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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Oct 10. 2022

죄인은 없다

책, <다섯째 아이>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민음사/ 1판 38쇄/ 2014.03.10)

- 죄인은 없다 -


두 남녀가 있다. 남자의 이름은 데이비드, 여자의 이름은 해리엇이다. 이 둘은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고 결혼을 한다. 두 사람에겐 꿈이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그들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은 이렇다. 5명의 자식을 낳고, 그들이 녹음이 짚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저녁이 되면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고, 주말이 되면 사람들을 초청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주변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 집은 어떻게 구할 것이며, 아직 어린 나이에 그 수많은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둘은 굴하지 않았고, 본인들이 원하던 대로 교외에 집을 얻고, 자식들을 낳는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아이들의 수가 더해지는 만큼, 그들의 행복은 곱셈으로 좋아졌다. 이때까지 그들의 삶은 좋았다. 행복했고, 완벽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행복하고 따듯한 데이비드와 헤리엇의 가정은 점점 망가져간다. 이들의 <다섯째 아이> '벤' 때문이었다. 그는 곱셈으로 좋아지던 그들의 행복 앞에 - 부호를 넣는 아이였다.



벤은 해리엇의 몸에 있을 때부터 그녀를 힘들게 했다. 애초에 잠시 애를 갖지 않기로 한 시점에서 얻은 아이였다. 원치 않는 임신이었고, 벤 역시 원치 않게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빨리 내보내 달라는 듯 발버둥 쳤다. 그 고통은 헤리엇에게 고스란히 돌아왔고, 그녀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런 날카로움에 주변 사람들도 지쳐갔고, 오히려 해리엇이 과민하고 문제라는 시선으로 돌아왔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벤은 태어났다. 자신이 누구도 원치 않았던 자식이라는 걸 아는지, 그러면 왜 낳았냐는 불만을 몸으로 표현하듯 강하게 행동한다. 그 불만의 크기만큼 벤의 힘은 셌고, 모두가 혀를 내두른다.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 태어난 게 죄인 아이, 주변을 힘들게만 하는 아이라는 주홍 글씨가 써져 있었다. 주홍 글씨는 그를 낳은 해리엇에게도 그대로 쓰였다.



모두가 그녀를 죄인 취급했다. 하지만, 그녀는 죄인이 아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였고,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식을 죽음의 요양원에서 구했으며, 누구도 옆에 가려고 하지 않는 벤에게 유일하게 다가간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해리엇을 죄인 취급했고, 벤을 문제아로 낙인찍었다. 그저 행복만을 바래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그 아이가 불행이 될 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 그저 행복만 바랬던 해리엇. 그 앞에 나타난 벤. 이들을 비난하는 인물들을 오히려 비난하고 싶을 정도다.



누구의 잘못일까? 해리엇? 데이비드? 벤? 혹은 그들의 가족들?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불행을 자초한 건 해리엇과 데이비드다. 처음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이라 했을 때, 그 말에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멈추지 않았다. 듣지 않았고, 자신들이 맞다며 전진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을 때는 이미 일이 저질러지고 난 뒤였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가장 억울한 건, 벤이다. 그저 수동적으로 태었났을 뿐, 자신의 부모인 데이비드와 해리엇의 뒤늦은 후회의 결과일 뿐이다. 벤에겐 선택권 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책 속 데이비드의 말처럼, 벤은 먼 과거에 있던 유전자가 정말 우연한 일로 지금 나왔을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벤의 잘못이거나 죄가 될 수는 없다. 그저 데이비드와 해리엇의 선택과 책임만이 있을 뿐이다. 벤을 키울 것인가, 버릴 것인가. 둘의 선택은 달랐고, 그 선택으로 인해 책임지는 가족도 달라졌다. 해리엇은 벤을 선택했고, 데이비드는 다른 네 명의 자식을 선택했다.



선택에 따라 보이는 가족이 달라졌고, 지켜야 할 자식도 달라졌다. 해리엇은 다섯째 아이인 벤을 지키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네 명의 자식을 보지 못했다. 데이비는 앞서 네 명의 자식을 지키려고 했고, 그 때문에 다섯째 아이 벤을 보지 않았다. 서로는 서로의 선택과 책임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잘못한 것이 아니다. 데이비드는 아버지로서의 선택과 책임을, 해리엇은 어머니로서의 선택과 책임을 했을 뿐이다.



