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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Jul 10. 2022

인류 문명과 환경 파괴

책,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민음사/ 1판 1쇄/ 2019.10.25)

- 인류 문명과 환경 파괴 -



인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 최초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점점 옆으로 옆으로 이동해 지금의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에 정착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정착했고, 땅을 일구고, 자식을 낳고, 무리를 만들고, 그렇게 세력을 확장했다. 인류는 그렇게 문명을 키웠고 현재에 이르렀다. 현대 문명도 최소 인구에서만큼은 끊임없는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대개의 문명사는 인간이 확장된 과정을 쓴다. 최초의 인류와 갈등, 갈등 해결 과정, 그 결과를 주로 다룬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에서 인간이 일으킨 문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또한 그 결과가 인간에게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잘 다루지 않았다.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 환경 고전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레이첼 카슨은 책을 통해 인간이 만든 DDT가 환경에 어떤 유해를 가했고, 그것이 인간에게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파장은 컸고, 단연코 환경책의 고전이라고 불리게 됐다.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DDT를 중심으로 다룬다. 하지만, 인간이 그것만 했을 리 없다. 현대는 DDT 외에도 더 많은 유해한 물질들이 많다. DDT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물질들이다. 이런 문제가 과거에 없었을 리 없다. 과거를 알아야 문제를 제대로 알고, 앞으로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


책,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는 인류가 문명의 발전을 이루면서 환경에 어떤 유해를 가했고, 그 결과가 인간에게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넓게 다룬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에서 자원을 채취했는지, 무분별한 자원의 채취 결과가 인간에게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다룬다.


책은 시작부터 흥미롭다.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은 사람들이 어떻게 멸망하게 됐는지를 다룬다. 초기 이스터섬에 정착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데 필요한 자원을 섬에서 채취했다. 숲에 가서 나무를 베었고, 밭을 일구었다. 자식을 낳았고, 그럴수록 더 많은 자원을 채취했다. 문제는 이스트섬이 고립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고립된 공간에 자원이 무한 할리 없다. 유한한 자원을 채취하다 더 이상 채취할 게 없어지자, 결국 붕괴해버렸다. 그 시절 사람들이 지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모아이 석상만을 덩그러니 남겨둔 채 말이다.


이스터섬 사례는 유한한 자원을 무한한 듯이 채취해 쓴 문명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스터섬 이후의 이야기는 인류가 자원을 어떻게 채취했고, 자원을 채취하며 행한 활동이 왜 환경에 유해한 지를 다룬다. 또한, 인간이 만든 경제학은 이러한 유한한 자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자연을 끊임없이 파괴하는 종교적 배경은 무엇이었는지를 다룬다. 결국 핵심은 지구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고, 그 자원도 한정되어 있고, 이것을 인식하지 않고 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이 파괴하는 한 언젠가 인류는 붕괴할 것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자연 파괴 문제는 어느 한 사람,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모든 개인, 기업, 정부, 정치인, 경제계 인사, 언론, 시민단체의 문제다. 어느 한 사람이 열심히 달린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공통의 문제의식 속에서 모두가 함께 이루어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자연을 파괴했고, 결국 붕괴했다는 글이 어딘가에 쓰일지도 모른다.


밑줄

- 이스터섬 주민들은 자기들이 외부 세계로부터 거의 완전히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자기들의 생존 자체가 이 작은 섬의 한정된 자원에 전적으로 달렸다는 사실도 잘 이해했어야 했다. 어쨌거나 그 섬은 하루 정도면 섬 전체를 걸어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아 숲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환경과 제대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체제를 고안해 낼 수 없었다. 그 대신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중요한 자원을 다 써 버렸던 것이다. 실제로 누가 보아도 섬의 자원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을 바로 그 시점에서 부족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던 것으로 보인다.(p.22)


