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경제학>의 저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지구 한계의 개념을 경제학으로 풀어냈다. 그가 제시한 경제학은 무한한 자원을 전제하지 않고, 유한한 자원을 전제한 경제학이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전자의 경제학에서는 지구에는 자원이 넘쳐나고, 그것을 마음껏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후자는 다르다.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며, 자원이 고갈될 때마다 지구의 기능이 망가진다는 걸 전제한다. 인간은 유한한 자원을 무한히 가져가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유한한 자원을 재활용하고, 순환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작동하는 경제학이다.
책,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는 지구 한계의 개념을 제시하며, 이 한계치를 전제로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이 작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문장이 책 속에 있다. '급증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것이 작동하도록 허용되는 절대 한계치를 설정해야 한다. 한마디로 풍요는 지구 한계의 안전한 운용 공간 내에서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다.(p.190)'
지구 한계란 지구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치다. 즉,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허용치의 최댓값이다. 이 이상을 넘어가면 지구는 인간에게 대가를 치르게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다. 사람도 어느 정도 한계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면 싸움이 벌어지거나, 관계의 단절이 생긴다. 그 허용치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극단적으로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인간과 지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현재의 모습대로 지구에 압력을 가하게 되고, 어느 순간 그 한계치를 넘게 되면 그 뒤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그 한계치가 어디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계치는 멈춰있지 않다. 유동적이다. 때문에 오늘의 경계가 내일의 한계가 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했던 게 한계에 발을 딛는 티핑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간담이 서늘하게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많이 설정하고, 측정하고, 행동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기후변화다.
기후변화가 실제 기상이변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국가, 정부, 기업, 시민사회 모두가 이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모두 특정 연도를 설정해 놓고 이때까지 재생에너지를 100퍼센트를 달성한다던지,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던지 다양한 방법을 내놓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에 집중되고, 언론에도 많이 노출되고 있다. 그런 집중에 의해 내가 놓친 것일 수도 있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게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생물 다양성'에 대한 부분이다.
생물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지구 생태계에 맡은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양한 생물군이 가진 역할은 지구 생태계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게다가 일부 생물군은 나무에 못지않게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도 한다. 대표적으로 크릴새우가 있다. 크릴새우는 오메가 3 지방산이 풍부하고, 고래, 연어 등의 주요 먹이가 된다. 생물군의 가장 하층에 있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이 작은 새우가 중요한 탄소 관련 역할을 한다.
영국 남극 자연환경연구소에 따르면, 크릴새우가 매년 2,300만 톤의 탄소를 흡수하고 바닷속 퇴적물에 저장한다고 한다. 우리 인간은 오메가 3 풍부하다는 이유로 이 크릴새우로 크릴 오일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탄소중립도 중요하지만, 생물의 자연적 역할을 파악하고, 그들을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책의 저자들 역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생물 다양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측정하고 측정하고 또 측정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생물 다양성에 대해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걸 아직 보지 못했다.
물론 어렵다. 심해에 어떤 생물이 있는지, 아마존 숲에 얼마나 많은 생물종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게다가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기는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중요성은 명확하다. 우리가 그 다양성을 다 알 수 없다면, 최소한 다양성을 죽이는 일은 더욱 하면 안 될 것이다.
정말 어렵다. 어쩌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생각도 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소 기후변화를 야기하고, 생물 다양성을 없애는 기업의 제품은 사지 않는 것 정도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 정도인 게 조금은 낙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미 끝났다고 좌절하기보단 아직 희망은 있다는 말로 조금 더 애쓰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 키케로의 말처럼 '삶이 있는 한 아직 희망은 있다.'
