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by 한량


"야 이 개새끼야"

"뭐 너 뭐어라 했어 개새끼?!"

"그래 이 개새끼야 왜 남의 물건 집어가고 지랄이야"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에 무엇에 홀린 듯 소리 나는 쪽으로 갔다. 키가 큰 어르신과 키가 작은 어르신 두 사람이 서로 씩씩대며 노려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싸우는 모습이었다. 백발이 듬성 듬성한 두 어르신의 이마와 목대에 핏줄이 선명하게 서있었다. 큰 소리를 낼 때마다 핏줄이 심장 박동하듯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핏대 세우고 싸우는 두 어르신 사이에는 누군가 쓰다 버린 듯한 종이 박스와 깡통캔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쓰지도 못할 듯해 보이는 컴퓨터 본체가 있었다.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컴퓨터였다.


"네가 뭔데 내가 찜 한 걸 가져가 이 새끼야" 키가 큰 어르신이 컴퓨터 본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뭘 찜해, 아무도 없었어. 버려진 거 주운 게 뭔 죄야." 작은 어르신이 질세라 맞받아쳤다.


목소리는 점점 격해졌다. 세상에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는 법이다. 나는 흥미진진해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주변엔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았다. 모두 시끄러워서 듣기 싫은데, 끝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는 듯했다. 대충 상황을 보니 두 어르신 모두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어르신처럼 보였다. 두 어르신 모두 리어카를 가지고 있었고, 상자가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러다 키가 큰 어르신이 물건들을 모아두고 잠시 자리를 옮긴 사이 키가 작은 어르신이 와서 물건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키 큰 어르신 입장에서는 성질부릴만하다. 작은 어르신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모아뒀다는 증거가 어디 있냐는 입장이다.


목소리는 점점 격해졌고, 키 큰 어르신이 작은 어르신의 멱살을 잡았다. 작은 어르신은 발버둥 쳤지만, 힘이 부족해 보였다. 급기야 작은 어르신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작은 어르신은 금세 일어나 달려들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말렸다. 어느새 경찰도 왔다. 경찰들이 내려서 두 어르신을 떼어놓았다. 경찰이 출동하자 주변에 사람들이 더더욱 모였다.


경찰을 사이에 두고 욕설은 계속됐다. 마치 경찰들이 절대 넘을 수 없는 담벼락이라도 된 듯이 두 어르신은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경찰도 짜증이 났는지, 험상궂은 얼굴로 그만하시라며 언성을 높였다. 서로 경찰에게 자조 치정을 설명했다.


"내가 물건을 모아뒀는데, 저 새끼가 와가지고 물건을 훔쳐 가고 있더라니까" 키 큰 어르신이 경찰에게 성질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언제,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 니껀지 어떻게 알아" 작은 어르신은 계속 이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게 몇 마디 대화가 이어간 뒤로,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듣지는 못했기에 경찰이 어르신들께 무어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재를 하고 있는 듯했다. 경찰도 상황을 더 키우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루에도 들어오는 신고가 무수히 많을 텐데, 그 수많은 신고들 중 두 어르신의 싸움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랬다. 그래봤자 저 얼마 하는지도 모를 부서진 본체를 두고 싸우는 게 아닌가. 문득 저거 팔면 얼마 받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잘 받아봐야 몇 천 원일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즈음 작은 어르신이 컴퓨터 본체를 본인 리어카에 실었다. 아무래도 작은 어르신이 이긴 것 같았다. 어떻게 이긴 걸까 궁금했지만, 다가가서 물어볼 수 없었다. 상상을 해보자면, 키 큰 어르신이 멱살 잡고 넘어뜨렸으니 다친 보상으로 작은 어르신이 독차지하는 걸로 결론난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내 상상이다. 나는 궁금해서 조금 더 가까이 갔다.


키 큰 어르신은 계속 씩씩대며 성질을 부렸다. 경찰들은 귀찮다는 듯이 두 어르신께 무언가를 내밀며 서명을 요청했다. 키 큰 어르신은 씩씩댔지만 마지못해 사인을 했다. 경찰들은 작은 어르신께도 서명을 요청했다.


"성함 정자로 쓰세요." 경찰이 말했다. 키 작은 어르신은 무언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찰을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는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여기에 성함 적어주세요." 키 작은 어르신은 계속 난감해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이유를 알려준 건 키 큰 어르신이었다.


"저 인간 글 몰라요. 지 이름도 적을 줄 몰라. 아유 저런 인간 때문에 내가 이딴 일이나 당해야 되고, 아휴 성질 나."


경찰도 예상 못 했다는 듯 작은 어르신을 쳐다봤다. 키 작은 어르신이 성질을 낼 줄 알았으나, 기가 죽은 듯이 입을 앙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경찰도 난감해 하는 표정이었다. 경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곤 다른 방식으로 서명을 대체한 듯 보였다. 그렇게 상황이 종료됐다.


두 어르신 모두 리어카를 챙겼다. 싸움에서 이긴 건 키 작은 어르신임에도, 어째 더 기가 죽어 보이셨다. 키 작은 어르신은 물건을 조금 더 고정하고, 제 갈 길로 가셨다. 쌓인 물건에 가려져 어르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건을 꽉 채운 리어카가 조금씩 멀어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