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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Jun 18. 2022

주주 우선주의라는 잘못된 아이디어

책, <주주 자본주의의 배신>


주주 자본주의의 배신
(린 스타우트/ 북돋음/ 초판 1쇄/ 2021.04.30)

-  주주 우선주의라는 잘못된 아이디어 -



기업의 주인은 누구일까? 판단하기 쉽지 않다. 질문을 바꿔보자. 삼성전자 주인은 누구인가? LG전자 주인은 누구인가? 현대 자동차 주인은 누구인가? 이재용? 구광모? 정의선? 선뜻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누군가는 이들이 주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각 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발행한 주식을 소유한 자는 모두 기업의 주인이다. 즉, 적은 수라도 삼성전자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삼성전자의 주인인 것이다.


경제학 전공은 아니지만, 겉핥기 정도로 경제를 배웠을 때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고 배웠다. 기업이 발행한 주식은 주인 된 권리이며, 기업 경영인은 이 주주들을 위해 경영을 해야 하며, 주주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배웠다. 이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때문에 기업이 문제를 일으킬 때, 주가가 올라가면 주식을 파는 단타족들을 볼 때, 경영진이 그런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의 해법이 사회와 환경에 대해 관심 갖는 주주들이 많아지고, 이 파이를 키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 외에는 해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책, <주주 자본주의의 배신 - 주주 최우선주의는 왜 모두에게 해로운가>는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시각이 잘못된 것이며, 모든 주주가 이익만을 추구하지도 않고, 주주 우선주의를 내세울 때 환경과 사회, 주주 자신에게까지도 피해를 준다는 것을 하나하나 파헤치는 책이다.


대부분 기업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인식한다. 또 그것이 법에 명시된 것 마냥 맹신한다. 저자는 기업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법은 그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일부 제한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몇 개 판례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기업의 목적이 주주 이익 극대화하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 판례들은 기업이 상장을 폐지하는 등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주주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판례였다. 기업이 상장을 취소하고, 다른 기업에 매각이 되는 상황에서 기존 매각되는 기업의 주주들이 주가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최대 보상을 해주어야 한고, 제한된 상황에서만 주주들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판례가 지나치게 해석돼 기업이 주주의 이익을 항상 극대화해야 하는 것처럼 되었고, 법학자, 언론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무분별하게 인용해 '기업의 목적 =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이런 생각의 위험성은 마치 '주주=이익 추구'라는 허상을 만들게 한다. 실제 기업의 주주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삼성전자가 발행한 주식 수만 봐도 약 60억 개다. 개인과 기업, 기관이 여러 개 주식을 가지고 있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도 60억 명이 주식을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들의 생각이 모두 같을 리는 없다. 한 집안에 있는 사람들도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주주 우선주의는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주주가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순한 존재로 치부해 버렸다.


이렇듯 주주 우선주의와 주주 이익 극대화하는 법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허상일 뿐이다. 또한 주주가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또 중요한 건 '주주=기업의 주인'이라는 인식이다.


주주는 기업의 주식을 소유한다. 이것은 결코 주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단순히 주식을 소유하고, 주식 소유에 따른 주주의 권한과 기업의 의무를 명시하는 계약일뿐이다. 만약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면 삼성전자 매장에 가서 아무 휴대폰이나 가져오는 게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다. 주인이 제 물건 찾아가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나.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수도 없을뿐더러 그랬다간 처벌을 받을 것이다. 즉 주주=기업의 주인이라는 인식 역시 허상이며, 단순히 일부 권한을 가진 계약자일 뿐이다.


이 계약에 따라 주주는 주주총회에서 기업 경영진과 이사회가 내린 결정에 질문을 할 수 있고, 경영진과 이사회는 그 질문에 명확히 답변할 의무가 주어진다. 이런 단순 계약에 따라 주어진 권한과 의무가 있을 뿐이지, 주주가 결코 기업을 소유할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더 나아가 기업 이사회는 주주에게 이익을 배당하고 주가를 무조건적으로 올려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사회는 기업의 상황이 좋고, 나쁨에 따라 직원 사기를 높일 것인지, 기술 개발에 투자할지, 직원들 임금을 높일지를 두고 균형을 맞추며 중대한 의사결정을 할 뿐이다. 그런 의사결정을 잘하는 이사회가 정말 좋은 이사회이고, 기업 이사회 구성이 중요한 이유다.