자식을 낳는 건 부모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자식을 얻는다는 건 마치 세상을 얻는 것과 같다. <다섯째 아이>는 그것은 불문율이 아니며, 자식을 낳는 것이 불행이 될 수도 있고, 얼마나 큰 선택과 책임이 따르는지를 보여준다. 벤이라는 다섯째 아이는 데이비드와 해리엇 가족이 느꼈던 행복 앞에 – 부호를 붙였다. 첫째부터 넷째까지 태어날때부터 제곱의 행복이 곱해졌다면, 벤은 그 행복을 단숨에 –로 만들었다. 



불행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각자의 선택을 했다. 해리엇은 다섯째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를 구했고, 데이비드는 네 명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벤을 버렸다. 그들 모두 부모였고, 각자의 이유로 자식과 가정을 지키려고 했을 뿐이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이었고, 선택이자 책임이었으며, 행복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자식을 지키는 부모를 죄인이라 말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다. <다섯째 아이> 속 그 누구도, 죄인이 아니며 죄인은 없다. 불행을 막으려는 책임과 선택이 있을 뿐이다.



책 속의 해리엇과 데이비드 모두에게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선택권 없이 태어난 벤에게도 결코 태어난 것이 죄가 될 수 없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 세 명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선택과 책임은 모두 합당한 것이었으며, 당신들이 겪은 불행만큼 더 큰 행복이 숙명처럼 찾아오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 싶다.


밑줄

- 그들은 어떻게 할 셈인가? 진짜로 해리엇은 그 비 오는 저녁 그 침실에서 임신을 했다. 자신들의 빈약한 수입, 또한 자신들의 허약함을 생각하면서 그들은 불안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질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을 때 우리는 마치 심판을 받는 것 같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다른 사람들이 항상 잘못된 생각이라고 판단했던 그런 완고한 신념 외에는 자신들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미미하고 부적절한 존재라고 느꼈다.(p.18)


- "애들아, 너희들 둘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하고 도로시가 말했다. 데이비드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였다. 세상사에 초월적인 자기 어머니나 세속적인 아버지에게는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내 생각엔 너희들이 만사에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될 것 같아. 잠깐, 내 말을 끝까지 들어. 해리엇은 이제 스물넷이야, 아직 스물다섯도 채 안 되었어. 데이비드는, 너는 겨우 서른이야. 너희 둘은 마치 모든 것을 움켜잡지 않으면 그것을 놓쳐버릴 거라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구나. 그래, 이게 너희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내가 받은 인상이야."(p.23)


- 행복. 행복한 가정. 로바트 가는 행복한 가족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었고 누릴 자격이 있었다.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얼굴을 맞대고 누워 있으면 때로는 그들의 가슴속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아직도 자신들을 놀라게 할 만큼 엄청나게 강렬한 안도감과 감사의 정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아주 오랜 기간처럼 보이는 그 시간 동안 인내하기란 사실 쉽지 않았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60년대의 시대정신이 그들을 비난하고 고립시키고 자신들의 가장 좋은 면을 축소시키던 때에,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기가 어려웠었다. 이제 보아라, 자신들의 완고한 개성을 방어하려고 사력을 다한 것이 옳았다. 그 개성은 너무나도 고집스럽게 가장 최상을 선택했다. — 바로 이 삶.(p.30~31)


- "생각한 것보다 더 된 것 아니야?" 그는 다시 한번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해리엇은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고, 그는 옳지 않은 생각인 줄 알면서도 그녀가 그들 사이의 계약 중에서 어떤 규칙을 깨고 있다고 느꼈다. 그게 눈물과 속상함은 그들의 협의 사항에는 결코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p.49)


- 해리엇은 더 이상 무슨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녀는 브래트 박사를 다시 찾아갔다. 자기 배에서 강제로 떨어져 나오려는 듯한 태아의 힘 때문에 잘 수도 쉴 수도 없었다.(p.53)


- 사람들이 세 아기를 안아보고 싶어 하면 물론 그렇게 하도록 했지만 이런 상황을 겪고 나서 사람들의 얼굴이 변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사람들은 항상 벤을 빨리 되돌려주었다. 어느 날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해리엇은 사라가 사촌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벤은 소름이 끼쳐. 도깨비나 난쟁이 뭐 그런 것 같애. 난 차라리 불쌍한 에이미하고 하루 종일 보내는 것이 더 좋아"(p.76)