- 이스터섬의 운명은 더 폭넓은 함의를 가진다. 이스터섬과 마차가지로 지구에는 인간 사회와 그들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 섬의 주민들처럼 인류 역시 지구를 떠날 방법이 없다. 세계의 환경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형성해 왔고, 인간은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고 변화시켰던가? 이스터섬의 원주민들과 같은 덫에 빠졌던 사회는 없었을까? 지난 200만 년 동안 인간은 늘어나는 인구와 점점 복잡해지는 기술 문명, 진보하는 사회를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고 더 많은 자원을 뽑아 쓰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치명적으로 고갈시키지 않고,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치명적으로 고갈시키지 않고, 자기들의 생명 보전 체계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하지 않는 생활양식을 찾아내 실천하며 살아오는 데 이스터섬 사람들보다 더 성공적이었던 사회가 있었는가?(p.23)


- 비옥해진 토지가 그 상태를 유지하려면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 그 밑의 토양, 분해자들의 작업, 강우량이나 기온 같은 기타 환경 요인들이 활발하게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있기 때문에 세계 각지의 토양은 지구 상에서 가장 복잡한 생명 체계다.(p.33)


- 생태계의 각 구성 요소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을 더 큰 전체의 일부로서 보아야 한다. 생태계의 모든 구성 요소는 먹이사슬의 여러 단계에서 사로 연관되어 있다. 생태계의 한 부분이 제거되거나 교란되면 그 체계 내 다른 곳에 파급효과가 생긴다. 그 반향은 정도는 물론 그 교란의 성격과 규모, 지속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그 영향을 받은 부분의 상대적 중요성과 그 생태계의 회북 능력에 따라서도 달라진다.(p.34)


-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식물과 동물이 커다란 전체의 일부이듯, 생태계 자체도 더 큰 전체, 즉 지구의 일부다. 지구는 닫힌 체계다. 비록 태양이 생명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고는 하지만, 그 밖의 모든 자원은 유한하다. 지구가 닫힌 체계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쓰레기들은 모두 지구의 어딘가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실과 함께 모든 생명체에 필요한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생명에 필요한 물질들은 반드시 순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생태계는 말할 것도 없고 지구 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적 화학적 과정에서 물질의 재순환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쓰레기를 바다에 쓸어 넣는다든지 대기 중에 배출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처리' 할 때, 즉 쓰레기가 생태계 안의 다른 자리로 옮겨질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들 쓰레기의 대부분은 자연계 안에서도, 인간 활동의 결과물인 쓰레기 더미 안에서도 재순환될 수 없고 체계 안의 어딘가에 오염 물질로 남는다. 그러므로 모든 오염은 육지에서 바다에서건 대기 중에서건, 자연의 과정과 생태계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인간 또한 지구 생태계의 일부다. 비록 인간이 이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p.35)


- 농경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은 땅을 개간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고, 작물을 수확하며, 가축을 돌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더 영양가 있는 식량을 얻는 것도 아니고, 좀 더 좁은 범위의 동식물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식량 안정성면에서도 불리하다. 흉년에는 식량 부족이나 기근의 우려도 더 높다. 수확한 작물을 연중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버려지는 부분도 많다. 농경이 가진 단 하나의 장점을 들라면 이처럼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대신 좀 더 적은 땅에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p.70)


- 농업이란 인간이 원하는 작물과 동물을 기를 인공 서식지를 만들기 위해 자연 생태계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생태계 본래의 균형과 거기에 내재한 안정성을 파괴한다. 이전 같으면 영구적인 토양 보호막이 토지를 덮어 그 위에 다양한 생물군이 살았을 곳에, 몇 종류의 작물이 1년 중 어느 계절 동안만 토지를 덮게 되었다. 토양은 전에 없이 바람과 비에 노출되게 되었고, 특히 연중 작물이 나지 않은 맨 땅인 상태에서는 더 그랬다. 그 결과 자연 상태의 생태계에서보다 훨씬 심한 토양침식이 일어나게 되었다. 영양물질의 순환 과정 또한 손상되어, 적절한 비옥도를 유지하려면 퇴비나 거름을 따로 주어야만 했다.(p.110)


