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래된 미래>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중앙books/ 초판 22쇄/ 2010.05.14)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
책, <오래된 미래>는 저자가 라다크에서 오래도록 지내면서 전하는 라다크 지방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삶이다. 그리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현대화로 라다크의 삶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말한다. 저가가 말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고유한 문화와 삶의 양식을 고려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는 개발은 발전이 아닌 파괴라는 것이다.
개발과 현대화 이전, 라다크는 서로가 서로를 돕고, 나의 풍작이 다른 사람의 흉작이 되지 않는 사회였다. 서로가 서로를 돕기 때문에, 부족한 게 없었고 다른 사람의 성과가 곧 나의 성과가 되는 사회였다. 가난이 없었다. 개인과 공동체의 이익이 상충되지 않았다. 노인에겐 마땅한 일이 있었으면, 다급한 속도로 재촉하지 않았다. 현대화와 개발의 바람이 불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자유무역이 성행하고, 현대화와 개발의 바람을 라다크도 피할 수는 없었다. 라다카의 상호협력엔 칸막이가 세워졌고, 현대화가 말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라다크의 모습을 비교하게 했다. 그 결과 라다크는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하게 됐고, 자신들의 모습이 볼품없다 생각하게 됐다. 단단했던 그들의 삶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금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저자가 말하는 메시지는 고유한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만든 이상적인 모습을 다른 문화권에 강요했을 때의 엇박자를 말한다. 서양에서 만든 이상적인 모습은 서양인들에게만 이상적인 것이지, 저 멀리 그런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 사람들에게는 전혀 유효하지 않다. 서양인들도 라다크라는 지역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그런 이상을 세웠으니 맞지 않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세계화와 현대화는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맞지 않으면 나 자신 혹은 문화를 깎아서 맞춰야 한다. 그렇게 잘 맞춘 사람 혹은 문화가, 나라가 살아남는 것이 세계화된 세상이다. 그런 물결 속에서 어느 지역의 고유한 문화는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고, 고유한 것이 아니라 구린 것이 된다. 고유한 문화 속의 개인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며, 점차 자신의 문화를 안 좋게 보고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이상적인 모습을 따라가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라다크의 변화다.
저자가 바라본 라다크의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의 이상적인 모습은 없다는 것이다. 서양에게 이상적인 건 서양사람 혹은 나라에 유효한 것이지, 동양에 유효한 것은 아니다. 그런 획일적인 모습의 개발은 오히려 다양성을 해치게 된다. 저자가 말했듯 다양성이란 한 회사에서 만든 다양한 청바지를 고르는 게 아니다. 해당 문화와 나라에 맞는 개발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들의 고유함을 지키며 진행하는 개발이 진정한 개발이고, 진보다.
많은 나라, 기업들이 개발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나라를 돕는다. 우리나라도 그 혜택을 받은 나라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 이외에 전례가 없다. 그 과정에서 분명 나라가 성장한 것이 맞고, 혜택이 늘어난 것이 맞다. 영아 사망률은 낮아졌고, 기대수명은 높아졌다. 하지만 동전은 항상 양면이다. 긍정적인 면이 있으면 반드시 부정적인 면도 있다. 개발의 결과 나라는 성장했지만, 삶은 더욱 경쟁적이 됐고 피폐해졌다. 함께 즐기던 문화가 사라졌고, 나를 지키고 상호 돕던 이웃이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불행해야 했다. 내가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선, 다른 누군가는 그걸 놓쳐야 한다. 이겨야 하고, 쓰러트려야 한다. 더 많이 가지고, 나누기를 주저해야 한다. 그런 것이 성장이다. 그 성장 안에 얼마나 많은 행복이 있을까.
저자는 사회 가치를 측정할 때, 구성원들의 행복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개발과 진보라는 바람이 불기 전 라다크가, 개발이 진행된 이후의 라다크보다 더 행복한 사회였다고 말한다. 성장을 얻고, 행복을 잃을 것인가, 행복을 지키고 성장을 멈출 것인가. 성장과 행복을 동시에 얻을 수는 없을까.