- 다른 애들이 성가시게 굴지 않을 때 그녀는 다른 애들에게 했듯이 매일 그 애를 쓰다듬고 함께 놓아주려고 큰 침대로 데려오는 원칙을 정했다. 그러나 결코, 아니 한 번도 그 애는 사랑스러운 순간이 없었다. 그 애는 저항하고 버둥대고 싸웠다 — 그러고는 머리를 쳐들고 그녀의 엄지를 물고 입을 다물었다. 보통 아기들이 이가 나려 할 때 고통을 없애려고 빨고 물거나 입술을 찾으려고 더듬거리다가 핥는 것과는 달랐다. 그녀는 뼈가 꺾이는 것같이 아팠다. 그녀는 벤의 차가운 승리의 미소를 보았다.(p.77)


-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으로 조심할 때 저 짐승이 나왔으니 저놈 같은 것이 또 나오면 어쩐다? 그 두 사람은 모두, 사실 둘 다 마음속으로는 자신들이 벤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 — 그 애는 태어나려는 의지를 가지고 그 애나 그 비슷한 어떤 것에 대해서도 아무 방어 능력이 없는 자신들의 평범함을 침범한 것이라고 느꼈다. —을 창피하게 여겼다. 그러나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긴장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하나의 장벽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신경 쓰고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느꼈다.(p.78~79)


- "이제 그 애 아니면 우리야" 해리엇에게 데이비드가 말했다. 벤에 대한 차가운 증오로 가득 찬 목소리로 그는 덧붙였다. "그 애는 화성에서 방금 떨어졌나 봐. 여기서 발견한 것을 보고하러 다시 돌아가겠지" 그는 웃었다. 잔인하게. 그 요양소가 어떤 곳이든 간에 그곳에서 벤이 오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없이 받아들인 그가 잔인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물론 그 사실을 그녀도 반쯤은 알고 있었다. "그 앤 어린애야" 그녀는 말했다. "그 앤 우리 아이라고" "아니야. 그 아이는 아니야" 데이비드가 마침내 말했다. "어쨌건 그 앤 내 애가 확실히 아니야."(p.101)


- 그는 가방들을 승합차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해리엇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굳은 얼굴로, 거실 마루에 앉아 있던 벤을 들어 올려서 데리고 나가 차에 태웠다. 똑같이 굳은 얼굴로 그는 해리엇에게 빨리 다가와 그녀를 안아서 차를 못 보게 몸을 돌렸다. 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고 그녀는 차 안에서 나오는 고함과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여전히 꽉 잡은 채 소파로 데리고 가서 연신 말했다. "우리는 이래야만 해, 해리엇. 해야만 한다고" 그녀는 그 일의 충격으로, 또한 안도감과 모든 책임을 다 맡고 있는 그가 고마워서 울었다.(p.103)


- 다시 해리엇은 왜 자기가 항상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의아해했다. 벤이 태어난 이후 항상 그랬지,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모두들 말없이 자신을 비난해 온 것이 사실인 것 같았다. 나는 불행을 겪었지 죄를 지은 것은 아니야. 그녀는 생각했다.(p.106)


- 벤이 살해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여자, 그녀는 입 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이렇게 격렬하게 자신을 옹호했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신봉하고 지지하는 가치관으로 판단해 볼 때 그녀는 벤을 그 장소에 데려오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으로부터 그 애를 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의 가족을 파괴했다. 그녀 자신의 인생에 해를 끼쳤다……. 데이비드의 인생……루크와 헬렌과 제인, 그리고 폴의 인생에도. 특히 폴의 경우가 가장 나빴다. 그녀의 사고는 이런 틀 안에서 맴돌았다.(p.158)


- 희생양. 그녀는 희생양이었다. —해리엇, 가정의 파괴자. 그러나 또 다른 생각과 감정의 층이 저변에 깔렸다. 그녀는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우린 벌 받는 거야. 그뿐이야." (중략)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

"헛소리" 그가 말했다. 그는 화가 났다. 이런 해리엇이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건 우연이야. 누구나 벤 같은 애를 가질 수 있어. 그건 우연히 나타난 유전자야, 그것뿐이야."(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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