-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이후 거의 모든 인류사에서 지배적인 양상 가운데 하나가 되어 갔다. 지구 상의 대다수 사람에게 발등의 불로 남겨진 것이다.(p.135)


- 아일랜드 기근은 식량을 공급하는 문제의 두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19세기 유렵같이 진보했다는 지역에서도 100만 명씩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기근이란 단순히 식량이 부족한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에 아일랜드에는 식량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영국 정부는 그것을 나누어 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누가 식량을 얻을 수 있는가(사든지 아니면 선물로 받든지) 하는 문제는 오늘날 가난한 나라들의 기근에 관한 분석의 핵심이 된다. 20세기 후반에 에티오피아와 남아메리카, 소말리아, 사헬 등의 지역에서 일어난 기근의 경우, 국가에는 식량이 넉넉히 있었고 수출도 계속되었다. 문제는 수확이 줄어 식량 가격이 폭등하면 어떤 계층은 식량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43년의 벵골(300만 가량이 굶어 죽었다.)에서는 상점에 음식이 많이 있었는데도 경찰과 군대가 도둑을 막아 주었고 사람들은 굶어 죽어 갔다.(p.162)


- 각지의 식량 가격에 관한 정보가 상인들 사이에 교환되기 시작하면서 식량 분배의 문제는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식량을 취급하는 상인들은 상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고 가격이 더 오를 때까지 쌓아 두거나, 좀 더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는 지역에 가져다 팔았다. 그 결과 가격이 뛰어서 식량을 사지 못한 사람들의 불만은 상인들을 향하게 되었다.(p.163)


- 유럽에서 식량 상황의 진정한 혁신은 1850년 이후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식민지로 향하는 대규모 이민이 시작된 시기다. 마찬가지로 세계 각지로부터 대규모로 식량을 수입했다. 또한 남아메리카로부터 구아노 비료를, 식민지로부터 기타 비료들을 들여와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유럽은 농경이 시작된 이래 세계의 거의 모든 사회가 겪어 온, 생존을 위한 기나긴 투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럽이 식민지 경영을 통해 세계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를 변화시켰다는 점, 특히 유럽이 세계의 자원에 관한 지배권을 강화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p.173)


-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해 유럽인들이 지닌 사고방식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들과 유대교로부터 물려받은 기독교 사상으로 추적해 볼 수 있다. 고전적인 전통과 기독교적인 전통을 관통하는 강한 믿음은, 인류가 나머지 종속적인 자연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만 수호자로서 자연 세계를 그대로 보전할 책임이 있다는 사상의 흐름도 있기는 했지만, 소수파 전통에 지나지 않았다.(p.175)


-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관해 그들이 지닌 반감과는 달리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고전 경제학의 가정과 진보 개념을 똑같이 품었으며, 다른 어느 누구보다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밀고 가기까지 했다. 특히 환경문제에 관한 태도에서 더욱 그랬다. 그들은 모든 생산품의 '가치'는 거기에 투입된 인간의 노동력의 양에서 나온다고 주장함으로써 한정된 자원이 가진 가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p.196)


- 고전학파 경제학,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여러 경제체제(마르크스주의와 복지국가, 케인스학파, 신자유주의 경제학 등)는 모두 근본적인 경함을 갖고 있다. 그들은 이차적인 문제만을 다룬다는 것이다. 즉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해서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목적에 배분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최적의 자원 배분을 달성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지구의 자원은 자본, 즉 이윤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자산으로 간주된다. 나무와 야생동물, 광물, 물, 흙 등은 단지 팔거나 개발해야 할 상품일 뿐이다. 게다가 이런 자원을 추출해 상품화하는 데 드는 비용이 곧 그 자원의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나 견해는 지구의 자원이 '희소'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지 않는 것이다. 경제학은 이 사실을 분석에 포함하지 않으므로 이에 기초한 경제 체계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자원을 현재 시장 가격으로 나타나는 값에 모두 써버리도록 장려한다.(p.198~199)