이렇게 주주 우선주의는 그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이지만, 실제 이것이 옳았다고 해도 그것이 주주의 이익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는 BP의 사례가 소개됐는데, BP가 딥워터 호라이즌호 원유 유출 사고로 인해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그로 인해 주가가 곤두박이칠 쳤는데, 그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주주 우선주의가 있었다. BP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기 위해서 사람과 안전에 대한 투자를 줄였고,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게 해 결국 사고가 발생해 막대한 환경피해와 함께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BP 사례가 보여주는 건 주주 이익 극대화가 결코 사회에도, 환경에도, 주주 자신에게도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국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주주 우선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미신이자 아이디어였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BP 같이 문제가 일어난 원인이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잘못된 아이디어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하면 잘못된 아이디어를 바로잡고, 제대로 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 아이디어에 맞게 기업의 정의와 목적을 생각한다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실제 기업 투자자들을 보면 다양하다. 일반 투자자, 사회 책임 투자(SRI), 임팩트 투자자 등 다양하다. 이중 사회 책임 투자는 모든 주주가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설사 내 이익이 조금 줄어든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옳은 것을 생각하는 투자자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임팩트 투자자 역시 현재는 가치가 지만 향후 환경,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에 투자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들은 당장의 수익보다 장기적인 사회적, 환경적 가치에 더욱 주목한다. 이들 존재 자체가 주주가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신화를 깨트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주 우선주의라는 잘못된 아이디어를 바로잡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업의 목적이 무엇이고, 기업의 주주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또 그 괴정에서 각자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조율해야 한다.


최근 ESG의 폭발적 관심은 주로 투자자 쪽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업 투자에서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를 살펴보고 각 요소를 장기적인 투자 위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ESG 평가들도 투자자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위험 정도인지를 등급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은 투자자들 역시 이익만 추구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으며, 기업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로 기업의 목적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목적과 존재 이유가 결코 주주 우선주의와 주주 이익 극대화는 아닐 것이다.


전통적인 주주 최우선주의는 지적 실패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주가 기업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고 더 복잡적이고 더 미묘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을 이해한다는 의미는, 측정하기 쉬운 유일한 목표로 기업의 '목적'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특정 기업의 목적은 규제 기관이나 판사나 교수나 개인 주주나 어떤 주주 그룹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가장 잘 결정하리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이사회는(판례법이 적시한 대로) '기업과 그 주주들' — 장기 투자 주주, 이해관계자들을 먼저 배려하고자 하는 주주, 분산 투자하는 주주, 친사회적인 주주를 모두 포함해 —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다. '주주'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이렇게 넓혀 나가야만 투자자뿐 아니라 나머지 우리 모두에게도 이롭다.(p.224~225)


밑줄

- '주주'의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 어떤 기업의 현재 주가를 높이려는 단 하나의 목표에만 사로잡힌 추상적 존재로서의 주주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능력을 갖추고 실제로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기업의 주식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주식 수익 너머의 투자와 이익에 대해 생각하고 타인들, 미래 세대, 지구라는 이 행성의 운명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고려를 하는 실제 인간으로서의 주주를 의미한다 — 주주 최우선주의는 이해관계자와 공공에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정말로 기업이 다양한 사람들 — 그 기업의 주식을 직접 소유한 사람이든, 연금이나 뮤추얼펀드 같은 기관 투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소유한 사람이든 간에 —에게 이익이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도대체 누가 주주이며 그들이 정말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p.39~40)


- 주주마다 가치관과 관심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상장기업의 이사들에게 필요한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각기 다른 주주들의 요구가 경쟁하고 충돌할 때 균형을 맞추고 중재하는 것임이 명백해진다.(p.43)


- 통상 말하는 주주 가치적 사고는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주주들의 다양성을 전체하지 않음으로써 이 중요한 일을 은근슬쩍 외면한다. 다시 말해서 주주 가치적 사고는 경영자들이 오로지 주식 가격에만 몰입하도록 몰아가서, 다양한 주주들에게 다양한 가치가 있다는 현실을 무시해버린다.(p.43~44)


- 기업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할 때, 한 기업의 당이 주가만 바라보는 가상의 존재가 주주라고 분별없이 가정해버린 것이다. UCLA 법학 교수인 아이만 아납타워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관점에 기초해서 주주 최우선주의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은 주주라는 존재를 '근본적으로 오직 한 가지 관심만을 가진 갈등 없는' 집단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은 투자자들이 인간으로서 가진 최소한의 기준을 낮추어서 그들을 참을성 없고 기회주의적이고 자기 파괴적이고 다른 사람의 삶의 질에 대해서는 병적으로 무관심한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다.(p.44)


