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재밌는 구경 끝났네."
헐레벌떡 달려온 아줌마가 말했다. 조금 전까지 싸움 구경 하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아줌마는 좋은 구경 놓쳤다는 듯 아쉬워하고 있었다. 장을 봤는지 한 손에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노란색 다회용 쇼핑백이 손에 들려 있었다. 기다란 파가 삐죽 나와있었다. 무거웠는지 "아유 무겁다" 하며 쇼핑백을 털썩 내려놓았다. 힘없이 처진 쇼핑백이 쓰러지며 안에 있던 물건들이 조금 쏟아졌다. 그중 노란 참외가 데에굴데에굴 구르며 내 쪽으로 왔다. 모양이 동그랗지 못해 데굴데굴 오지 않았다.
"아유 학생 그것 좀 주워줘요."
아줌마가 내 앞에 있는 참외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저 아줌마는 분명 나를 싹수없는 놈이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묘하게 짜릿함을 느꼈다. 이런 기분이었다. 나 혼자 탄 엘리베이터를 잡으려고 뛰어오는 사람을 보며 닫힌 버튼을 누르는 기분. 이 쾌감, 이 짜릿함.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갈 길을 갔다. 뒤에서 무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귀에 꽂은 이어폰 소리를 넘지 못했다.
마침 날씨도 좋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기분이 산뜻했다. 이어폰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몸이 들썩이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걸었다. 한창 노래에 빠져서 길을 가던 찰나, 갑자기 노래가 끊겼다. 한창 흥이 올라오려는 찰나에 끊기니 더 급격하게 흥이 끊겼다. 제기랄.
"아이씨 뭐야 왜 끊겨"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니 전화가 오고 있었다. 그제야 노래 대신 벨 소리가 이어폰에 울렸다. 무선 이어폰은 이게 안 좋다. 유선이면 한 번에 들릴 게 꼭 한 박자 늦다. 휴대폰에는 아버지 번호가 나타났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는 이유는 분명 일손이 부족해서다. 아버지는 평일이건 주말이건 상관없이 본인이 원하는 날에 맞춰 일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워라벨을 본인이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월화수목금금금 일을 한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일손이 부족하면 허구한 날 나를 부른다는 점이다. 전화를 받으면 분명히 일손 부족하다며 나를 부를 게 분명했다. 받기 싫어서 받지 말까 3초 고민했는데, 그럴수록 핸드폰 벨 소리만 요란해질 뿐이었다.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아버지가 물었다.
"왜 또 왜왜" 내가 말했다.
"너 할거 없으면 아빠 도와서 일 좀 하자. 금방 끝나. 어디야."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다. 일찍 끝난다면서 일찍 끝난 적이 없었다. 목소리 톤을 보아 이건 2시간짜리다. 가기 싫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댈 찰나 내 옆에 흰색 차가 지나갔다. 차 안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부모와 자식이 한동네에 같이 산다는 건 이래서 안 좋다. 집에서도 마주치는데, 동네에서도 마주친다. 이거 뭐 무서워서 여자친구랑 동네에서 손이나 잡겠나. 후.
"이럴 거면 그냥 사람을 하나 고용해. 어? 국가 경제 살리는데 이바지해야지."
차에 탄 채 씩씩대며 말했다.
"무슨 사람을 고용해. 고급 인력이 집안에도 있고, 동네에도 그냥 돌아다니는데."
"고급인력은 인건비도 비싼 거 알지?"
"넌 언제나 500원짜리야"
"그거 불법이야. 요즘 최저시급일 얼만데. 잘못하면 아동학대로 고소당해 조심해. 동네가 좁은 만큼, 소문도 금방 퍼진다고. 응?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거야 아빠."
"네가 왜 아동이야."
"뭐 언제는 부모 눈에 자식이 커봤자 그냥 애라며. 환갑 넘은 노인도 90 넘은 부모한테는 애라면서."
아버지는 고개를 젓고는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운전만 했다. 15분 정도 차를 타고 간 뒤, 2시간 정도 아버지 일을 도왔다. 무거운 물건을 날랐더니 고작 두 시간이지만 땀으로 온몸이 흥건히 젖었다. 옷이 축축했다. 땀에 옷이 젖은 채로 차에 올랐다. 곧장 에어컨을 켜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사장님, 오늘 일당은 얼맙니까."
"2만 원."
"엥? 이 사장님 완전 사기꾼이네. 사람을 이렇게 땀으로 젖게 만들고, 고작 2만 원이라니 말이 됩니까? 3만 원은 줘야지 수지 타산이 맞지."
아버지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2만 원에 저녁 얻어먹는 걸로 합의 보고 차에 탔다. 저녁은 푸짐하게 고기였다. 요즘 집 인테리어를 다시 한다고 제대로 밥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도배부터, 화장실 수리 등을 다하는 상황이라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자리만 있고 정리에 방해가 되는 가구며, 책장이며 정리해서 밖에다 둔 상태였다. 어차피 밖에서 먹어야 했다. 맛있는 걸 먹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창문을 열었다.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팔을 걸치고 풍경 구경하기가 좋았다. 차는 빨간불을 기다리며 점시 멈췄다. 이제 오르막길을 지나면 집에 도착한다.
"아이고, 어르신."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찻길을 따라 파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한 어르신이 낑낑대며 고개를 올라가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뒤로 쭈욱 밀려 넘어질 것 같았다. 저러다 자칫 미끄러지면 우리 차에 그대로 들이받을 것 같았다. 굳이 인도를 두고 차도로 나와 가는 어르신이 이해가 안 됐다. 저러다 사고 나면 누가 보상이나 해주나. 폐지 줍는 생활에 보험은 언감생심 일 텐데.
"야, 너 내려서 저거 도와드리고 와." 아버지가 내 팔을 툭 밀며 말했다.
나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 내가 왜."라고 말했다.
"아 가라면 가, 뭘 더럽게 많네 진짜. 빨리 안가?!"
나는 마지못해 차에서 내렸다. 일부러 보란 듯이 차 문을 세게 닫았다. 아버지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는 듯 나를 보며 훠이훠이 손짓했다. 빨리 가라는 뜻이다. 짜증 나라고 한 건데, 상대방이 짜증을 안 내니 오히려 내가 짜증 났다.
"아오 귀찮아."
리어카 뒤에 서니 앞에서 리어카를 끄는 어르신은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어르신에게 "어르신 밀어드릴게요"라고 말하며 리어카에 손을 올렸다.