- 경제학에서는 미래에 발생할 문제들에 관해서까지 현재의 가격에 반영하지는 않는다.(이론상으로 볼 때 인류의 미래는 영원히 펼쳐진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미래에 쓸 자원을 보존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까지 반영한다면 현재 자원의 값은 무한히 높아져야 마땅하다.) 그러기는 커녕 경제학은 개인과 사회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행동은 지금 당장 자기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미래 세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된다.(p.199)


- 경제학의 또 다른 문제점은 시장에 진정한 비용이 반영되지 않으며, 따라서 가격에도 마찬가지로 비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기 같은 것들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소비할 수 있는 자유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공기나 물 같은 재화가 자유재 취급을 받으면 기업들이 매연과 폐수를 내뿜으면서도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어서 오염 소준이 급격히 증가한다. 이것은 초기 산업화 사회라면 누구나 경험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활동으로 발생하는 비용, 즉 마실 수 없을 만큼 물이 오염되고 숨을 쉬지 못할 만큼 공기가 오염되는 결과를 사회 전체가 떠안는다.(p.199~200)


- 21세기 초에 이른 지금, 세계의 주류 사상으로 자리 잡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압력은 환경적인 제약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관해 신경을 거의 쓰지 않고 있다.(p.204)


- 유럽인과 유럽 식물, 유럽 동물 등 유럽의 팽창이 낳은 효과는 광범위했다. 세계의 야생 생태계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많은 종이 멸종되거나 수가 격감해 한정된 지역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유럽사나 동식물들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새로운 조건들에 빠르고 쉽게 적응했다. 따라서 지난 5세기 동안 전 세계는 종의 수 감소와 생태계의 동질화를 겪었다.(p.224)


- 유럽인들은 식민지가 유럽 국내 시장을 위한 작물을 재배하거나 세계시장에서 팔리는 상품 작물을 재배해 식민지에서 소요되는 비용에 보탬이 되기를 원했다. 따라서 전통 농경 방식은 고의적으로 파괴되었고 식민지의 농업은 좀 더 특화되어, 수출하기 위해 제한된 품목만을 주로 재배했으며 단일 작물이 경작되는 경우도 많았다. 단일 작물의 재배가 계속되자 토양의 비옥도가 떨어지고 전염병에도 민감해지는 등 환경문제를 야기했으며, 원주민의 생존을 위한 농업은 유럽 압력에 의해 근본적인 변질을 겪게 되었다.(p.264~265)


- 식민지 지배하에 놓였던 세 군데 대륙의 생산 방법은 모두 토지와 자본을 지배한 나라와 재배 작물의 종류, 나아가 가공 방법에 의해 결정되었다.(p.268)


- 선진국들이 강력한 정치적 통제와 경제작 압력, 투자, 세계시장의 구조 등의 장치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이들 농업국의 '개발'은 다른 나라에 팔기 위해 작물을 재배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재배되는 작물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사는 사람들이 먹는 식단의 사치를 위한 것(설탕과 커피, 차, 코코아, 바나나)이거나, 이들 국가의 제조업을 유지하기 위한 것(목화와 고무, 야자유)이었다.(p.278)


- 이러한 변화가 환경에 미친 영향이 좋은 것일 수 없다. 다양하던 농업은 많은 지역에서 점점 단작으로 바뀌었고 토양을 고갈시켰으며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질병과 해충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이런 변화는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해로운 영향을 미쳤다. 자작농은 땅 없는 노동자나 땅에 묶인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20세기 전반기에 수출 작물의 생산이 매년 3.5퍼센트씩 늘어남에 따라 이런 농가들은 세계시장의 가격 등락에 따라 더욱 많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자국민을 위한 식량 생산은 인구 증가보다 느리게 증가했다. 그 결과 이들 국가에서는 식량을 수입해 올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도 비싼 가격에 수입해야만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p.279)