- 주주 최우선주의는 특별한 설명이나 명분 없이, 주주들은 한결같이 눈앞의 이익만 바라고 기회주의적이며 분산 투자에 관심도 없고 일말의 양심도 없는 존재라서 서로 갈등할 일이 없다고 전재해버린다. 이런 식으로 기업을 바라보면 투자자나 사회 전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는 상장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p.45)


- 주주는 무엇을 소유하는가? '주주 shareholder'와 '주식 보유자 stockholder'라는 이름이 답을 알려준다. 주주는 주식을 소유한다. 결국 한 주의 주식은 단순히 주주와 기업 간의 계약일 뿐이며, 그 계약 내용은 제한된 상황에서 매우 제한된 권리를 주주에게 준다는 것이다.(어떤 주주가 애플 사의 주식을 소유했다고 해서, 그 주주에게 애플스토어에 가서 거기 있는 제품들을 마음대로 가져다가 쓸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주주는 채권자, 협력 업체, 임직원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이 모두 기업 법인과 계약 관계를 맺었을 뿐이다. 그 누구도 기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p.94~95)


- 두 번째 통념은 많은 전문가가 주주 우선주의가 규범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근거이기도 한데, 바로 주주는 기업의 '잔여 청구권자'라는 생각이다. 경제학에서 잔여 청구권 자라고 하면, 사업을 운영하면서 감당해야 하는 기본적인 법적 책임(예를 들면 채권자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임직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을 다 지고 난 다움에 남는 이익을 모두 챙길 권리를 갖는 자를 의미한다. 주주 최우선주의 관점에 따르면 주주는 상장 기업의 유일한 잔여 청구권 자이다. 임직원, 고객, 채권자, 협력 업체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법과 정식 계약에 의해 규정된 최소한만을 기업으로부터 받는다. 이 법과 계약이 의무화하는 것만 충족되면 나머지는 모두 주주에게, 오직 주주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다.(p.95)


- 주주가 기업의 잔여 청구권 자라는 믿음은 자연스럽게 주주의 부가 극대화되면 사회 전체의 부가 극대화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나머지 기업 이해관계자의 이익은 미리 정해진대로 보장되었으니, 주주의 잔여 이익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업 가치를 올리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주주 이익의 가치가 감소하면 이는 곧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p.96)


- 주주는 기업이 재정적으로 탄탄한가 아닌가에 따라 이익을 얻기도 하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여러 잔여 청구권자이자 위험 감수자 중의 하나일 뿐이며, 이는 이사회의 결정 사항이다.(p.99)


- 기업 스스로가 잔여 청구권 자이며, 기업의 남은 이익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이사회의 몫이다.(p.99)


- 만약 주주 최우선주의 이데올로기가 옳다면, 표준적인 주주 중심 모델의 이상에 가까워지는 기업은 이런 종류의 내적 지배 원칙과 구조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더 우월한 경제적 성과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명백하게도 그 기업의 주가가 더 높고 투자자들에게 더 큰 수익을 안겨주어야 한다. 이런 사실은 고무적인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주주 가치의 사고가 최선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론을 세울 필요조차 없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주주 가치의 사고가 우수한지 아닌지 바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p.111)


- 20세기 막판까지 주주 최우선주의 모델은 기업의 목적에 관한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실증적 비정상치 몇 가지를 설명하는 데 꽤나 참담하게 실패했다. 첫째, 미국 기업법은 상장기업의 이사회가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도록 의무화하지 않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둘째, 상장기업의 경제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주주는 소유주(owner)가 아니고 주인(principal)도 아니며 잔여 청구권자도 아나다. 셋째, 주주 최우선주의를 따르는 경영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주장을 확실히 뒷받침해줄 만한 실증적 증거들도 없다. 사실 개별 기업에서 기업 전체로 초점을 옮기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볼 수 있다.(p.125~126)


- 기존 패러다임에 기반해 커리어를 쌓은 지식인 리더 대부분은 새로 등장한 존재를 쳐부수기 위해 이빨과 손톱을 곧추세우고 싸우려 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론이 탄탄하다면 — 우리가 관찰하는 실제 세상을 기존 이론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면 —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얻고 결국 이길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과학의 지적 진보는 세대가 바뀌어야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p.126)