밑줄
- 지금까지 지배적 서사는 유한한 지구, 무한한 물적 발전을 골자로 지구와 자연은 인간에게 한량없이 베풀어줄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고 가정했다. 이 서시는 우리가 '큰 지구(big planet)'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세계(small world)'에 거주하는 동안에는 별 탈 없이 통용되었다. 이런 세계에서는 지구가 제게 가하는 인간의 갖은 모욕을 질끈 눈감아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25년 전에 끝났다. 오늘날 우리는 '작은 지구(small planet)' '큰 세계(big world)'에서 살아가고 있다. 넘쳐나는 환경적 고난이 사상 최초로 세계경제에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했으며, 기상이변 사태들에 따른 비용 상승과 세계 식량 및 자원 비용의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다.(p.15)
- 전 지구적 진보에 가하는 세 번째 주요 압박은 우리가 이례적일 정도로 빠르게 지구 생물권 - 모든 인간사회가 의존하고 있는 육지 생태계, 바다, 담수 -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p.53)
- 만약 우리가 자연의 무언가를 남용한다면 그것은 결코 가게 진열장을 도로 채우는 소비재들이 그래 보이듯이 저절로 다시 보충되지 않는다. 자연은 결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p.53)
- 우리는 더 이상 세계적 발전을 위해 지역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거꾸로 지역적 발전을 위해 세계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갈라파고스 제도, 서뉴기니 산호초, 혹은 북극 같은 장소에서 환경 정책을 제아무리 멋들어지게 시행한다 해도 그것이 끝끝내 성공하려면 다른 국가, 지역과 경제 부문의 행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환경보호는 오직 협력을 통한 범지구적 관리에 의해서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p.59)
- 바다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열기의 90퍼센트를 가져가고, 자연 생태계가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50퍼센트 남짓을 흡수해간 것이다. 우리는 교란의 영향을 줄여주므로 이런 과정을 '음의 되먹임'이라 부른다. 하지만 지구가 점차 복원력을 잃어감에 따라 (영향을 약화하는) '음의 되먹임'이 (영향을 강화하는) '양의 되먹임'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면 주요 시스템들이 결국에 가서 문턱 값을 넘어선다. 지구는 꽤나 난데없이 친구에서 적으로 돌변한다. 카펫 아래에 먼지를 쓸어 넣는 식으로 문제를 덮기에 급급하던 지구가 변화를 부채질하는 엔진으로 달라져버리는 것이다.(p.79~80)
- 가장 극적인 사례는 생물다양성이 위험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종의 손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야말로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의 와중에 놓여 있다. 지구 생태계의 작용을 대규모로 영구히 변화시킬 게 뻔한 상황이다. 특히나 염려스러운 것은 최상위 포식자, 즉 먹이 사슬의 상층부에 포진한 종들의 손실이다. 이것은 중요한 티핑 포인트를 건드리는 등 자연의 생명유지 장치 전반을 삽시간에 변화시킨다. 종의 상실은 다른 지구 한계들과 달리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유독 비극적이다. 한번 사라진 종은 영영 되살릴 수 없다.(p.101)
- 지구 한계는 항구적으로 고정된 목표치라기보다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목표치다. 그러므로 한 번에 하나씩 관리할 수가 없다.(p.102)
-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산호초 생태계는 기후 변화의 영향을 피해서 되살아날 가능성이 한층 높다. 결국 크나큰 재앙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어책은 복원력 있고 다양한 생태계다.(p.124~125)
- 분석가들은 지속 가능한 생산 수준에 도달하려면 금속의 재활용률을 크게 늘려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오늘날 은 16퍼센트, 주석 26퍼센트, 동 31퍼센트, 니켈 35퍼센트, 금 43퍼센트, 알루미늄 49퍼센트에 그치는 재활용률이 대부분의 경우 90퍼센트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을 예로 들어보자. 동은 기업들이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재활용률을 95퍼센트로 끌어올리면, 현재 예측치인 31년이 아니라 그로부터 600년이나 더 세계경제에 공급될 수 있다.(p.140)
- 지구의 스튜어드로서 어느 한 종, 어느 한 생태계를 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을 구하는 문제를 떠안았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인류는 부단히 경제 발전, 번영, 좋은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지구 자체는 모든 것이 변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작 위험에 빠지는 쪽은 우리의 세계다. 결국 모든 기업은 급작스러운 사회생태적 변화로 불안해진 세계에서는 어떤 기업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오직 안정된 기후, 안정된 생태계만이 우리가 도시와 마을을 살 만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복원력과 지속가능성을 제공해줄 수 있다.(p.171)
- 급증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것이 작동하도록 허용되는 절대 한계치를 설정해야 한다. 한마디로 풍요는 지구 한계의 안전한 운용 공간 내에서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다.(p.190)
-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시한다. 그리고 측정하지 못하는 것은 관리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30여 년 동안 환경의 위험을 애써 무시해왔지만 별 탈이 없었다. 지구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교란이 일어나는 조짐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은 이제 끝났다. 눈을 떠야 할 때다. 지금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측정하고 이해해야 한다.(p.213)
- 한마디로 우리는 측정하고 측정하고 또 측정해야 한다. 확실성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위험을 이해하고 우리 스스로의 이익에 따라 자연을 좀 더 현명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다.(p.214)
- 무엇보다 생물다양성의 손실을 추적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 생물다양성이 생태계 복원력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들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정말이지 불충분하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가는지조차 모른 채 빠른 속도로 생물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다.(p.214)
- 오늘의 농업은 생물다양성 손실과 온실가스 배출을 야기하는 원인들 가운데 단일 요소로서는 최대다.(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0퍼센트가 농업 생산에서, 즉 대략 그 절반은 경작에서, 나머지 절반은 삼림파괴에서 비롯되고 있다.) 또한 농업은 최대의 토지 사용자(세계 토지 면적의 약 40퍼센트가 농경지다)이고, 최대의 담수 사용자(강에서 끌어온 담수의 70퍼센트가 농업용 관개에 쓰인다)이기도 하다. 더욱이 농업은 질소, 인이 물길을 따라 유출되어 영양물질 과부하를 낳는 주원인이다. 우리의 식량은 실제 지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생산되고 있다.(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