때였다. 1980년대에 명문 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1980년대 군사정권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싸웠다. 1980년대에 오토바이에 반해 배달 일을 시작했던 덕재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랑은 다른 세상에 사는 놈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거죠." 정치 혐오일까? 아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문제를 노동청 신고뿐 아니라 사회적인 의제로 만들었고, 기업과 싸움을 시작했다. 그에게는 좋은 학벌도, 좋은 직장도, 힘 있는 교수나 변호사 친구도 없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임금 체불과 부당 해고, 불안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로 노동법을 뒤지고 노동청을 쫓아다닐 또 다른 덕재 씨를 만나러 간다. 이게 정치가 아니면 무엇일까?(p.158)


- 더 많은 걸 시도해야 했다. 전형적인 동네 배달 대행사라면 근로자로 다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어떻게 죽는가에 따라 목숨 값이 달라진다.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로 사망하면 하루 일당의 가치가 66,800원(2019년 기준)이다. 하지만 근로자로 사망하면 실제로 번 돈을 기준으로 유족 보상연금이나 유족 보상일시금을 지급받는다. 돈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는 사고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 반면 근로자는 사업주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고인의 명예와도 관련 있는 문제다.(p.178)


- "어플 끄지 마세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퇴근도 자유롭지 않다. 실제로 이 업체에서는 주간반, 야간반으로 라이더를 운영했고,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칠판에 떡하니 적어놓았다. 이것이 이 업체에서만 벌어진 특수한 상황일까? 그랬다면 자신 있게 산재가 된다고 안내하지도 않았다. 내가 확인한 다른 배달 대행업체 단체 채팅방에는 비 오는 날 라이더들이 출근하지 않자 관리자가 욕으로 도배한 일도 있었다. 비 오는 날 출근해서 사고 나면 당연히 업체가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 탄생한 업태가 배달 대행이다. 너무나 전형적이고 익숙한 장면이다.(p.181)


- 플랫폼 노동자들 대부분은 목돈을 모으기 위해서 일하거나 하루하루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일한다. 모아놓은 돈이 없다는 얘기다. 아파서 생계비가 끊기면 삶이 무너진다. 결국 정 씨는 생계를 위해서 생계 수단, 즉 자신을 사장으로 만들어준 유일한 근거인 오토바이를 팔았다. 개인사업자의 몰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한 자산이다.(p.185)


- 플랫폼 노동의 문제는 플랫폼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산업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불행하다면, 우리 사회가 해당 산업의 발전을 지지해야 할 까닭이 없다.(p.204)


- 플랫폼의 본질은 실시간 대체 인력의 공급이다. 오프라인 파업은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다. 앱이 차단되고 음식점 사장과 고객에게 파업 중이라는 안내가 나가야 한다. 이런 권한들을 확보한 다음 노동조합의 활동 양상과 목표를 달리 설정해야 한다. 플랫폼에 대항하려면 노조도 플랫폼의 형태를 갖춰야 한다. 공장에서 만날 수 없는 노동자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소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미디어 노출이다. 방송과 신문, 유튜브 등을 통해 노출된 노조의 주장은 플랫폼 라이더들에게 빠르게 전파된다. 기업 이미지를 중시하는 스타트업과의 싸움에서 여론과 언론은 강력한 저항 수단이다.(p.216)


- 나는 오히려 '효용'과 '비용'의 측면에서 배달 산업의 문제를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욕하는 것도 좋다. 난폭 운전은 사실이고, 소수이지만 손님과 문제를 일으키는 라이더도 있다. 욕이라도 해서 속이 풀린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해서 사과하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욕한다고 달라지나? 온라인상에 아무리 욕해도 악플을 보고 자신의 운전 습관을 바꿀 라이더는 없다. 생존에 대한 욕구와 바닥에 뿌려진 돈을 줍고자 하는 욕망은 악플보다 강하다. 욕은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행위다.(p.244)


- 식상하지만 똑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거리에 돈을 뿌리고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배달 산업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길거리가 아니라 사람과 안전, 시스템에 돈을 뿌려야 한다. 이 돈을 함께 지급하는 것이야말로 플랫폼 기업이 만들어 낸 난폭 운전과 수많은 사고에 대한 해결책이다.(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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