- 마틴에 따르면 바로 이 기대 시장을 성과 평가의 기준으로 삼으면 경영진은 꼼짝 못 하게 된다. 특히 이 기대 시장이 옵션, 주식 지급, 주가 연동 보너스 등으로 경영진의 보상 책정에 사용될 때 그렇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실적이 좋다고 해보자. 이 기업은 최고의 실적을 내고 당분간은 계속 잘 나갈 것으로 보인다. 주식시장은 이 최상의 미래 성과에 대한 기대를 주가에 반영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이 이 기업의 절정 상황이라면 최고경영자는 어떻게 주가를 더 높일 수 있겠는가?(p.148)


- 마틴의 표현을 빌리면 "현대 자본주의에서 경영진의 일은 주주가치, 즉 기업 주식의 시장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 목적으로 최고경영자는 항상 주가를 높이기 위해, 주가에 대한 기대치를 무한히 높이기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다. …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아무리 경영에 뛰어나다고 해도 계속 높아지는 기대에 계속 부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주 가치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영원히 기대 수준을 높일 것이기 때문에 결국 궁극적으로 달성할 수 없는 업무'를 경영자에게 요구하는 것이다.(p.148~149)


- 그런 상황에서 최고경영자는 무엇을 하겠는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시도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달성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바로 예측 기대치를 관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회계 조작('이익 조정')을 통해 어느 분기에 시장의 기대를 극적으로 떨어뜨려서 이후 다시 기대치를 높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채용을 늘리거나 판매량과 이익을 늘릴 수 있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고 당장 생색 나지 않는 일들을 제쳐두고, 원가 절감(종업원 해과 기술 개발 기용 삭감)이나 금융공학(자산 매각, 대대적인 자사주 매입)과 같은, 실질적인 장기 가치 증가 없이 일시적으로 주가를 올리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다.(p.149)


- 투자자들의 친사회적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는 B 코퍼레이션(B Coporation)이라고 불리는 기업 형태를 허용하는 법안이 여러 주에서 통과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B 코퍼레이션은 의무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환경적 성과를 외부에 공시해야 하고, 만약 이사회가 공공의 이익을 성실히 추구하지 못하면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p.198)


- 엘하기 교수가 지적하듯이 소수라도 SRI펀드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의 주식시장 구조는 주주 최우선이라는 수사를 통해 친사회적 투자 행위를 막는, 거의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세운 것이다.(p.202)


- 다시 한번 말하자면 우리는 주구 가치 이데올로기 때문에 기업이 주주 대부분의 실제 이익과는 반대로 작동해왔음을 알았다. 어쩌면 실제로 완벽한 이기주의자 — 사이코패스 — 라서 기업이 노동 착취를 하고, 소비자를 속이고, 직원들을 불구로 만들고, 환경을 오염시켜도 개의치 않는 개인 주주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적 데이터에 의하면 우리 대다수는 그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 어느 정도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려고 한다. 사회적 책임 투자의 결과를 보면 투자자들의 수익이 감소하더라도 그 차이는 미미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연구 결과이다. 이것은 곧 주주들이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거나 불가피해서가 아니라 주주 가치라는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집단행동에 의한 불행하나 결과일 뿐임을 말해준다.(p.204)


-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기업의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많은 문제는 기업에 의해서 벌어지는 뜻밖의 결과라기보다는 기업에 대한 잘못된 아이디어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 아이디어란 기업이 주식 가격으로 측정되는 주주의 가치를 극대화하도록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p.209~210)


- 해내기 어렵다는 것이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매일 균형을 맞추며 살아간다. 오직 한 가지만 '극대화'하는 것보다는 때로는 서로 부딪히는 여러 목적을 슬기롭게 만족시키기 위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인생사의 법칙이지, 예외가 아니다.(p.215)


- 전통적인 주주 최우선주의는 지적 실패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주가 기업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고 더 복잡적이고 더 미묘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을 이해한다는 의미는, 측정하기 쉬운 유일한 목표로 기업의 '목적'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특정 기업의 목적은 규제 기관이나 판사나 교수나 개인 주주나 어떤 주주 그룹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가장 잘 결정하리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이사회는(판례법이 적시한 대로) '기업과 그 주주들' — 장기 투자 주주, 이해관계자들을 먼저 배려하고자 하는 주주, 분산 투자하는 주주, 친사회적인 주주를 모두 포함해 —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다. '주주'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이렇게 넓혀 나가야만 투자자뿐 아니라 나머지 우리 모두에게도 이롭다.(p.22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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