- 대부분의 개도국에서, 특히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는 이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몇몇 상품 작물과 광물의 생산성을 늘려 소득과 수출을 늘리려 애쓰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선택의 문제점은 생산이 늘어남에 따라 가격도 낮아지고 임금도 낮아지며, 소수의 상품에 의존함에 따라 취약성도 커져 경제적으로 더욱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p.295~296)


- 이러한 불균형한 발전의 결과로 세계는 점점 불평등해져 갔다. 선진국들은 자국이 가진 자원의 제약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산업 생산을 위한 원료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식량을 수입할 수 있었다. 이는 엄청난 소비의 증가와 세계 역사상 가장 높은 물질생활수준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성취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의 다른 부분에서 착취와 가난, 인간적 고통이라는 형태로 상당 부분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었다. 늘어 가는 세계의 불평등으로 인한 환경문제는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에서 다른 양상을 띠었다. 오늘날 세계의 환경문제는 1500년 이후에 형성된 세계경제가 지닌 특성의 맥락을 고려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p.296)


- 유럽과 중국에서 늘어나는 인구에 전통적으로 대응한 방식은 토지를 새로 개간하는 것이었다. 새로 개간된 농토는 대부분 예전 농토보다 생산성이 낮았다. 이 과정은 1700년 이래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었다. 지난 300년간 전 세계의 목초지는 68퍼센트가 증가했으며, 경작지는 560퍼센트가 증가했다. 동시에 초원은 33퍼센트, 숲은 22 퍼센트가 감소했다. 농경이 시작된 지 1만 년이 지난 20세기 후반 현재는 세계의 식생이 살 수 있는 지역의 3분의 1에서 농경과 목축이 이루어지고 있다.(p.351)


- 오늘날 세계의 농업 시스템이 60억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불평등하다. 그 결과 배고픔과 영양실조, 심지어 기아까지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전체로 볼 때 세계에는 전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릴 만큼의 식량이 있다. 문제는 불균등한 분배다. 간단히 말하면 선진국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전 세계 식량 생산의 절반을 소비한다. 미국의 1인당 곡물 소비량은 사하라 이남 지역 사람들의 다섯 배에 달한다.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수출되는 식량은 그 반대 방향보다 더 많다. 대부분의 개도국은 식량 순수출국이다. 예를 들어 1995년~2005년 사이에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 수단, 케냐, 탄자니아, 콩고(이들 나라의 인구는 사라라 이남 아프리카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에서 1인당 식량 산출량은 20퍼센트 감소했으나, 1인당 농산물 수출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이러한 식량 교역 중 상당히 큰 부분이 과거에도 그랬듯이 사치품으로, 이미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의 식단에 다양성을 더해 주기 위한 것이다.(p.364)


-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많은 음식이 낭비된다. 최신 추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식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며 소비하는 과정에서 낭비되는 양은 실제로 섭취되는 식품의 85퍼센트 맞먹는다. 세계 곡물 수학량의 40퍼센트(선진국에서는 70퍼센트 이상)는 사람이 직접 먹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동물을 키우는 데 소비되는 등 비효율적으로 사용된다. 부유한 나라의 애완동물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고기를 소비한다. 또한 세계 곡물 수확량의 20퍼센트는 쥐들이 먹는다고 한다.(p.365)


- 곡물이 징발되었던 현황을 보면 어떤 기아에나 공통적으로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역사상 어느 곳에서도 식량이 정말 없어서 굶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시기에 식량이 부족해지면 가격이 엄청나게 치솟는데, 이때 그 돈을 주고 음식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이다.(p.367)