성장과 행복이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저자가 진행하는 라다크 프로젝트는 그 일환으로 생각된다. 라다크 고유의 문화를 지키며, 그들의 환경을 고려해서 느린 개발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하루 종일 일조량이 풍부한 라다크에 석탄으로 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태양광을 설치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식이다. 누군가 말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어째 성장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고 느낀다. 이게 맞는 걸까? 를 생각한다. 그렇다고 완전 옛날로 돌아가야 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사회 구성원들이 정말 잘 살고 있다고 느끼고, 행복하다고 느끼는지를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작은 지역을 살리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남을 밟지 않아도 내가 설 수 있는 그런 성장은 없을까. 오히려 그런 성장을 만들 수 있다면, 조금 더디게 성장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책의 제목인 <오래된 미래>는 참 아이러니한 제목이다. 미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인데, 그 앞에 오래된 이라는 이미 지나간 형용사가 붙었다. 어쩌면, 라다크에서 이루어졌던 모습이 앞으로 인류가 다시 회복하고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아닐까 싶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나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상충하지 않고, 누군가를 짓밟고 서지 않아도 되며, 각자의 속도와 역할을 충실히 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꼭 라다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라다크에 가고 싶다. 혹은 내가 사는 사회가 과거의 라다크 같은 모습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내가 하는 일과 사회가 <오래된 미래>로 나아가길 바라본다.
- 라다크 사람들의 언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이 있다. '공그로트gongrot'는 '어두워진 다음부터 잠잘 시간까지'라는 뜻이고 '나이체nyitse'는 '해가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한낮'을 말한다. 또 '새의 노래'라는 뜻의 '치페 치릿chipe-chirrir'은 해가 뜨기 전 새들이 지저귀는 이른 아침을 뜻한다. 이 모두가 넉넉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다.(p.93)
- 말을 백 마리나 가진 사람도 채찍 하나가 없어 남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있다.(라다크 속담)(p.109)
- 라다크 사람들은 다행히도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상충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손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과 이웃에서부터 다른 마을 사람들이나 심지어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라다크 사람들은 남을 돕는다는 것이 자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한 농부의 풍작이 다른 농부의 흉작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 아닌 상호 협조를 통해 경제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상호발전과 통합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p.120)
- 라다크의 노인들은 생활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할 일이 없어 허공을 멍하게 바라본다거나 소외되거나 외로워하는 일은 없다. 노인들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공동에 있어 중요한 구성원이 된다. 라다크에서는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곧 값진 경험과 지혜를 가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물론 젊은이들보다 힘이 세지는 않지만 분명 그들이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또 이곳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급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이 든 노인들이 천천히 일을 한다 해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어서 대개 나이가 여든 정도가 된 다음에도 좋은 체격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건강한 신체와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 노인들이 그렇게 활발함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지속적으로 젊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의 관계는 분명 부모, 자녀의 관계와는 다른 것이다. 가장 높은 연령대의 사람들과 가장 낮은 연령대의 아이들은 아주 특별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데 그들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된다.(p.148)
- 라다크에는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라는 말이 있어요.(p.153)
- 이곳에 가난이라는 건 없어요(체왕 팔조르, 1975년)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 가난해요.(체왕 팔조르, 1983년)(p.196)
- 라다크 사람들이 갑자기 국제 화폐경제의 한 부분이 되면서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외부세계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영역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라다크라는 곳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미국 달러의 가치가 변동하면 그것은 인도 화폐 루피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생계를 위해 화폐를 사용해야 하는 라다크 사람들은 국제금융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의 영향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땅을 경작하며 살던 시절 그 모든 생활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p.196~197)
- 변해가는 라다크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놀랄 만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현대 세계의 생활도구와 기계들이 그 자체로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새로운 생활은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아 가버리는 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개발의 결과로 도시 지역에 사는 라다크 사람들은 활용 가능한 기술의 속도에 의해 경쟁을 해야 하는 새로운 경제체제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다.(p.206)
