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by 한량


어르신은 이제 곧잘 글을 쓰셨다. 처음에는 한 문장 쓰는 데 1시간이 걸렸는데, 이제 1시간이면 공책 한 페이지를 거뜬히 채우신다. 맞춤법은 종종 틀리지만 의미 전달에는 무리가 없었다. 정말 비약적인 발전이다. 얼마 전까지 걸음마 배우던 자식이, 학교 운동회 50m 골인하는 걸 보면 이런 기분일까. 매주 만나서 짧으면 2시간, 길면 8~9시간씩 가르쳐드린 보람이 있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서 나도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선생님 다 썼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어르신은 쑥스럽다는 듯 내게 세 페이지짜리 종이를 건네셨다. 어르신 나이처럼 오래된 몽당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세 페이지짜리 글을 끝으로 어르신과의 수업은 마무리된다. 평소 싱글벙글하며 본인이 쓴 글을 보여주신 어르신의 표정에서도 오늘은 유독 아쉬움이 많이 보였다.


마지막 수업에서 어르신께 내드린 숙제는 '자유주제로 글쓰기'였다. 어떤 글이든 상관없었다. 편지도 되고, 시도되고, 소설도 되고, 에세이도 된다. 마지막을 이렇게 정한 이유는 그동안 정해준 주제에 맞는 것만 쓰게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인 만큼, 이제는 어르신이 직접 쓰고 싶으신 걸 찾아서 써야 했다. 누군가가 건네준 주제가 아니라, 어르신이 직접 마음껏 쓰고 싶으신 걸 쓰라는 의도가 있었다.


어르신이 내민 세 쪽짜리 종이에는 편지가 적혀 있었다. 첫째는 어머니께 쓰는 편지, 둘째는 어린 시절의 어르신께 쓰는 편지, 셋째는 선생님인 내게 쓰는 편지였다.


"편지 쓰셨네요, 왜 편지로 쓰셨어요?" 내가 물었다.

"아 그게요." 어르신은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렇게 쓰고 싶더라고요.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 글을 모를 때는 그냥 성질부리기 바빴는데, 제가 글을 배우면서 뭐랄까 고마움도 있고, 미안함도 있다는 걸 조금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 걸 잘 말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론 이런 걸 이제 잘 말하고 살자 생각하면서 썼어요."


나는 어르신께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써서 낭독해달라고 말했다. 어르신은 어머니께 쓴 편지를 낭독했다. 선생님이 눈앞에 계셔서 부끄러워서 못하겠네요라는 말도 남기셨다. 나도 낯간지러워서 그런 거 싫어한다.


어르신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낭독을 하셨다. 낭독하는 중간중간 어르신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처음 어르신을 봤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1년간 수업을 하며 알게 된 어르신 이야기를 알게 됐고 어떤 부분에서 저렇게 떠시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한 페이지짜리 편지를 다 읽는데, 20분 정도가 걸렸다. 낭독을 끝낸 어르신은 멋쩍게 웃으시며 자리에 앉으셨다. 마지막 수업이 끝난 것이다.



자리에 앉은 어르신을 보니 문득 어르신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났다. 첫 모습에 내가 이 어르신과 1년 동안 수업을 할 거라곤 생각도 안 했는데, 사람 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르신 제가 어르신 처음 봤을 때 어땠는지 아세요?" 내가 물었다.


어르신은 전혀 모른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때가 떠올라서 무심코 키득키득 웃었다. 어르신은 통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때 어르신의 첫인상과 어떤 모습이었는지 또렷이 기억이 난다. 어르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때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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