- 세계에는 식량 부족이란 없으며, 다만 식량의 불공평한 분배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음식에 대한 이러한 불평등한 접근은 부유한 나라의 농업 보조금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세계 식량 원조의 대부분은 식량 보조금을 많이 책정하는 나라들에서 남아도는 농산물을 처리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겠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게다가 미국이 제공하는 식량 원조는 수혜국이 미국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 식량 원조의 90퍼센트 이상(미국은 99퍼센트)은 원조해 주는 선진국의 상품을 사는 대가로 주어지며, 거기에다가 미국은 원조될 식량은 미국 선박을 반드시 이용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대개 공공 기금으로 원조될 식량을 구매하지만, 이때 공공 기관이 식량 유통 회사로부터 식량을 사들이는 가격은 그 식량을 원조 받는 나라가 자국 내에서 사는 식량의 가격보다 절반 이상이 비싸며, 다른 나라에서 식량을 사 오는 것보다 33퍼센트 이상 비싸게 책정되는 것이 보통이다.(p.368)


- 최근에는 '지속 가능'한 벌목이라고 해서 나무를 한 그루를 벨 때마다 한 그루를 새로 심는 사례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벌목을 해도 삼림은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풍부한 열대우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빨리 자라는 나무인 유칼립투스와 같은 나무들만이 들어설 뿐이다.(p.373)


- 현대 농업은 어느 정도의 성과도 거두었지만, 문제점과 환경적 재앙도 초래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농업과 다를 바 없다. 달라진 것은 문제의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전보다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지만, 분배는 더 불공평해졌다. 선진국 대부분의 주민들은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풍부하고 다양하게 먹고 있지만, 전 세계의 인구의 다수가 대부분 영양이 부족한 상태이며,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더 많은 땅에서 생산하고 더 집약적으로 생산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수많은 환경문제가 생겨났다. 삼림 파괴와 토양침식, 사막화, 염화, 땅과 물에 대한 과부하, 그리고 비료와 살충제, 제초제의 사용 등이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인류 역사를 통해 모든 농경 사회가 공통적으로 떠안고 살아왔던 과제, 즉 모두에게 식량을 충분히 공급한다는 과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p.390~391)


- 서유럽, 특히 영국에서 17세기부터 비싸고 귀한 장작 대신에 석탄을 사용하게 된 것은 단순히 한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대체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전까지 모든 사회는 인력과 축력, 수력, 풍력, 장작 등 재생할 수 있는 에너지를 사용해 왔다. 인간들이 새로 숲을 조성하지 않고 숲을 '채굴'해 내기만 해서 에너지가 부족해졌으므로, 이 에너지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이러한 근시안적인 접근의 결과는 오랜 세월을 두고 반복되어 왔다. 목재의 부족이 정말 큰 문제가 된 뒤에야 사회들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는데, 대안은 여러 가지 면으로 볼 때 열등한 에너지원이 석탄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은 재생할 수 없는 에너지원에 의존하게 된 첫걸음이었다. 2억 년 전에 존재했던 엄청난 열대 삼림이 만들어 낸 화석연료를 본격적으로 채굴하기 시작한 때는 17세기였다. 이로 인해 인류 역사상 두 번째의 대전환이 시작되었는데, 그 영향은 깊디깊은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재생할 수 없는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인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 온 흐름을 근본적으로 끊고 새로운 방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역사를 통해 인류는 늘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는 그런 상태와 결별하고 에너지 사용량이 급속히 증가해 대단히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사는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그 전환의 결과는 오늘날에 와서야 분명해지고 있다.(p.414)


- 신기술을 통한 에너지 효율성의 개선은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사용된 자원의 총량과 거기에서 발생된 오염에서 온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것이 이루어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p.430)


- 공장에서는 대기 중에 오염 물질을 내놓는 것 외에도 폐수를 강에 쏟아부었다. 공장들은 폐수를 쉽게 버리기 위해 강변을 따라 늘어섰다. 이러한 공장들은 강에 사는 생물체를 죽이고 인간의 건강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유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을 방류했다. 1866년에 영구 하천 오염에 관하 왕실 위원회는 일부 강이 심하게 오염된 나머지 잉크로 쓸 수 있을 정도였으며, 실제로 강물로 보고서의 일부를 작성했다. 보고서에서는 또한 브래드퍼드 운하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고 보고했다. 강물에 불을 붙이고 노는 것은 그 지역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였다.(p.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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