- 로브장은 정부기관의 운전기사였다. 은퇴를 하고 나서 그는 지프를 한 대 사 가지고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여름철이면 그 지프에 관광객들을 싣고 사원까지 운행을 한다. 다른 계절에는 마을 사람들을 레까지 태워주고 요금을 받는다. 그 결과 로브장과 마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마을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자동차가 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마을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렸다.(p.207)
- 오늘날 세계의 곳곳에서 '교육'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정들은 공통적으로 동일한 전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유럽 중심의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 또한 그것들은 현실과 거리감이 있는 사실과 숫자 그리고 세계 공용의 지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과서는 지구촌 전체에 적용되는 정보들을 전파한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한 생태계와 특정한 문화권의 상황이 제거된 채 한 종류의 지식만이 전 세계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어서 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내용은 본질적으로 실제적인 생활의 맥락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p.214)
- 서양의 교육 시스템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유의 환경을 무시하고 똑같은 자원을 이용하라고 가르침으로써 우리 모두를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해서 인위적인 결핍 상황을 만드는 한편 사회 구성원 사이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p.214)
- 현대식 교육은 지역의 자원들을 무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자기 자신과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만든다. 그들은 자존심을 빼앗겨버렸다. 학교의 모든 교육 내용은 서양의 것들이 우월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그 직접적인 결과로 어린 학생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다.(p.216)
- 사회의 가치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들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구성원들의 행복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하고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유지 가능성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한다.(p.251)
- 개발은 자본의 도입을 절대적인 진보라고 전제한다. 개발의 관점에서 돈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주류의 경제구조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적용할 수 있지만 지역의 자원들을 기반으로 한 비화폐 경제체제나 자급 경제체제에 속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의식주 문제를 자급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불안정한 금전적 이익을 위해 고유의 문화와 독립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중대한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다.(p.262)
- 사실 이러한 정치적 변화는 다국적 기업들에게 정보보다 우월한 영향력과 권력을 부여하는 경제집중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민주적 통제의 영역 밖에 있는 이 다국적 기업들로 인해 극단적으로 불안한 현상들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단체와 환경단체들은 이 거대기업들의 기동력을 저지하는 데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이 단체들이 몇 년 동안 노동자 권리 보호와 유동성 화학물질 규제를 위한 관련 법규를 제정하느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해당 기업은 문제가 된 사업장을 규제가 덜한 지역으로 옮겨버리고 만다. 바로 이런 것이 다국적 기업들을 위한 자유시장의 의미다. 말하자면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p.280)
- 오늘날 글로벌 경제는 자원 남용, 기술혁신, 시장 창출, 수익증대를 가속시키는 냉혹한 추진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금전적인 부담과 심리적 압박감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람들 모두를 맹목적 소비 지향주의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 모토는 '인류의 발전을 위한 경제성장'이다. 광고와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계속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매체가 전달하는 메시지들은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현대화되고 문명화되고 부를 갖춘 이상적인 인간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p.280~281)
- 제3세계 농경 지역 국민들은 현대화된 생활의 이미지를 왜곡된 형태로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사람이 아름답고 모든 사람이 깨끗하며 편안하고 화려한 생활. 바로 이런 것이 그들에게 비쳐진 현대 생활의 이미지다. 그들이 보는 것은 빠르게 질주하는 멋진 승용차와 전자레인지 그리고 비디오 플레이어들이며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급여를 받는지를 전해 듣는다. 경제개발은 이제 세계 전역에 걸쳐 자동조정 장치에 의해 작동되는 듯한 모습이다. 특별히 계획된 개발 프로그램이 시행되지 않는 지역에서도 그것은 현대 생활에 대한 일차원적 이미지를 전하고 있다. 그 이미지에는 물론 개발로 인한 부작용, 오염, 심리적 스트레스, 약물 중독, 노숙자 같은 것들은 담겨 있지 않다. 경제개발이란 동전의 한쪽 면만을 접해본 사람들은 현대화에 대해 내성을 갖지 못한 채 그것을 열망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p.281)
- 현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제개발에 의해 다양성이 증대되었다고 생각하기가 쉬운 일이다. 효율적인 운송과 통신 시스템의 도움으로 다른 문화권에서 생산된 다양한 상품들과 식품들을 한데 모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다채로운 문화의 경험을 원활하게 만드는 바로 그 시스템이 실제로는 그런 다양성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한편 세계 전역에 걸쳐 지역마다의 문화 특성을 말살하고 있다. 링곤베리와 파인애플 주스는 코카콜라에 밀려났고 모직과 면으로 된 옷들은 청바지에, 야크와 고원에서 자라던 토종 소들은 저지 젖소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다양성이란 것은 한 회사에서 만든 열 가지의 청바지 중에 어느 것을 고를까 하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p.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